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관, 외투(페테르스부르크연대기) - 고골리(혜원) ●●●●●●●●○○
문을 열리고 정장을 한 신사가 몸을 굽혀 뛰어내려서는
계단을 급히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름아닌 코발료프 자신의 코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공포와 놀라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코발료프는 화가 치밀어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는 제과점을 나왔다. 그는 평소와는 달리 누구를 만나든 모른 체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는 어떤 집 문 앞에 이르러 갑자기 멈추어 섰다. 그의 눈 앞에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주차하는 곳에 한 대의 유개마차가 서더니, 문이 열리고 정장을 한 신사가 몸을 굽혀 뛰어내려서는 계단을 급히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름아닌 코발료프 자신의 코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공포와 놀라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전대미문의 광경을 보고 그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그는 간신히 서 있었다. 마치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면서도 그는 그 신사가 유개마차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 2분쯤 지나자 코가 나왔다. 그는 커다랗게 세운 칼라가 달리고 금실로 제봉을 한 제복에 사슴 가죽의 판탈롱을 입고 허리에는 사벨을 차고 있었다. 깃털 달린 모자로 보아 이 사나이는 5등관의 신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 p. 174. 코.
. 외투, 코, 광인일기, 네프스키 거리로 이루어진 '페테르스부르크 연대기'. 이 단편집을 통해 고골리는 페테르스부르크를 대표한 작가로 길이길이 남았지만, 사실 고골리가 페테르스부르크에 살았던 건 20대의 5-6년 정도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고골리는 중등학교(오늘날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살에 상경해 20대의 초중반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보냈고, 그 이후 대부분의 생애를 끊임없이 온 유럽을 이동하면서 살았다. 스물 일곱의 나이로 파리에 이주한 후 로마로, 독일로, 그러다 잠깐 귀국해서 모스크바와 페테르스부르크를 오가기도 하고, 다시 로마와 파리와 독일을 옮겨다니는 등 마흔 살에 모스크바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계속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으니 실제 그의 삶에서 페테르스부르크에 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에 쓴 이 한 권의 단편집으로 인해, 고골리는 페테르스부르크를 대표하는 작가로 기억되게 된다.
. 그만큼 이 책에서 고골리가 다루는 페테르스부르크는 다채롭고 세세하다. '외투'와 '코'의 화려한 고급주택가부터 '초상화'의 구정물 악취나는 낡아빠진 다세대주택에 이르기까지, 고골리는 빛과 어둠을 가리지 않고 도시의 곳곳을 조망한다. 또한 그의 시각은 각각의 지점에 멈추지 않고,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는 길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래서 페테르스부르크 연대기의 단편들에는 유독 인물들이 이동하는 장면들이 많고, 자연히 그들이 걸어다니는 거리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네프스키 거리'가 있다.
. 페테르스부르크의 도심에는 중심가의 윗부분 절반을 뒤집힌 U자 형태로 흐르는 네바 강이 있고, 그 서쪽 강가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으로부터 시작해서, 동쪽 강가의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동서로 뻗어있는 거리가 네프스키 거리이다. 처음 페테르스부르크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중심가였던 이 거리는 한 세기가 지난 고골리의 시대에도 여전히 페테르스부르크의 중심이었으며, 고골리는 이 거리를 무대로 '네프스키 거리'라는 단편을 썼다. 다른 단편들에서는 현실과 초현실의 영역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고골리지만, 유독 네프스키 거리에서만큼은 그저 자정에서부터 다음 자정에 이르기까지의 네프스키 거리의 모습과 그 거리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을 써내려간다. 이 단편에 나오는 두 청년의 이야기는 개개인의 이야기이면서도, 네프스키 거리를 오가는 유혹당하고 절망하고 경박하면서도 유쾌한 이런저런 인간군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경관은 유령의 목덜미를 붙잡고 소리를 질러 동료 두 사람을 불러서는 그들에게 붙잡고 있으라고 이르고는 자기는 잠깐 장화 속을 더듬어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코담배 주머니를 꺼내 지금까지 여섯 번씩이나 동상에 걸린 자기 코를 잠시 시원하게 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 코담배는 유령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저질이었던 것 같다. 그 순경이 손가락으로 오른쪽 콧구멍을 막고 왼쪽 콧구멍으로 코담배를 빨아들이려고 하는 찰나 그 유령이 엣취하고 한 번 요란스럽게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세 사람의 눈에 담뱃가루가 날아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이 주먹으로 눈을 비비고 있는 사이 유령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과연 유령을 확실히 자기 손으로 붙잡았는지 어쨌는지, 그것조차도 모르게 되었다.
