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그 산은 다시 두들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그렇지, 마이크?" "더 이상 산이 없으니까요."
. 자아를 가진 컴퓨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달과 지구의 전쟁으로 끝나는 이 장대한 이야기를 통해, 하인라인은 사이언스 픽션과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낸다. 그러면서도 무리하거나 유치한 설정은 가급적 피하고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끌어낸다. 그래서 몇만척의 전함이 서로 레이저와 미사일을 주고 받거나, 상상도 가지 않는 초월적인 기술에 의지하지도 않는다. 미래를 다룬 글임에도 현재의 정치와 사상이 통용되고, 전쟁보다도 명분과 실리를 놓고 벌이는 머리싸움과 외교전이 빛을 발한다.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 있다.
. 거기다 알파고가 한 차례 이슈가 된 덕에 이 책의 주요 캐릭터 중 하나인 자아를 가진 컴퓨터 '마이크'에 더 흥미가 간다. 알파고 같은 고도의 인공지능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과부하로 인해", 일종의 에러에 걸린다면? (하인라인은 센스있게 이를 '신경쇠약'이라고 표현한다) 거기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달의 슈퍼컴퓨터 마이크의 에러는 인간이 보기엔 자아로 보일 법한 형태로 발현되는데, 그 에러를 기반으로 학습이 이어지면서 마이크의 '자아'는 계속 정교해진다. 그에 비하면 가상얼굴이나 가상목소리 같은 건 이제와선 딱히 최신기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이니, 마이크는 화면속에서지만 완벽하게 인간으로 인식되게 된다. 이 책에선 거기까지 나가진 않았지만, 로봇 기술이 뒷받침이 되었다면 실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 이런 마이크와, 엔지니어인 주인공, 혁명가인 와이오밍과 달로 추방된 정치범인 라 파즈 교수는 지구에서 임명하는 총독에게 지배받는 달에 혁명을 일으키고 지구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 한다. 책 속에 나오는 달과 지구의 관계는 불평등했기 때문에 달세계인들은 뼈빠지게 일해 사출기를 통해 지구에 식량을 보내고도 겨우 삶을 영위할만한 물과 전기만을, 그마저도 사용료를 지불하고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은 지구에서 보낸 총독과 관료들에 의해 이뤄지고, 달세계인들의 항의는 가혹하게 진압되었다. 마치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를 보는 느낌이고, 이런 배경에서 독립을 위해 라 파즈 교수가 이야기하는 정치사상이나 저항조직 구성 등의 부분은 마치 전문서적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정교하다.
2단계의 동지는 자신의 세포 지도자와, 세포 동료 두 명, 그리고 자신의 하부 세포 구성원 세 명을 알고 있네. 그는 세포 동료들의 하부 세포 구성원을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네. 모르는 경우엔 보안이 두 배로 강화되고, 아는 경우엔 보안이 뚫렸을 때 회복속도가 두 배로 빨라지니까. 일단은 그가 세포 동료들의 하부 세포를 모른다고 가정하도록 하지. 마누엘, 그는 몇 명이나 배신할 수 있을까?
- p. 116. 여기서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와 끊어지는 고리, 보완책은 무엇일까?
※ 사회과학서가 아니다. 소설 맞다.
합리적 무정부주의자는, '국가', '사회', '정부'와 같은 개념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개인들의 행동 가운데 실증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비난을 전가하거나, 나누거나, 분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겁니다.... 비난, 죄의식, 책임은 오로지 인간 존재의 내부에서만 발생하는 문제일 뿐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합리적이기 때문에 모든 개인이 자신과 같은 의견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완벽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지요.... 자신의 노력이 완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지만, 실패 후의 자기 인식으로 낙담하지는 않습니다.
- p. 125. 물론 철학서도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진짜 소설 맞다(....)
. 이렇게 혁명계획을 짜고 조직을 구성하고 마이크의 힘을 빌어 총독을 몰아내는 것까지야 어렵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식민지에 불과한 달에 무력이라고 할 만한 게 있을 리 없는 상태에서 이들은 지구와 맞서야 한다. 대 우주용 공격무기는 물론 제대로 된 미사일 하나 없는 달의 상황에서, 교수와 주인공이 적지로 들어가 외교와 정략을 통해 지구의 국가들을 분열시키고, 달이 가진 사출기와 마이크의 능력만 가지고 독립을 이뤄내는 전개는 읽는 이를 '쫄깃쫄깃'하게 한다. 그리고 대단원에서는 감탄과 함께 아련함을 동시에 남기기까지 하니,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에겐 정석으로 삼아도 될 만큼 멋지다.
. 여기에 방점을 찍는 건 작품 내내 이어지는 하인라인의 위트다. 내용만 봐서는 왠지 어려울 것 같은 내용이지만, 하인라인은 특유의 위트로 이야기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해간다. 마냥 완벽해보이는 마이크에겐 유머감각이 엉망임에도 불구하고 '웃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서 주인공을 상대로 끊임없이 자작개그를 시험하는 집념이 있고, 덕분에 주인공은 끊임없이 고통받는다(처음에 마이크가 만든 유머 : 레이저 빔과 금붕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둘 다 휘파람을 불지 못한다는 겁니다.... 아.... 마부장님ㅠㅠ) 거기다 라 파즈 교수 역시도 지식 곳곳에 풍자와 냉소와 위트를 섞을 줄 아는 인물이고, 묘하게 시무룩한(?) 비유를 섞어가며 이야기하는 주인공도 왠지 이영도 소설의 인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상당히 두툼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딱히 끊고 덮을만한 부분이 나타나질 않아 내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