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만으로는 부족하다. '동북아사'여야 한다

러일전쟁 - 와다 하루키(한길사) ●●●●●●●●◐○

by 눈시울


조선에서의 일본의 권익은 이제 바람 앞에 등불 신세이며,
러시아의 힘은 압도적이다.



러일전쟁은 조선전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전시 중립을 선언한 대한제국의 영내에 침입해 진해만, 부산, 마산, 인천, 서울, 평양을 점령하고, 대한제국 황제에게 사실상의 보호국화를 강요하는 의정서에 조인하게 했다. 인천과 뤼순에서 러시아 함선에 대한 공격이 동시에 시작되었는데, 이 공격은 무엇보다도 대한제국 황제에게 러시아의 보호는 없을 것이라는 의미의 결정타를 날려 황제를 체념시키는 역할을 했다. 조선 장악이 끝나자 전쟁은 압록강을 넘어 만주에서의 본격적인 러일전쟁으로 진화해간다.

- 2권, p. 1187. 1904(메이지37)년 3월 2일(2월 18일) 수요일




. 하드커버, 각각 684쪽과 596쪽, A5 사이즈. 흉기로 쓰기에 전혀 부족함 없는 묵직한 책이지만 의외로 막히는 부분 없이 읽어낼 수 있는 건 우리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오군란과 갑오개혁, 을미사변과 청일전쟁, 아관파천 등 우리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대거 등장하고, 나오는 인물들 역시 몇몇 낯선 이들을 제외하면 베베르나 묄렌도르프, 이토 히로부미와 무츠 무네미쓰 같은 우리 사극에 심심찮게 등장해 온 인물들이다. 여기에 우리의 인물들 - 김옥균이나 박영효, 대원군, 고종, 민비도 중요하게 다뤄지니, 구한말을 다룬 대하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면 어려움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책은 청일전쟁과 삼국간섭, 의화단 사건이 차례로 터지고, 러시아가 이를 틈타 뤼순과 대련을 조차하자 조선에서의 입지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내놓는 외교적 방책을 러시아가 거부하고 전쟁에 다다르는 일련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그 '외교적 방책'이라는 것 어디에도 우리에도 조선의 입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그 방책이라는 게 극단적으로는 조선 분할안이고, 한 걸음 물러난 게 중립화와 조선의 요충지에 대한 러일 양국의 군사시설 조차니까.


.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그동안 한국사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갑신정변에서 청일전쟁 사이의 기간을 심도있게 다룬다는 데 있다. 수험 등을 통해 한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했거나 관심을 가지고 근대사를 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시기를 공부하다보면 강화도 조약부터 시작되는 고유명사의 폭탄 드랍에 휘둘리다 이 10년의 기간이 텅 비어있다는 것에 일단은 안도하고(....) 청일전쟁 이후 급속도로 조선이 망국으로 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황금 같은 기간 동안에 조선은 대체 뭘했던 것이나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데, 이 책이 바로 그 부분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와다 하루키는 이 시기 조선이 갑신정변의 실패로 인해 청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갔고, 고종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외교적으로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열강들의 의사를 타진해봤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는 역사를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청국의 압력을 견딜 수 없던 고종은 러시아의 지지를 기대하면서, 1886년 8월 5일 황후의 사촌형제인 민영익을 베베르에게 보냈다. 위안스카이의 압박을 호소하고 러시아의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민영익은 "만국 가운데 러시아만이 조선을 출구없는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다. 국왕께서는 평화와 안정의 정착 그리고 나라의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이 러시아와의 긴밀한 동맹에 있다고 생각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고종의 편지를 접수해달라고 요청했다.

- p. 143. 고종의 대러 접근 제2막



. 조선이 그렇게 소득없는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던 10년 사이에 갑신정변의 실패로 조선에서 한 발 물러나 있던 일본이 와신상담하고 국력을 끌어모아 청을 가볍게 이길 정도로까지 성장했던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청을 이긴 일본 역시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러시아를 상대로 삼국간섭과 아관파천, 러시아의 뤼순-다롄 조차 등 몇 번이나 수세에 몰린다. 그렇게 이 책을 따라가다보면 구한말의 정세가 드라마나 교과서의 역사에서 본 것처럼 일본의 변함없는 우위가 지속된 것이 아니라 계속 급변하고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if를 넣어볼만한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을미사변만 해도 삼국간섭부터 계속 궁지에 몰려있던 일본이 최후의 발악으로 저지른 폭거였으며, 아관파천으로 인해 정권이 뒤집힌 후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친일내각의 총리 김홍집이 대낮에 민중들에게 참살당하는 걸 보면서도 아무 손도 쓰지 못할 정도로 조선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은 사라졌다고 봐도 좋을만큼 급감했던 것이다.




청일전쟁을 치른 청국을 배제하고 조선을 사실상의 보호국으로 삼았어야 했는데, 삼국간섭을 당하게 되자 곧바로 조선 국왕도 말을 듣지 않게 되었으며, 당황한 미우라 공사가 선두에 서서 민비 살해의 폭거에 나섰기 때문에 설 자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고무라가 나서서 어떻게든 만회해왔다고 생각한 순간, 왕을 러시아공사관에 빼앗겨 버린 것이다. 조선에서의 일본의 권익은 이제 바람 앞에 등불 신세이며, 러시아의 힘은 압도적이다.

- 1권, p. 342. 일본이 받은 충격 中 고무라 공사의 의견 부분



. 이렇듯 일본의 침탈이 계속 심해진 것처럼 서술하는 드라마나 교과서의 시각과는 달리, 갑신정변으로부터 10년, 그리고 아관파천으로부터 대한제국 설립을 거쳐 이후 7-8년의 기간 동안 조선은 실제적인 독립국으로서 뭔가 시도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최소한 1904년 이전까지는 조선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구한말 20여년의 역사 속에서 한 번도 외교의 주체로 자리매김하지 못했고, 그 결과 결국 무기력하게 승자의 전리품이 되는 운명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 두툼한 두 권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건 강화도 조약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확실히 '국사'만으로는 부족하고, '동북아사'를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국사'라는 타이틀을 건 이상, 어느 정도의 가이드라인을 정해놓고 그에 맞는 부분은 부각시키고 맞지 않는 부분은 비중을 줄이거나 아예 언급을 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구한말의 국사 교육은 일본과 조선과의 관계 일변도로 치우치는 서술이 대부분이라 실제의 국제관계와는 달리 연장된 일제 강점기처럼 여겨지고는 한다. 그래서 '국사'에서 벗어나 외국 저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당시의 동북아사를 - 그 중에서도 이 책처럼 어느 한 편을 들지 않고 제국주의의 함정에도 빠지지 않는 책을 읽는 건 정말 귀중한 경험이 되어주었다.




일본의 조선 지배 요구는 압록강을 러시아가 제압하는 것과 양립할 수 없으며, 또 뤼순과 다롄을 러시아가 계속 영유하는 것과도 모순된다. 다른 한편 러시아 황제는, 일본에 조선의 지배를 인정하더라도 압록강만큼은 제압해 일본의 북상을 막고 싶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뤼순과 다롄을 포함한 지역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었다. 조선을 취하겠다면 그 이상의 야망은 품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라는 것이었다. 양자의 주장은 화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얄궂게도 바로 이 순간에 전쟁으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2권, p. 802. 니콜라이와 아바자의 새로운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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