- p. 160. 외투.
. 또한 다른 한편으로 네프스키 거리는 순간순간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고골리의 상상이 현실에 뿌리를 내리게 해주는 무게추이기도 하다. 단편 네프스키 거리를 제외한 다른 세 편의 단편들 - 특히 외투와 코는 고골리의 "과하다 싶은" 상상력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해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드는 단편들이다. 그럼에도 이 단편들은 페테르스부르크 - 그 안의 네프스키 거리라는 무대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 덕에 이 단편들은 아무 상상 대잔치(....)가 아닌, 페테르스부르크와 당시 러시아 사회에 대한 비틀기와 뒤집기의 풍자극으로 읽히게 되었다.
. 다만 내 개인적으로는, 이런 초현실적인 부분을 '현실에 대한 풍자'라는 선에서 끝내지 말고, 고골리가 현실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얼마나 상상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는가에도 주목했으면 한다. 단순히 당시의 경직된 관료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위해서라면 가난한 하급관료가 삶의 목적이었던 외투를 강탈당하고 조직사회로부턴 무시당한 채 외롭게 죽는 것(외투)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또는 상상을 가미하더라도, 코가 없어진 상태에서도 허영을 부리는 중급관료(코)의 모습 정도면 충분히 메시지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골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유령이 싸구려 코담배의 악취를 참지 못하고 재채기를 하다 사라진다거나, 사라진 코가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상급관료가 되어 제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써내려간다. 어렸을 적에 이 단편집을 읽었을 때는 이런 부분들이 너무 과하다 싶어 '코'보다는 '초상화'를 더 선호했는데, 다시 읽고보니 이 단편집의 백미는 단연 '코'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보니 코가 혼자 떨어져 나와 돌아다니는 것도 대단한데,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거나 형태가 바뀐 것도 아니고 그냥 '코이면서 제복을 입고 관료행세를 하는데 보는 사람들도 다 그러려니 한다'라니. 터무니없는 망상도 이 정도면 너무 멋지지 않은가. :)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도 일정한 거리를 될 수 있는 한 빨리 달려오느라고 노력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과 어깨 언저리가 어쩐지 유난스레 뜨끔뜨끔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문득 그 원인이 입고 있는 외투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집에서 외투를 잘 살펴보니 두세군데, 그러니까 등과 양 어깨 부분이 모기장처럼 성글게 되어 있었다. 나사는 다 닳아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고 안감도 다 해져 있었다.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외투 역시 동료 관리들의 조롱거리의 대상이 되고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그의 외투는 외투라고 하는 훌륭한 이름은 이미 간 곳이 없고 망토라고 불리었다. 사실 그것은 좀 괴상한 모양으로 되어 있었다. 칼라는 해마다 점점 작아졌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부분을 깁는 데 쓰여졌기 때문이다. 덧대고 기운 폼은 아무리 보아도 재봉사의 솜씨가 아님이 분명했으며, 꼭 자루 같은 게 영판 볼품이 없었다.
- p. 133. 외투.
서기 2000년 4월 43일) 오늘은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이다. 스페인 왕을 찾아낸 것이다. 그 왕이란 바로 나였다. 그것도 오늘에야 비로소 깨달았는데, 문득 그것을 알아냈다.
- p. 341. 광인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