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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루 김신영 Sep 05. 2023

철벽 종교계, 종교계의 여성배제

현대에도 여성의 폐해는 눈을 뜨고 볼 수 없으며 귀를 열어 들을 수 없다

유독, 종교계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다. 그들의 전횡과 악행과 폭행이 일파만파다.


아직도 지도자들은 대거 남성들이 독차지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여성 지도자의 약진은 큰 사회변화의 물결이지만 유독 종교계는 여성 진입의 장벽이 아직도 철벽이다.


심지어 법적으로는 차별이 없더라도 여성 목사의 경우 안수를 받아도 청빙을 하는 곳이 없으며, 부목사자리도 거의 없다. 또한, 조계종의 경우 여성 스님이 1만 5천 명 정도 되지만 핵심적인 자리는 제도적으로 모두 남성 스님에 한정되어 있다. 가톨릭은 여성 사제가 아예 없다.


이들 남성 지도자들에게 권력의 행사가 지나치게 집중된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진실과 고결이 생명인 종교지도자들의 추악한 행각은 성차별과 함께 그야말로 종교에 대한 경외심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학력을 속이고 스님이 딸이 있고 돈을 착복하고, 목사의 지위를 승계하고 엄청난 사유재산, 각종 성범죄 등 그야말로 종교계는 치욕으로 물들어 있는 실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원교구에서는 신부의 성폭력 또한 크나큰 문제로 대두되었으나 솜방망이처벌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유교적이며 가부장화 된 종교는 종교 내의 권위의식과 가부장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기독교가 초기에는 강한 개혁적 성향을 갖고 한국사회에 들어왔지만 제도화되고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남성중심적 유교 문화와 결합하여 찰떡으로 고착화됐다. 또한 가부장적 가치가 내면화되면서 남성중심으로 편재된 의식은 여성에 대한 불신현상으로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알랑 레이스(Alan Race)는 기독교를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 바 있다. 기독교의 배타주의는 유명하다. 특히 교회에서 가장 힘든 일이 경직성이라고 설문에 응답한 신도가 많은 것은 아직도 교회에서 지도자들의 경직성이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2020년도 코로나19 사태로 보는 교회의 모습은 아직도 경직성이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공중과 국가 전체를 놓고도 교회와 자신의 신앙만을 고집하는 행태를 드러내었으며 이를 종용하는 목회자도 있다. 또한 신천지의 위장과 교세, 그리고 그들의 전도방식과 문제점들이 낱낱이 드러났다. 신천지의 ‘모략전술’은 이로써 종말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아직도 국가와 사회 전체를 바라보지 않는 자신들의 안위만을 위한 종교 활동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특히 여성에게만 차별적인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종교 활동은 이제 금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이어서 몇 가지 혁신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해소되지 않는 종교계의 성차별을 개선하기 위하여      

첫째, 교회에서는 권사제를 없애고 불교계에서는 팔경법을 없애야 한다. 권사제는 여성이 교회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대표적인 악한 제도다. 이재철목사가 장로제를 호칭제로 통일하자며 제안한 권사제 폐지는 이재철목사를 총회에 고발하고 면직하는 등 강력반발을 일으키고 일단락되어 버렸다.


안영혁(예본교회) 목사는 월간 기독교사상에서 한국교회를 반석 위에 올리기 위해 땀과 눈물을 뿌린 공로자인 교회여성들에게, 거대교단 대표자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가 이 같은 모욕적 언사인데 대하여 개탄한다”며 기독교정신에 반하는 일이라며 거대교단의 잇따른 목사들의 차별적 발언을 비판했다.


 “권사제도는 여성에게 장로직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든 직제”라며 성명옥(예장 전국여교역자연합회) 목사는 성차별을 근거로 한 권사제도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운영에서 철저히 배제된 여성들은 청소, 음식 만들기 등 주방봉사와 안내 등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일으키고 이끌어온 여성들에 대한 하대는 더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권사제도는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김재철목사는 ‘자격만 되면 장로라 부르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이 목사는 한국교회가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면서 “예수께서 이것을 보고 기뻐하실지 염려스럽다”며 우려를 나타내었다. 또한 한국교회의 현실이 서글프다고 하였다. 당연한 시대적 요구를 묵살하면서 지키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나 묻고 싶다.


