피의 연대기와 종교

by 휘루 김신영

『피의 연대기』는 다큐멘터리 식의 영화로, 2018년 1월 김보람 감독이 여성의 생리 현상을 긍정적이면서도 공식화하는 영화로 제작하였다. 여성이라면 매월 겪어야 하는 생리현상의 숭고한 의미에 대하여 추적을 한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최근에 많이 달라졌으나 아직도 생리를 불경한 것으로 여기고 쉬쉬하는 것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흔히 초경의 경우에는 이제 어른이라는 축하를 받지만 그다음에는 여성에게만 국한된 일로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여성의 생리 혈은 소변처럼 배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철없는 남학생들은 생리 결석을 하려 하면 “좋겠다. 그렇게 아파,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겠어.”라는 소리를 쏟아낸다.

사실 남성들은 여성의 생리에 몹시 무지하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긴 언제 그 상황에 맞닥뜨린 적도 없고 앞으로도 관심이 없을 것이며 불경한 것으로 터부시 되는 것에 대해 알려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남성도 여성의 생리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뿌리 깊은 성차별을 가진 남성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여자들이 기저귀 차고 강단에 올라가? 안 되지.” 이 발언은 여성의 생리대가 기저귀로 치환되는 문제와 아기가 차는 기저귀를 다 큰 여성들이 찬다는 것으로 아이들과 같다고 말하는 이중적 의미가 표출되는데 이는 명백하게 인권침해이며, 여성폄하이며, 여성학대, 그리고 여성모독이며, 어머니와 아내와 딸을 땅에 패대기치는 극악무도한 패륜이다.


소위 성직자의 권위는 절대적이기에 신도들은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성경구절은 시대와 현실에 대한 적응을 요하는 미드라시 적으로 해석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구에 집착하여 엉뚱하게 해석해 놓고는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오류를 수도 없이 범하고 있다. 심지어 잘못된 해석을 절대적 진리로 둔갑시켜서 강요하기까지 한다.


‘여성은 교회에서 잠잠 하라’(고전 14:34)는 구절로 얼마나 많은 횡포와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가? 이 구절은 뒤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교회의 성(性) 불균형은 너무 심각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을 지경이다. 교회에서 성역할로 고정된 것이 대표적으로 남성 장로와 여성 권사다. 교회 신도의 대부분이 여성이지만 여성은 장로가 될 수 없다. 된다고 해도 최고의사 결정기구 안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다. 즉, 교회의 중요한 일의 결정에 참여할 수가 없다. 교회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리는 사람은 남성들뿐이다. 요즘 많이 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소수에 속한다.


교회의 여남 불평등은 요원하다. 목사도 남성이고 장로도 남성이고 교회의 거의 모든 수장은 남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3년 예장합동 총회장인 임태득 목사의 ‘기저귀’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다.


생리대는 기저귀가 아니다. 인류를 유지하는 현상 중의 하나인 피 흘림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를 사리분별을 못하고 배변을 못 가려서 채우는 아기들의 기저귀와 동일시하다니, 그는 어머니가 있는가? 그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어머니를 존중하는가? 아니면 어머니를 멸시했는가? 부인은 존중하는가? 부인을 혹시 학대한 것은 아닌가? 딸은 있는가? 자신의 딸에게도 그와 같이 말하는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소위 지도자가 이렇게 차별적인데 일반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아직도 교회와 절에는 여성들이 설 곳이 없다. 교회와 절은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허드렛일을 하는 존재들로 당연시한다. 예수가 남성들만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서 죽임을 당한 것인가? 부처가 여성은 해탈을 못한다고 폄하했는가? 법륜스님이 여성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망발을 하였다. 남성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생 때문에 그리 되었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헌신과 희생을 일삼은 전 세계의 여성들은 다음 생에 모두 남자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반면 남성은 지배와 호통으로 살았으니 모두 여성이나 종으로 태어날 것이다. 이런 법륜(2022.12.31. 유튜브, 윤회와 해탈-죽음이 두려운 이유)의 강의는 현재 자신의 인생을 전생 탓으로 돌리며 업보라 여기게 하는 운명론적인 사상에 다름 아니다.


또한, 모든 것이 전생 탓이거나 하나님은 강한 자의 하나님일뿐 약한 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은 돌아보지 않으면서 합리화하고 있다. 종교가 오히려 여성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며 차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처와 예수는 이 땅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성인이 여성을 차별과 억압하라고 했는가? 아니다. 오히려 여성과 약자를 구원하고 그들을 위로하지 않았는가?


아직도 남성중심으로 그 어떤 반성이나 개혁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성찬을 진행하는 차별과 억압이 내재하는 교회에서 필자는 성찬을 먹지 않는다. 여성이 함께 집전할 수 있을 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절에서도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도록 그들의 성장을 막는 수많은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종교가 여성의 생리 현상을 더럽고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며 이를 금기시하는 성직자가 존재하는 한 한국의 절과 교회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여성에 대한 의미를 시대에 맞으며 평등하게 제대로 설교하고 설파하는 성직자가 대거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종교계는 변화를 이루며 불평등과 차별의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영화 피의 연대기 포스터 생리현상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거룩한 것이다.


최근에는 무월경의 수술이 등장하여 한 달에 한번 겪어야 하는 극심한 고통도 이제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성들은 원한다면-아마 대부분 원할 것이다-생리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것이다.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겪는 4-6일간은 참, 여러 가지가 힘들다.


양이 일정하지도 않고 소변처럼 예측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이를 보험으로 적용하여 모든 여성이 혜택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남성들의 비뇨기가 문제가 있을 때 손쉽게 해결하는 수술을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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