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으로, 다시 스스로 선택한 어둠으로의 퇴장

포르투나의 선택 - 콜린 맥컬로(교유서가) ●●●●●●●●○○

by 눈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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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술라 안에 사자와 여우가 있다고 수군덕거렸다.
그러나 바로의 생각에 술라 안에 도사린 최악의 동물은
한 마리의 예사로운 고양이였다.



또 웃었다. 술라는 취했고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멍하게 서 있는 바티아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에게 말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자신의 본성을 부인해왔어. 나 스스로 애정과 쾌락을 거부하며 살아왔지. 처음에는 나 자신의 명성과 야망을 위해. 그리고 그것들이 자리잡기 시작한 뒤로는 로마를 위해. 하지만 이제 끝났어. 끝, 끝, 끝이야! 이로써 나는 로마를 그대들에게 돌려주겠어. 하찮고 주제넘고 머릿속이 구더기로 가득찬 그대들에게로!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가련한 나라를 못살게 굴 자유를 다시 얻은 거야. 엉뚱한 놈을 뽑고, 나랏돈을 멍청하게 날려먹고, 당장 내일의 일과 잘나빠진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겠지. 네놈들과 그 뒤를 이어받을 놈들은 로마를 겨우 30년 한 세대 만에 구제불능의 지경으로 몰아넣고 말 거야!"

술라는 손을 들어 자신을 부축하고 선 사내의 얼굴을 아주 다정하고 애틋하게 매만졌다. "극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들 이게 누군지 알겠지? 메트로비오스, 나의 소년, 한결같고 영원한 나의 소년!" 그는 몸을 옆으로 돌리고 메트로비오스의 검은 머리를 아래로 잡아당겨 진하게 입을 맞췄다.

- 2권, p. 301.




. 이 시리즈를 다시 읽으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1부부터 7부까지 시간순서대로 차례차례 읽은 게 아니라 아우구스투스의 황제 즉위로부터 시작해서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온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재미있는 것일수록 아껴두는 게 당연하니까. :) 그렇게 지리멸렬했던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싸움 이야기를 읽고, 무려 3부에 걸친 길고 또 길었던 카이사르 찬양기를 넘어서, 드디어 술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 물론 역사적인 평가로 본다면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가 훨씬 중요한 인물이고, 술라는 기껏해야 로마의 혼란기에 등장해서 잠깐 패권을 잡은 인물에 불과하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봐도 카이사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하권의 주인공이고 아우구스투스 역시 '팍스 로마나'와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권의 후반부를 이끌어가지만, 술라는 로마인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얇은 축에 들어가는 3권, 그 중에서도 1/3 정도의 분량을, 그조차도 마리우스와 함께 등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에서 술라가 (마리우스와 함께) 카이사르와 거의 맞먹는 분량을 차지하는 건 - 그리고 그가 마리우스와 함께 이끌어가는 초반부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인 이유는 - 술라라는 인물이 가진 인간적인 매력이 그만큼 뛰어나기 때문이다.




술라는 변함없이 백치 같은 삐두름한 가발을 쓰고 눈썹과 속눈썹을 칠한 채 걸어다녔다. 그러나 전에는 그를 보면 멈춰 서서 - 동정의 웃음이기는 했지만 - 웃음을 짓곤 했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보면 뱃속에 무시무시한 구멍이 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그가 있는 쪽을 제외한 모든 방향으로 황급히 사라지거나 얼른 멀리 달아났다. 아무도 술라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무도 - 설사 동정의 웃음이라 해도 - 웃음을 짓지 않았다. 아무도 그에게 인사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지근덕거리지 않았다. 술라는 흉일에 문두스에서 나온 생령처럼 등에 식은땀이 나게 하는 존재였다.

- 1권, p. 299.




. 콜린 맥컬로 여사가 그려내는 술라는 자부심과 열등감, 기품과 파괴본능이 동시에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로마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의 혈통을 가졌으면서도 철저하게 몰락한 집안에 태어났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빛나는 자리에 앉기 위해 애쓰고, 수렁에 빠져있었던 자신을 끌어올려 준 은인이자 훌륭한 군인으로서의 마리우스를 존경하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그를 넘어서서 로마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 집착한다. 본성을 감추고 로마 명문집단에 편입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끝까지 삶의 쾌락과 애욕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드디어 일인자가 되어 모든 일을 마치고 모든 숙원을 이룬 그 순간 다시 집착에 자신을 내어맡긴다.


. 빛과 어둠, 일인자와 밑바닥이 공존하는 술라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매력적이었고, 그랬기에 그의 퇴장은 가장 아쉽게 느껴진다. 더구나 그의 뒤를 이어 이야기를 이끌어 갈 인물이 한 치의 어둠도 없이 빛 속에서만 걸어가는 정석적인 영웅 그 자체라는 걸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에 비하면 모든 것을 다 이룬 자리에서,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어둠을 남김없이 드러내고 그 안으로 거침없이 걸어들어가는 술라의 마지막은 얼마나 압도적인지.




술라는 날씨가 아닌 기후를 창조하려고 했다. 사람들은 날씨에는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라면? 그렇다, 기후에는 견딜 수 없음을 알게 될 터였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피 흘리는 넝마가 되도록 자신의 몸을 긁고 찢는 늙고 추하고 실망한 남자에게 주어질 가장 멋진 장난감, 로마를. 로마의 남자와 여자, 개와 고양이, 노예와 해방노예, 하층민과 기사와 귀족. 그가 간직하고 있는 온갖 분노와 차갑고 어두컴컴한 온갖 원한. 술라는 고통의 한가운데서 꼼꼼하고 치밀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복수를 형상화하며 격렬한 위안을 얻었다. 독재관이 왔다. 독재관은 근질거리는 두 손으로 새 장난감을 잡았다.

- 1권, p.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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