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고래 /김신영
몸의 저항을 이겨낸 문장이 앞다퉈
강같이 흘러 골목 어귀에 도착한다
이 해진 동네를 지날 때 구십구 개의 문은
젖과 꿀이 흐르고 여기 골목길에서
대왕고래를 간절하게 기다린다
빨리 가지 않아도 되는데
기차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강물마저 재우치며 달린다는
하늘 아래 첫 동네
눈물이 마르면 빗물이 흐르고
빗물이 마르면 눈물이 흐르고
몇 번의 봄이 봄을 잊고 나서야
모두 흰 수염 고래를 간절히 기다린다지
너무나 간절해서 고래가 오는
물가에서 새처럼 손을 흔들면서
사람들은 걱정을 한 바구니 삼키고
더는 사람이 태어나는 일을 보지 못해
서로 부여잡고 마구 울었다지
지금 멸종위기 긴급 보호종 흰 수염 고래처럼
거룩하게 아주 거룩하게 어머니를 모셔야만
마을마다 한바탕 큰 웃음을 삼킬 수 있다지
-열두 시인 사화집(6) 2022. 4. 29.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