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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쓸쓸한 뒷모습

예전 글 옮김(1999년에 있었던 일)

by 손원욱

예전에 썼던 글들을 뒤적여 보다가 찾게 된 글이다. 그때의 심정을 지금 쓴다면 다른 내용이 될 것 같아서 그 당시에 쓴 그 글 그대로 옮겨본다. 제목은 ‘아저씨의 쓸쓸한 뒷모습’이다. 아래부터는 그 당시에 쓴 글을 그대로 옮긴 글이다.


살아가면서 젊은 시절에 우리는 많은 일들을 접해 보게 된다. 그 중에서도 일명 ‘노가다’라고 불리는 막노동 일을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았을 줄로 안다. 그 일을 일주일을 했든, 보름을 했든, 단 하루를 했든지 간에 그건 별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해 봄으로서 느끼게 되는 각자마다의 ‘어떤 것’이다. 이 어떤 것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로서의 자부심, 즉 힘써 가며 일함으로서 자신도 남자이며, 앞으로 다른 일도 잘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그런 일을 주직업으로 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동정심을 갖게 되어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미숙한 생각을 일깨우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멋진 차에 넓은 정원을 가진 부유층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겨우내 집을 얻어 보리쌀로 허기를 채우고, 매일 힘들게 땀 흘려가며 열심히, 그러나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이 외에도 각자 나름대로의 ‘어떤 것’을 얻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땀 흘려 일한 노동의 소중함이라든지, 가만히 놀기만 해서는 그저 손에 쥐어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 집이 좀 넉넉한 사람들은 한 번쯤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여기 나의 경우도 위에서 말한 것 중 하나에 포함된다. 99년의 무더웠던 여름날로 기억된다. 며칠간 공사장으로 일을 하러 갔었다. 하지만 일을 하러 가는 것도 그리 쉽지만은 일이었다. 차에 싣고 데려가는 사람들의 여유로움과는 달리, 차에 태워져 일을 하러 가고픈 많은 인부들 중에서 일터로 가지 못하고 남겨지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날 하루는 종치는 것이며, 터벅터벅 힘없는 걸음으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되는 것이다. 나도 몇 번 당해보아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착잡한 심정에 대해서 잘 안다. 내가 일을 못 나가게 되어 착잡할 때보다 더 안타까웠을 때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아저씨들이 처진 어깨로 쓸쓸히 뒤돌아서는 모습을 볼 때였다. ‘어느 집의 가장일 터인데, 무슨 낯으로 식구들을 대할까?’ 그럴 땐 내가 오히려 더 걱정이 되고 그랬다.

오래는 아니지만 꾸준히 일을 하면서 매일 같은 자리에서 일터로 향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몇몇 아저씨들을 볼 수 있었다. 보면 서로 인사할 정도로 아저씨들과 가까워질 무렵, 난 이제 그런 일을 그만두게 되었었다. 그 중 기억나는 한 아저씨가 있다.

처음으로 같이 일을 한 날,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각자 묵묵히 일만 하다 잠시 쉬는 시간, 참을 먹는 시간에 조금씩 이야기를 트기 시작했다. 자세한 가족사항 같은 건 물어보지 못했지만, 아니 물어볼 수 없었지만 아저씨는 그런 이야기는 그다지 원하지 않는 듯했다. 짧은 휴식 시간에 담배를 피우며 연한 웃음을 짓던 아저씨의 얼굴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간혹 떠오를 때면 나도 모르게 슬몃 미소가 지어진다.

며칠간 같이 일을 하면서 본 아저씨의 모습은 자상하고 따뜻했으며 성실했으나, 왠지 마음 한 구석으로는 아저씨에 대한 동정과 안타까움이 자리해 가슴 한편을 아련하게 했다.

어느 날인가는 일을 마치고, 아저씨와 같이 버스를 타게 되었다. 내가 어디에 사시냐고 묻자, 아저씨는 무슨 동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더 자세한 것에 대해서는 말을 피하며, 얼버무리면서 대충 말을 끝내버리셨다. 그런데 왜 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인지, 나는 일부러 버스에서 내려 갈아타야 된다는, 아저씨가 내려야 할 곳에 같이 내려버렸다. 내가 내려야 할 곳이 아니었음에도.

아저씨는 은근히 내 눈치를 보며 걷는 듯했다. 나는 같은 그쪽 방향이라고 하며 조금 따라가다가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저씨는 마치 나에게서 죄를 지은 듯 도망치듯이 웃으며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가면서, 그렇게 훌쩍 사라져 갔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역시 또 일을 마치고, 나와 아저씨, 그리고 또 다른 아저씨 한 명이 그 날 일한 몫을 받아 들고 같이 나오게 되었다. 또 다른 아저씨는 학생인 나는 제쳐두고 아저씨에게 ‘우리 일도 끝났는데 이 돈으로 막걸리나 한 잔하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아저씨는 또 아저씨만의 웃음을 지으며 그러지 않겠다고, 그냥 가겠다고 하며, 가던 길로 계속 걸어갔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저씨의 모습은 이러했다. 물론 그 다음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아저씨는 계속 나갔겠지만 나는 그 날 이후로 나가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 날이 내가 본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조금 일찍 가서 일하게 되기를 바라며 초조히 앉아 있었고, 얼마 후에 일을 시켜주는 사람들이 와서 나를 차에다 실어주었다. 그때까지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아저씨가 왜 안 왔나,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 지하도 계단 밑에서 바쁘게 거의 뛰듯이 걸어올라오는 아저씨를 보았고, 아저씨가 계단을 모두 올라왔을 때에는 몇 대의 봉고차와 승용차에 사람들이, 즉 필요 인원들이 모두 타고 난 후였다. 아저씨는 숨을 몰아쉬며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고, 나는 아저씨에게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멀어져가는 차 속에서 그저 안타깝게, 다시 일어나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힘없이 뒤돌아서는 아저씨의 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자리에 ‘꼭’ 앉아 있지 않아도 되는데... 아저씨가 이 자리에 앉아야 되는데, 아저씨는 간절할 텐데... 그것이 내가 본 아저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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