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 가는 것들 속에서 남기고픈 것들의 이야기

세인트 메리의 리본 - 이나미 이쓰라(손안의책)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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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있잖아.... 바보 같은 일이라도 한 번 해봐."




벽돌로 지은 건축물의 내구연한은 반세기라고들 한다. 도쿄 역도 나이가 들었다. 역사를 헐고 개축한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다. 외형만 남기고 보수하는 것보다는, 다 부수고 새로운 역사를 짓는 쪽의 효율이 더 좋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그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른대서야 일본도 이제 끝이라고 본다.



. 저마다 다른 길이와 다른 내용으로 이뤄진 다섯 편의 이야기. 단편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한 18쪽 짜리 짤막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가장 긴 이야기는 100여 쪽에 7장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자연히 짧은 이야기에는 인물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은 채 10여분 정도 될법한 장면이 펼쳐지기도 하고, 반대로 긴 이야기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이런저런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기다 제각각의 시대와 직업. 그래서 한동안은 내가 지금 어떤 이야기를 읽는지 영 감이 오질 않았다. 민망하지만, 첫 단편 '모닥불'을 읽고 뒤이어 '하나미가와의 요새'를 읽으며 첫 단편에 나온 남자의 회상인가 착각하기도 했다.


. 이렇게 서로간에 별다른 연관이 없어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섯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공통적으로 읽히는 게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대의 흐름과 타협하거나 굴복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모습을 지킨 채 살아간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산이나 숲에서 홀로 살아가지만, 딱히 외로움이나 아쉬움 없이 오늘을 어제처럼, 내일을 오늘처럼 살아가고 있다. 홀로 된 자신을 지켜낼 줄 알고, 완강해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건져낼 수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현재에 와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 특히 단편 '종착역'에는 그런 모습에 대한 동경이 직접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노인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도쿄역에서 한평생 사람들의 짐을 운반해주는 짐꾼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비굴하거나 굽신거리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짐을 나르고, 묵묵히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모습은 긍지를 가진 장인으로 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이 단편의 배경이 되는 도쿄역과도 잘 어우러져 있는데, 작가는 찬탄과 아쉬움이 섞인 묘사를 통해 읽는 이들에게 오래된 것이 단순히 낡은 것이 아니라 연륜이자 관록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것들이 어쩔 수 없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붉은 벽돌은, 도쿄의 경우 아다치 구의 흙을 사용한 국산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900만 장의 붉은 벽돌을 하나하나 공들여 쌓아 올린 메이지, 다이쇼의 장인들.... 도쿄 역은 실로 수작업이 빚은 일대 작품이며, 당시 장인들이 품었던 기개의 결정체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이 견고함과 더불어, 차분한 대범함과 품격을 갖춘 건물을 지어 올린 그들의 업적을, 두 번 다시 바랄 수는 없으리라. (중략)


나는, 이 건물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도 더 바라보았을 것이다. 역 중앙에서 황거 외원을 향해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에서 바라보는 게 좋다. 어디 그뿐인가. 비가 갠 뒤의 모습은 정말이지 최고다. 빗물에 씻겨 붉은 벽돌의 빛깔이 한층 더 선명해진다. 빗물이 고여 생긴 역 앞의 웅덩이에 그 모습이 거꾸로 비친다. 거리에 불빛이 하나둘씩 켜지는 해질 녘에도 아름답다. 보고 있노라면,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행복하다 느껴진다.

그러나 내 마음과는 달리,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다. 소멸할 건물과 내 대에서 끊기고 말 아카보라는 직업.... 스러져가는 것들 사이의 공감이, 내게는 있다.


- p. 143. '종착역'




. 나에게도 아련하긴 하지만 지금의 장식으로서가 아닌, 버젓하게 서울의 입구 역할을 하던 옛 서울역의 모습이 남아있다. 비록 그 때도 반대편 서부역 출구는 전혀 다른 형태로 리모델링이 되어 있었긴 했지만, 서부역 출구로 들어가 반대로 빠져나오면 지금 기념관처럼 남아있는 서울역 출구를 통해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여담인데 지금의 서부역과 그 근방은 롯데마트에 흡수되어 버리다보니 그 때의 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 때는 한양문고였었나 커다란 서점이 있어서 일부러 거기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책을 읽고 매표소 건너편의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기도 했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지하의 오락실을 구경하기도 했었는데. 그런 걸 떠올리고 있자면 작가가 말하는 아쉬움이 좀 더 와닿는다.


. 세인트 메리의 리본은 이렇게 과거에 대한 향수와 그 모습을 지켜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교고쿠도 시리즈로 잘 알려진 손안의책 출판사에서 나왔지만 딱히 추리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책은 아니니만큼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특유의 분위기와 멋을 한껏 느끼다보면, 어느 새 자신만의 추억과 회상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운치가 있다'라는 표현에 딱 걸맞는 이야기가 아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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