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뜨는 나라의 공장 - 무라카미 하루키(백암) ●●●●●●●●○○
사람들은 결혼식장에서 그런 파악 불가능한 종류의 감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결혼식이라는 의식에 참가하여 감동도 하고, 눈물을 머금기도 한다. 그러나 설사 눈물이 글썽해진다 해도, 그 눈물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수습되도록 설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 감동은 야구에 럭키 세븐이 있고, 샌드위치에 피클이 들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식의 한 과정에 부수되는 것이라서, 결코 과정 자체를 능가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적당하게 파악 가능'한 감동이며, 파악이 가능하기에 매매도 가능한 셈이 된다.
- p. 104. 공장으로서의 결혼식장.
. 그 동안 하루키의 에세이를 차례차례 읽으면서 각각의 특징을 꼽아봤는데, 이번 에세이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웃기다는 것이다. 그게 CD 제조공장이 됐든 목장이 됐든 어떤 의미로든간에 '공장'(?!)을 돌아다니는 내용이다보니 어딘가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딱딱한 설명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그렇다보니 그 딱딱함을 덜어내기 위해 온갖 드립이 난무하고, 개그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를 찾기 힘들 정도다.
. 여기에 안자이 미즈마루 옹께서도 설명은 적당히 하셔도 되니까 그보다는 재미에 꼭 좀 힘을 실어주십사하고 부탁받기라도 했는지 잔뜩 신나서 소와 놀고 있는 하루키나 가발을 심느라 쩔쩔매는 하루키, 심지어 하루키 사계절 옷입히기(....)까지 글과 상관있는 내용은 물론 상관없는 내용까지 열심히 그려주셨다. 미즈마루 옹이 그리는 하루키 캐릭터는 뭔가 뚱한 것 같기도 하고, 시무룩한 것 같기도 해서 글과도 잘 어울리는데, 요즘처럼 메신저가 보급된 시대였다면 하루키 이모티콘이 대유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덕분에 지금까지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 중 가장 웃긴 에세이가 나올 수 있었다.
<특히나 이번 에세이에는 하루키 뿐만 아니라 미즈마루 옹의 얼굴이 자주 나오는데, 본인을 꽤 훤칠하고 얄쌍한 미남으로 그리시고 있는 게 재미있다. 약간 짱구 아빠 느낌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 이 에세이에는 일곱 곳의 공장을 탐방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사실 그 중에서 진짜 공장이라고 할만한 곳은 CD를 제작하는 마쓰시타 전산과 지우개 공장 정도. 그나마 인체 표본업체까지만 해도 수공업이긴 해도 뭔가 제작한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가발 공장이나 꼼데가르송의 옷을 제작하는 동네 재단집 부분에선 여기도 공장인가 싶다가, 목장과 결혼식장에 이르면 대체 이 에세이, 정체가 뭐냐 싶은 생각이 절로. 그래서 어지간하면 부연설명 같은 걸 하지 않는 하루키도 저 두 곳만큼은 서문을 통해 '식장 그 자체가 가지는 공장성에 매료되었다'거나, '경제동물'인 소의 생산에 끌렸다고 굳이 설명을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공장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결혼식장과 목장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고, 정작 마쓰시타 전산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에서 사라지고 이런저런 개그밖에 생각이 안난다는 게 참. 덕분에 즐겁게 읽었으니 된 거긴 하지. :)
상담실에 계시는 분 중에는 '대머리'라는 말을 당당하게 구사하는 카운셀러도 있다. 그래서 내가 '저, 대머리라는 말, 사내에서는 못쓰게 되어있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천만의 말씀'이라고 펄쩍 뛴다. '대머리는 그 어떤 말로 부른다 해도 역시 대머리입니다. 하긴 상대에 따라 반응도 여러가지지만, 그런 말에 일일이 신경을 쓰며 전전긍긍하니까 안되는 겁니다. 그런 말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가발을 써도, 가발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신경을 쓰고 말죠.'
아하, 옳으신 말씀, 굉장하십니다, 하고 감탄하고 있는데 그 카운셀러도 '아니, 실은 저도....' 스물스물 가발을 벗겨내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대머리는 대머리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단언하니, 왠지 설득력이 있어 나도 모르게 으음, 그렇습니까 하고 신음소리를 내지른다.
- p. 237. 한없이 밝은 복음제산 공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