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과 난장판 뒤에 숨겨진 신념과 용기의 이야기

거장과 마르가리타 - 미하일 불가코프(민음사)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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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를 하자!" 사람들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샹들리에를
붙잡고 날아다니면서 고양이는 큰 소리로 으르렁거렸고 이내 또다시
앞발로 브라우닝 권총을 쥐고 샹들리에 촛대 사이에 석유난로를 끼웠다.



. 엄청나게 길고 엉망진창인 꿈을 한껏 즐기다 일어난 느낌이다. 무려 66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이야기 속에서 꿈과 환상은 마음껏 날뛰고 이성과 현실은 단 한 번도 반격하지 못한 채 철저하게 농락당할 뿐이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환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수한 이들만이 혼란 속에서 살아남아 구원을 받는다. 이런 전개가 무대만 바꿔가면서 계속 반복되다보니 뒤로 가면 좀 징하다(^^;) 싶기도 하지만, 불가코프가 이 소설을 쓴 것은 단순히 무의미한 혼란을 그려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 사실 이 작품은 작가로서 많은 것을 걸고 20세기 초의 경직된 소비에트 체제에 정면도전한 소설이다. 우리는 러시아 혁명과 그 이후의 체제에 대해 몇 줄 정도만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에 나오는 소동들에 대해 소설적인 장치나 과장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게 되지만, 실제로 책에 나오는 혼란과 소동은 다 20세기 초중반 소련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한 것이다. 가령 아파트를 유산으로 받기 위해 지방에서 급하게 달려오다 악마에 의해 봉변을 당하는 사촌의 에피소드는 단순히 개인의 탐욕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경직성으로 인해 주택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벌어진 극심한 주택난에 대한 비판인 것이다. 여기에 외국 화폐에 대한 엄격한 통제나 수용소에 가까운 낙후된 정신병원의 모습, 중산층의 붕괴와 실업, 권력층들의 농단을 정면에서 꼬집는 내용이 소비에트 시절, 그것도 스탈린의 통치기간에 쓰여졌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 거기다 독소전쟁을 거치면서 전쟁에 공헌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어느 정도 정교가 용인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전까지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의 시대 내내 그리스 정교는 박멸 수준으로 탄압받았고, 수많은 신도와 사제가 처형과 유형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 불가코프는 예수와 빌라도, 유다와 마태를 등장시키고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장면을 써내려갔으며, 악마를 등장시켜 사회와 체제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유물론을 신봉하는 이들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어버린다. 덕분에 이 작품은 쓰여진 이후에도 출간되기는 커녕 탄압을 받아 초고가 불태워지기도 했고, 저자가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을 써내려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결국 이 소설이 발표된 건 작가도 스탈린도 모두 죽은 1960년대, 흐루시초프의 '해빙'이 본격화 된 이후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열을 거쳐 일부만 발표될 수 있었을 뿐이었다. 다행히 국외로 원고가 반출되어 프랑스에서 완전판이 출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이 책을 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엄혹한 시대를 힘들게 거친 끝에 간신히 살아남은 이야기였던 것이다.


. 그런 점을 감안했을 때 불가코프가 그려낸 난장판과 초자연적인 장면들은 어느 하나 허투로 넘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 소설의 장면 하나하나는 당시 사회에 대한 작가의 비판과 함께, 공산주의와 유물론을 부정하고 종교적 신념이 녹여낸 것이었으며, 이는 작가 뿐만 아니라 비록 드러내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소련 민중들의 기저에 깔린 신념이기도 했다. 실제 1960년대에 드디어 이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수와 빌라도, 그리고 절대자에 의한 구원의 에피소드는 당연히 검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적판 등을 통해 널리 퍼뜨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70년에 걸친 오랜 탄압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가 무너지자마자 러시아 정교는 국교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결투를 하자!" 사람들 머리 위에서 흔들리고 있는 샹들리에를 붙잡고 날아다니면서 고양이는 큰 소리로 으르렁거렸고 이내 또다시 앞발로 브라우닝 권총을 쥐고 샹들리에 촛대 사이에 석유난로를 끼웠다. 고양이는 사람들 머리 위를 시계추처럼 날아다니면서 겨냥을 하고 총을 쏘아댔다. 굉음이 방에 진동했다. 샹들리에의 수정 파편이 마루에 뿌려졌고, 벽난로 위 거울에는 별 같은 금이 갔으며, 회반죽 먼지가 날렸고, 다 쓰고 난 탄창이 마루 위에서 튀었으며, 창문 유리는 부서졌고, 총알이 뚫고 나간 석유난로에서는 벤진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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