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서든, 시험준비로든, 아니면 교양으로든 헌법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봤다면 알겠지만, 대개 헌법책의 처음 부분은 '헌법의 의의와 연혁'으로 시작하고, 그 부분에 '근대 입헌주의 헌법'과 '외견적 입헌주의'라는 용어가 나온다. 근대 입헌주의 헌법이야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프랑스 같은 나라의 헌법이겠지만, 외견적 입헌주의는 좀 낯선 용어다. 많은 책에서는 외견적 입헌주의에 대해 "시민혁명이 성공하지 못한 국가의 '위로부터의 개혁'", "국민주권론과 국가주권론의 절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시대적 흐름에 따른 어느 정도의 정치적 개혁은 있었지만,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국민이 군주나 지배자를 뒤엎고 세운 게 아니라, 군주는 혁명에 위협을 느끼고, 국민은 혁명을 성공시킬 힘이 없어 양 세력이 적당한 지점에서 타협한 것이다. 그래서 주권 역시도 군주나 국민 어느 한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지 않은 채 어중간한 '국가주권'이라는 지점에서 양자가 나눠가지게 된다.
. 이 책의 무대가 된 19세기 후반 비엔나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1848년의 오스트리아 시민혁명은 19세기 초반 유럽의 판을 짰던 메테르니히를 실각시키고 황제 페르디난트 1세를 물러나게 하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결국 온건 부르주아와 급진 노동자층이 분열하고, 뒤이어 표트르 요제프 1세의 제국군에게 진압당하면서 그 이상의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만다. 20년 후 표트르 요제프 1세가 이탈리아 독립전쟁과 프로이센과의 7주전쟁에서 연패하면서 본격적으로 온건 부르주아들이 주축이 된 자유주의 세력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지만, 애당초 본인들이 얻어낸 정권이 아니었기에 많은 부분을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빠르게 성장한 노동자층과 일반 대중이 반유대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운 대중정치가들을 통해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온건 자유주의 세력은 20여년 만에 몰락하고 말았다. 이렇듯 오스트리아의 자유주의는 짧았고, 위태로웠고, 혼란스러웠으며, 결국에는 무기력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이 시기를 살아가던 지식인들 역시 누군가는 시대의 바람을 타고 화려하게 등장했다 밀려나고, 누군가는 회의와 냉소로 시대를 바라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결국 그 끝에서 철저하게 패배하고 만다.
(국회의시당에 대해) 경사로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대리석 조각상을 보면 오스트리아의 의회 자유주의가 자신이 과거에 뿌리가 없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로 자각하는지 드러나 있다. 과거가 없기 때문에 조각으로 만들어 기념할 만한 정치적 영웅이 없다. 그리하여 경사로 입구에 세울 수호자로서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말 조련사" 한 쌍을 빌려왔다. 경사로에 따라 서 있는 것은 고전 역사가인 투키디데스, 폴리비우스 등 여덟 명의 입상이다. 역사적 전통이 결여된 곳에서는 이런 식으로 역사적 현학이 빈 공간을 메워야 한다. 마침내 새 건물의 정면에 서 있는 중앙 상징물로는 아테나가 선정되었다. 역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곳에 신화가 대신 들어선 것이다.
- p. 85.
