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와 칸타의 장 - 이영도(현대문학) ●●●●●◐○○○○
난 너를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
하지만 마트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초현실적인 전투는 그 정신없는 대기의 혼란상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간다르바들은 지상 5미터에서 500미터 사이의 하늘 곳곳에서 마트로 쇄도하고 있었다. 결국 2차원에서만 움직이는 보병의 관점에서 본다면 킬존 구상조차 시작하기 힘든 난해한 공격이긴 했다. 하지만 인류는 그 역사 동안 병기 개발에 게을렀던 적이 없다. 바다에서 전투함들은 온갖 높이에서 날아오는 대함 미사일을 막기 위한 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땅에서는 보병이 쏘는 것에서부터 전투 헬리콥터가 쏘는 것까지 온갖 궤도의 대전차 미사일을 상대하기 위한 방어 병기를 달고 다녔다.
- 간다르바와 인간 간의 전투 부분
. 이번에도 독마새는 아니었다. 물마새도 아니었다. 하지만 읽을만은 했다. 뭔가 이영도 특유의 세계관이라고 할만한 것을 슬쩍 너머로 본 느낌이기도 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간다르바와 인간과 갓파가 보여주는 전투는 '피를 마시는 새'에서 사람이 하늘치를 본격적으로 전투병기로 사용하는 장면 이후 오랜만에 보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는 전투였다. 하늘을 날며 - 5미터에서 500미터까지를 단숨에 뛰어오르는 걸 '난다'라는 개념으로 거칠게 묶어버릴 수 있다면 - 레이저를 쏘는 간다르바와 몰락할대로 몰락한 상황에서도 그래도 남아있는 전자과학병기를 가지고 간다르바를 상대로 무려 '수성전'을 하는 인간. 그리고 물을 병기로 쓰는 갓파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천녀까지. 그 장면만큼은 피마새의 하늘치 대전이 아쉽지 않았다. 아직 이런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다른 이야기도 기대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이 4년이 흘러가긴 했지만, 아무튼.
. 문명의 끝에서 자멸해버린 채 한줌만이 남겨져 이제는 그게 문화든 물건이든 기술이든 잡다하고 밸런스가 엉망인 잔여물만을 가지고 연명하는 인간과, 인간의 세계가 점점 좁아짐에 따라 나타난 이종족들. 이영도는 그런 그들을 끌어모아 여느때처럼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인 생존과 죽음과 번식과 파괴와 사랑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이제는 인류라는 종이 살아있었다는 기록을 위해 박제된 것이나 다름없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인류지만, 그런 인류라도 계속 살아가도 괜찮다고 외칠 수 있는 인류는 무엇일까. 그리고 '살아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 시작부터 80여쪽 정도 이어지는 이영도 특유의 비틀리고 뒤틀린 장광설에 질려 역시 과수원에 불을 지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유혹도 들지만, 이야기는 딱 그 시점부터 점점 개념과 사변을 벗어나 지상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모두를 안도하게 하는 결말을 통해 땅에 단단히 자리를 잡으며 마무리 된다. 그렇기에 동상이몽이겠지만, 읽는 이 역시도 이야기 속의 관찰자의 마지막 질문과 마찬가지로 일말의 기대를 담아 되뇌이게 된다.
'.... 기대해도,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