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셋 파크 - 폴 오스터 (열린책들) ●●●●●●○○○○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대학을 그만두고 제 힘으로 독립한 이후로 7년 반 동안 그가 뭔가를 이룬 것이 있다면, 지금 여기 말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와 같은 능력이었다. (중략)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다시 말해서 그 어떤 열망이나 희망도 갖지 않고,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고, 하루하루 세상이 주는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것만을 원하는 듯이 사는 것.
- p. 11.
. 그동안 폴 오스터의 책에서 많은 주인공들을 접해 왔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가정이 무너진 이들은 부지기수였고 막노동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스트립 배우를 하는 남자도 있었고 돈이 없어서 공원을 떠돌아다니며 너무 굶어서 군대에 면제된 이들도 있었고, 도박을 하다 빚을 지고 벽을 쌓는 노역에 동원되기도 하는 등 그 모습도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에게서 받는 절망은 그동안의 폴 오스터의 절망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계속 읽어나가기조차도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정도의 절망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먹을 것도 없는 삶에 비관해 심장이 터질때까지 질주하는 방식으로 자살하고 환호를 받으면서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폐허의 도시'가 훨씬 절망적이지 않나 싶을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야기' 속에서의 절망이었고 안심하면서 폴 오스터의 특이한 디스토피아에 감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선셋파크에는 그런 여유 따위는 없었다.
. 주인공의 친구인 빙은 동네의 후미진 클럽을 전전하며 팔리지 않는 밴드를 하는 동시에 부업으로 잡다한 물건을 고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그는 월세를 20퍼센트 올려달라는 주인의 말에 뉴욕의 후진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다, 거의 사는 사람이 없어 동네 전체가 통으로 버려지다시피 한 구역의 낡은 목조주택을 발견한다. 집 주인은 죽고 자식들은 세금을 몇년씩 못내서 소유권이 시로 넘어갔지만 시도 방치하고 있는 그런 류의 집. 빙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젊은이들을 모아 집을 몰래 수리해서 그 집에 불법으로 살기 시작한다. 거기에 주인공이나 가족, 애인의 이야기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선셋 파크에 사는 이들의 절망이 너무 인상깊었기에 다른 이야기에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금세 선셋 파크에 흥미를 잃었다. 그는 그곳 주변에서 뭔가 죽은듯한 분위기, 가난과 이민자들의 고된 삶의 서글픈 공허함을 발견했다. 은행도 서점도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수표 교환소와 다 쓰러져 가는 공공 도서관 밖에 없는 이 세상과 동떨어진 작은 세계에서는 시간이 너무나 흐리게 흘러가서 사람들은 굳이 시계를 찰 필요도 없었다.
- p. 142.
. 이 소설을 읽으면서 10여년 정도 전 공부하던 시절에 싼 값으로 점심을 사먹으러 다니던 도시락 집에 가는 중간에 있는 골목길이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아파트 단지에 면한 큰 길을 따라 걷다보면 대형마트가 있는 번화한 사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골목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골목길 끝에는 대학교와 신축 아파트 단지가 있고 그 입구 어귀에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도시락집이 있었다. 그 골목 중간에는 무너지기 직전인 것처럼 보이는 옛날 주택들이 길 양옆으로 30m쯤 이어져 있었고, 그 한복판에 (무려) 손글씨 간판으로 된 구멍가게 옆에서 노인 분들 몇몇이 이야기도 없이 낡은 의자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 마침 그 해는 지금까지도 기록에 남아있을 정도로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고, 햇볕에 달궈지는 느낌을 받으면서 그 길을 오가다보면 더위 때문인지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햇빛이 내리쬘 때마다 골목 양 옆의 때묻은 흰색 벽은 햇빛을 사방으로 반사했다. 선셋파크를 묘사하는 폴 오스터의 글을 읽으면서 그 동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서 길 하나만 나가면 내가 몇십년을 오가던 길인데 그 바로 옆에 이렇게 낡고 무너질 것 같은 골목이 있었다는 것도, 거기서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자 플로리다로 와서 막노동을 하거나 열 일곱 살 먹은 매력적인 히스패닉 소녀와 사귀는 이야기는 어느 새 바래지고, 선셋파크에 대한 묘사와 내가 걸어갔던 골목의 모습이 겹쳐져 그 모습만이 아른거렸다.
. 이처럼 선셋파크의 절망은 다른 이야기와는 달리 철저히 현실적이기에 더 크게 느껴진다. 실제로 2009년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인들이 그나마 가지고 있었던 아메리칸 드림은 산산조각 났다. 그에 이어진 2020년의 자산거품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격차를 더 크게 만들었으며, 많은 이들은 뒤늦게 이 거품에 뛰어들었다가 반토막난 주식이나 휴지조각이 된 코인을 든 채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때까지 폴 오스터의 좌절이 대부분 학교를 떠나 방황하던 학생시절에 겪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류의 것이었다면, 선셋 파크의 절망에는 출구가 없다. 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은 물론 젊음, 외모, 장래에 대한 전망도 가지지 못한 채 그저 언제 쫓겨날 지 모르는 집안에서 시들어간다. 그나마 소설이 진행되면서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던 각자의 출구는 추상같은 법원의 퇴거명령과 강제집행을 거치며 다시 닫혀버린다. 주인공 역시도 가족과 화해하고 여자친구와 재회하면서 일말의 기대를 품었지만 도망자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도망치는 주인공이 뉴욕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남기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는 말 역시도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의미있는 메시지라기보다는, 절망하고 도망치는 주인공의 의미없고 공허한 넋두리처럼 느껴졌다.
p.s. 폴 오스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온 미국을 휩쓴 2008년에 쓰여진 이 소설 속에서 끈질기다 싶을 정도로 '우리 생애 최고의 날'이라는 영화를 파고든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세 남자가 사회복귀 과정에서 좌절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결국 해피엔딩을 향해 가는 이 영화는 주인공이 써야 하는 논문의 대상이어서가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희망 때문에 주인공과 읽는 이를 몰입하게 한다. 결국 소설 어디에도 '우리 생애 최고의 날'은 없었지만.
차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 그는 이스트 강 건너편의 거대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사라진 건물들, 무너지고 불타 더는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 사라져 가는 건물들과 사라지는 손에 대해 생각했다.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 p.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