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의 홍수에 휘말려간다. 서사보다 주변의 자잘한 생활사에 대한 이야기에 더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15세기 파리의 모습이 자연스레 눈앞에 떠오른다. 아예 '노트르담'과 '파리의 조감'으로 이루어져 있는 3부는 사건 전개는 단 하나도 없이 오직 노트르담 성당의 모습과 당시 파리의 성벽과 탑과 거리와 건물들을 그려내는데 무려 60쪽을 할애하고 있다. 마치 빅토르 위고와 함께 파리를 투어하는 느낌. 단 그렇게 걷다보면 글자들의 늪에 빠져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서있는거지?' 하는 현기증이 들기도 하지만.
. 축제날에 벌어진 학생들의 난동, 치안이라는 게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파리의 밤거리, 거지들과 광인들에게 점령된 밤의 뒷골목과 황무지, 노트르담과 파리의 거리 곳곳을 누비는 가운데 시인과 집시아가씨, 꼽추와 부주교, 장교, 미쳐버린 은자 등 몇몇의 얼굴이 연이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져간다. 같은 작가의 레미제라블에서도 중간에 워털루 전투의 묘사나 파리의 하수구나 존경받을만한 주교 각하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들이 있긴 했지만 워낙 서사가 방대하다보니 그 와중에도 이야기가 꾸준히 진행됐는데, 이 책은 아예 묘사의 1권, 서사의 2권으로 나눠서 작가가 하고 싶은 사설을 마음껏 풀어가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래서 고래는 언제 잡는건지 모두의 속을 뒤집어놓던 모비딕을 떠올리게 한다. :)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2권부터는 이야기가 진행되어 간다는 것이다(....)
옆으로 가로질러 파리를 궤뚫는 이 직경을 이루는 두 개의 주요 가로와는 별도로, 장안과 대학에는 제각기 따로 큰 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센 강과는 평행하게, 세로의 방향으로 달리면서 그 두 개의 동맥 가로를 직각으로 끊고 있었다. 그리하여 장안에서는 포르트 생 탕투안에서 포르트 생 토노레로 똑바로 내려가고, 대학 내에서는 포르트 생 빅토르에서 포르트 생 제르맹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 두 개의 큰 도로는 처음의 두 도로와 교차하여, 사방팔방으로 촘촘이 짜인 파리 거리의 미로 같은 망상 조직이 거기에 와서 의지하는 뼈대를 이루고 있었다.
- 1권, p. 229. '파리의 조감'. 위고 군. 그래서 꼽추는 언제 나오나? -_-;
. 그렇게 간신히 시작된 2권에서 위고는 언제 자기가 지지부진했냐는 듯 무서운 속도로 장쾌하게 이야기를 휙휙 진행시켜 나간다. 1권에 잠깐 등장했다 사라졌던 인물들이 2권에선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는데, 정작 겉보기엔 뒤틀린 외형을 가지고 있는 꼽추 콰지모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면이 뒤틀려 있다. 한평생 지식과 신념을 추구하는 삶을 살다가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에게 한눈에 반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신념을 한순간에 내던지고 뒤틀린 사랑을 요구하는 클로드 부주교, 외모만은 빼어나지만 에스메랄다에게 한순간의 쾌락만을 얻기 위해 접근하면서 정작 귀족 아가씨와 결혼해 재산과 지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속물 페뷔스부터 시작해 소탈한 예술가인 것처럼 등장했던 그랭구아르는 뒤에서는 재주많은 염소 잘리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을 구해준 에스메랄다를 클로드 부주교에게 넘기고, 왕은 권력을 마음껏 남용하며, 압도적인 힘을 가진 거지떼들은 그랭구아르의 술책에 휘말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집트 아가씨는 그에게 아무런 주의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를 갈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빌어먹을! 저렇게 생겨야만 된단 말이야! 겉으로 보기에 미남이기만 하면 된단 말이야!" (중략)
귀머거리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 무언극의 뜻을 이해했다. 가련한 종지기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차 있었으나,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갑자기 그는 그녀의 소맷자락을 가만히 끌어당겼다. 그녀는 돌아보았다. 그는 침착한 표정을 되찾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가서 저 분을 데리고 올까요?"
그녀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아이고 좋아! 어서 가! 자, 어서! 뛰어가! 빨리빨리! 저 중대장을! 저 중대장을! 저분을 내게 데려다 줘요! 그럼 난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녀는 그의 무릎을 얼싸안았다. 그는 고통스러운 듯이 머리를 끄덕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 2권, p. 262.
. 심지어 주인공인 에스메랄다조차도 이 뒤틀림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잘생긴 페뷔스의 외모에 빠져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콰지모도의 헌실을 외면하고, 어머니와 몇십년만에 상봉하는 그 순간에조차도 페뷔스를 어머니보다 우선시해서 결국 어머니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이렇게 파리의 노트르담은 인물들의 뒤틀림을 동력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 와중에 외면받고 천시당하면서도 유일하게 올곧은 마음을 보여주는 콰지모도가 꼽추로 묘사되어 있는 건 탁월한 아이러니이다.
. 레미제라블에 워털루와 1830년 7월의 파리 봉기가 있다면, 파리의 노트르담에는 노트르담을 놓고 벌어지는 콰지모도와 거지떼들간의 대전투가 있고,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구출하고 대성당에서 '성역' (인간의 법이 적용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는 장소)을 외치는 장면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치열한 논쟁을 통해 벌어지는 파국을 그려내는 힘이 있다면, 위고는 대규모의 군중이 모여 그 거대한 힘을 발산하고 그 발산된 힘이 맞부딪치는 장면을 그려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안고 새하얀 노트르담 대성당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성역을 외치고 대성당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이 그런 콰지모도에게 목놓아 환호하는 장면은 마치 영상으로 보는 것처럼 읽는 이의 오감에 생생하게 느껴지고, 직접 맞닿아 있는 것처럼 그 열기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최고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 장면만으로도 1권의 그 수많은 묘사와 2권에 이어지는 콰지모도의 씁쓸한 수고를 읽은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잠시 후 그는 맨 위의 옥상에 다시 나타났다. 여전히 보헤미아 아가씨를 양팔로 안고, 여전히 미친듯이 뛰면서, 여전히 "성역이다!"라고 외치면서. 그리고 군중은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끝으로, 그는 큰 종탑 꼭대기에 세 번째로 나타났다. 거기서 그는 온 도시에 자기가 살려낸 여인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것 같았으며, 그의 우렁찬 목소리는, 사람들이 좀처럼 들을 수 없고 자기 자신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던 그 목소리는, 미친 듯이 구름까지 울리도록 세 번 "성역이다! 성역이다! 성역이다!" 하고 되풀이했다.
"얼씨구 좋다! 얼씨구 좋다!" 하고 민중들도 부르짖고 있었으며, 이 커다란 환호성은 강 건너편까지 울려서, 그레브 광장의 군중을 놀래고, 교수대를 응시한 채 여전히 기다리고만 있는 그 자루 수녀를 놀래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