불교계의 팔경법은 비구니가 많은 한국 불교의 특성상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하는 불평등법이다. 팔경법 8조 항은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의 가부장적 편견, 비구니 승가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 는다고 하면서 ‘깨달음을 남성 불자들만 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한다. 여성 억압의 해결은 중생을 구제하려는 보살의 발심과 같으며 차별의 근거가 되고 있는 경전과 계율은 명백한 왜곡이라고 말한다. 석가모니가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면서 출가한 여성이 지켜야 할 조건으로 남겼다는 팔경법은 후세 남성출가자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는 ’ 여성도 출가하면 궁극적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는 말로 양성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보살이 된다 ‘는 것은 당연히 보편적인 불교진리 일 것이다. 아직도 잘못된 전통을 앞세우면서 진리를 왜곡하는 종단과 문화와 교회를 본다.     


두 번째로 여성 지도자를 50% 이상으로 대폭 기용해야 한다. 할당제를 적용하여 큰 교회나 큰 사찰, 천주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아예 없거나 2%~5%대에 머물고 있는 여성총대(대의원) 비율은 5000명에 여성이 14명이 전부다. 조선일보의 ‘우리도 평등해지고 싶다’의 기사에서는 승려의 잘못을 따지는 호계원에서 남승의 반대로 여승의 참여가 무산되어 차별적 종헌종법을 개정하라는 불교계 시민단체가 비판성명을 냈다. 개신교의 대부분은 여목사 제도를 불허하고 있는 교단에 여성할당제를 신청하기도 하였다.  


‘성평등’은 이제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지만, 종교 내에서는 얘기가 다르다면서 여성 종교인들은 “세상 변화와 별개로 종교 내 성차별이 여전하다 ‘고 말한다. 심지어 일부 남성 종교인들은 본래 종교의 규율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고 항변만 하고 있다. 본래 종교의 규율이 무엇인가? 불평등을 지속하는 것이 그것인가? 이에 장신대 김은혜 교수는 ’ 교회부터 수직적 위계구조와 가부장적 문화를 극복하고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 ‘고 지적한다.


증산도에서는 ‘여자의 원한이 천지에 가득 차서 천지운로를 가로막고 그 화색이 장차 터져 마침내 인간세상을 멸망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성의 안수를 전격적으로 전 교단이 허용하고, 여성 수도자를 인정하며, 여성 교무의 권한을 주는 원불교 등 종교계는 바야흐로 차별이 없는 세상을 이루지 않는다면, 여성들에게 진정한 종교가 아니며 그렇게 된다면 종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비구니의 비율이 조계종의 경우 12000여 명중 5700여 명으로 절반에 육박하고 신도의 경우는 여성이 80%다. 조계종에서 비구니가 주지인 절은 거의 없고 주지를 뽑는 투표에 비구니가 참여할 수 없다. 조계종의 의사결정기구인 중앙종회의 의석 81석 중 비구니는 10석, 그나마 비례대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실무책임자의 경우에는 더 열악하여 조계종 총무원 부장직에 처음으로 탁연 스님이 선출되었다.     


세 번째로 여성들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할 것이다. 목사나 스님들은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설교나 설법을 하지 않는다. 이제 여성들의 권리와 평등을 위해서 적극적인 설교, 설법, 지도가 있어야 한다. 종교의 존속이 여성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금까지 왔다면 앞으로 여성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는 사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여성이 훨씬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여성신도의 비율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했을지라도 종교에서 인정받고 싶으나 종교가 오히려 더 심한 차별현상을 보여 떠나는 것이다.


젊은 층이라 할 40대가 교회에 왜 발을 붙이지 못하는가? 사회는 첨단으로 발달하는데 고루한 가부장적 질서와 유교적 말씀에 신물이 난 까닭이다. 교회에 가면 확실히 조선시대를 느낀다. 조선시대처럼 여성신도들과는 악수도 하지 않는다. 여남 칠 세부동석의 실천이랄까? 이는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본인들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치부하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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