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나쁜 사례로 간주되고 있는 일일지라도 애당초 그것이 시작된 동기는 선의였습니다. 하지만 미숙하고 공정함이 모자란 사람이 권력을 잡은 경우에는 좋은 동기도 나쁜 결과를 낳게 됩니다. 처음에는 죄인임이 분명한 사람을 처형하지만, 차츰 무고한 사람까지도 희생자로 만들게 됩니다.
- p. 134. 카틸리나 역모사건
. 로마인 이야기 3권의 시작인 그라쿠스 형제의 이야기는 대략 기원전 134년 전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고, 끝인 폼페이우스의 동방정벌은 기원전 63년에 끝나니 3권은 대략 70년 정도의 이야기를 300쪽이 채 안되는 분량에 담은 셈이다. 2권 한니발 전쟁은 4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긴 하지만 대신 다루는 기간이 120년 정도고. 하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4권의 끝은 기원전 49년에 벌어진 카이사르의 루비콘 강 도하다. 심지어 그렇게 써놓고도 이제 겨우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권이다. 아무리 초반부의 일부가 3권의 뒷부분과 겹치고 '하'권의 후반부에서 카이사르 사후의 내전사를 다룬다지만 그걸 다 감안하더라도, 이 어마어마한 분량을 보면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얼마나 상세하고 꼼꼼하게, 열성적으로 카이사르에 대해 썼는지 짐작이 간다.
. 그 열정 덕에 4-5권을 거치며 여사에겐 '동인녀'라는 수식이 붙게 되지만, 비단 시오노 나나미 여사 뿐 아니라 콜린 매컬로 여사께서도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에서 3부 9권을 통째로 카이사르에게 할애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2부에서도 어린 카이사르를 꾸준히 등장시킨 걸 보면(덕분에 전반부에 비해 중반부터는 이야기가 많이 지루했던 게 사실이다) 카이사르라는 인물은 살아있을 때는 물론이고 2천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인기가 많은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지금까지도 여사의 동인녀 행보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로마시대 인물들의 '야심'과 '허영심'의 지표>
. 하지만 정작 그의 행보를 보면 정말 책에서의 찬양만큼이나 그의 전술적 역량이 역대급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의문이 남는다. 생각해보면 카이사르는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현역 정예군단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10년간 전쟁을 치루지 않았던 폼페이우스와 그의 은퇴한 군단에게 다라키움에서 패배했고, 파르살로스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까지 수세에 몰렸다. 거기에 베르킨게토릭스의 갈리아 연합군에게도 철수 직전에 몰릴 때까지 고전했던 걸 생각해보면 그전까지의 스키피오, 마리우스, 술라, 루쿨루스 같은 '전쟁기계'들에 비해선 손색이 있는 느낌이긴 하다. 그들 역시도 병력차에서 열세였던 건 말할 것도 없고, 상대가 로마인이든 현역이든 한니발이든(....) 상관없이 전략에서든 전술에서든 승리를 거뒀으니까.
. 다행히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나 베르킨게토릭스에 비해 항상 전략적으로 앞선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대국을 읽고 그걸 냉철하게 실현할 수 있었던 카이사르와 달리 그의 상대들이 전략적인 측면에서 적당히 타협했다는 그 차이가 카이사르를 최후 승자 - 콜린 맥컬로 여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마의 일인자"로 만든 요인이 아닐지.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1권을 시작하며 시오노 나나미 여사께서 로마인을 대상으로 던진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과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중략) 그들만이 마침내 지중해 세계의 패자가 되어 천년 제국을 경영할 수 있었는가" 라는 질문이야말로 항목과 주어만 바꾸면 카이사르에게 꼭 들어맞는 질문이고, 카이사르야말로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이상으로 품고 있던 '로마인'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
카이사르 개인의 사전에는 복수라는 낱말이 없다. 복수심에 불타는 쪽과 복수의 대상이 같은 수준에 있지 않으면 복수심은 성립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병사들은 9천 명이나 되는 전우의 죽음에 복수심을 불태우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그 복수심을 활용하는 사람은 뜨겁게 불타기보다 차갑게 깨어있어야 한다. 감정은 흔히 이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계를 넘어서까지 폭주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