. 칼 쇼르스케는 당시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시기를 조명한다. 그들은 작가이기도 하고 건축가이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정치가, 미술가, 음악가 등 다양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나 구스타프 클림트, 쇤베르크 같은 유명한 인물들도 있었다. 1부에선 소설가 아르투르 슈니츨러가 상류 부르주아와 귀족 세력의 입장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을 통해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2부에서는 건축가인 카밀로 지테와 오토 바그너가 각각 자유주의와, 그 이후 현대적인 사상을 등에 업고 대립한다. 쇼르스케는 지테와 바그너의 대립에 대해 지테를 '건축가를 쓸모에 대립되는 아름다움의 옹호자'로, 바그너를 '쓸모를 선으로 간주하고 그에 헌신함으로써 건축의 미적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대중적인 문화의 옹호자로 파악하면서 자유주의의 집권기 동안 부르주아의 미의식을 반영한 지테가 자유주의의 쇠락에 따라 밀려나고, 바그너의 대중적이고 '실용적인 미'가 그 자리를 채우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 특히나 이 책에서 자유주의 세력의 붕괴를 다룬 3부는 가장 '쉽고 박진감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인데, 반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대중정치를 표방하다 실패한 쇠너러와 쇠너러의 실패를 딛고 좀 더 세련된 방식의 대중정치를 통해 비엔나 시장의 자리에 올라 자유주의의 시대를 끝낸 칼 뤼거, 그리고 이 혼돈 속에서 점점 가속화되는 반유대주의에 절망해 극단적인 시장주의자로 전향하는 헤르츨이 등장해 자유주의가 새로운 물결에 의해 무기력하게 밀려나고 그 자리를 대중정치가와 민족주의자들이 채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 이렇게 자유주의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은 각자의 길을 모색하는데,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구스타프 클림트를 통해 이 시기를 조망한다. 민족주의자와 대중정치가들이 오스트리아 정계를 장악하고 반유대주의가 판치던 상황에서 유대인이었던 프로이트는 사회적인 야심을 포기하고 은둔상태로 들어가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이를 통해 역사에 길이 남을 학문적인 성취와 개인적인 성공을 거둔다. 클림트는 자유주의에 반발하며 변화에 앞장섰으나 정작 대중정치가들은 클림트의 그림에 대해 '대다수 민중의 심미적 감각을 거스르고 민중의 도덕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그림'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결국 클림트는 어느 진영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몇몇 예술가들과의 만남만을 유지한 채 은둔하며 아르데코로 대표되는 장식 미술에 빠져든다. 다행히 실의에 빠진 이 시기에도 우리가 너무 잘 아는 '키스', '다나에' 같은 걸작들이 완성되긴 했지만, 어느 쪽에도 인정받지 못한 채 세상과 단절된 클림트의 좌절이 얼마나 컸을까.
. 마지막으로 자유주의가 무너진 이후에 등장한 코코슈카와 쇤베르크는 각각 회화와 음악에서 새로운 시대에 적극적으로 가세하여 그때까지 남아있던 기존 시대의 잔해들을 거침없이 밀어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몰두한다. 자유주의가 정치적 주도권을 잃은 뒤에도 부르주아들과 자유주의자들은 '정원'이라 불리는 그들만의 예술이나 문화를 붙들고 있었는데, 코코슈카와 쇤베르크는 이런 정원의 기만을 파헤치고 뒤집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젖힌다. 그들은 각각의 분야에서 그전까지의 관례를 파괴하고, 모든 수식이나 허세를 제거하고 그동안 터부시되었던 직설적인 표현을 거리낌없이 시도하며 정원에 안주하고 있던 이들을 경악시키고 정원 그 자체를 파괴해버린다.
코코슈카의 '살인자, 여인들의 소망' 드로잉.
이 그림이 자유주의자들의 안온한 정원에 떨어졌을 때의 그 충격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 이렇게 책은 한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대체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을 '읽었다'고 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 철학과 문학, 예술과 정치, 건축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가 서술되고 어느 하나 입문 수준에서 허투로 볼 부분이 없기에 내내 더듬더듬 읽어내려간 것으로도 모자라 어림잡아 끝내버린 부분도 있고, 아예 넘어간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무모한 도전인가 생각하면서도 어찌됐든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던 건 우리 역시도 지금 한 시대가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하다면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비엔나의 자유주의가 실패와 타협을 거치며 간신히 집권하고 그에 비해 너무나 쉽게 극단적인 대중정치에 의해 무너지는 과정과 많은 이들이 여기에 영향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 일대기가, 계속해서 바뀌고 있는 이 시대를 살며 휩쓸리는 우리에게 뭔가 막연하고 흐릿하게나마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흐릿함이 계속 쌓이고 덧입혀지다보면 뭔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