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화사 2권,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자기 앞의 생 外
<한국문학>
1. 제38회(2014년) 이상문학상(문학사상사) - 쿤의 여행 - 윤이형
- 한국문학이 재미없다, 매너리즘에 빠졌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한다는 모든 편견을 벗겨내고,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그게 무엇이든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걸 일깨워 준 2014년 이상문학상 작품집
윤이형의 '쿤의 여행', 작품보다 더 좋았던 편혜영의 문학적 '자서전', 조해진과 안보윤이라는 낯선 이름들까지.
2. 제33회(2009년) 이상문학상(문학사상사) -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 김연수
- 김연수의 글이 으레 그렇듯 얼핏 읽어선 파악하기 쉽지 않은 이 이야기는,
이 시대라면 으레 그렇겠거니 하는 해석에 기대지 않은 채 개인의 이야기에 끝까지 귀를 기울인다.
잘 정제된 아름다운 문장과 아련한 감정에 의지하며 글을 다 읽고 나면, '그'가 답을 찾았길 바라게 되고.
<세계문학>
1. 젊은 소설가의 고백 - 움베르트 에코(레드박스), ●●●●●●●○○○
-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창작에 대해 쓰는 글들을 보면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토로나 책 리뷰에 가까운 글이
많은 데 비해, 에코의 이 책은 '이론', '고찰'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깊고, 체계적이다.
문체부터, 인물, 문학 속의 '운명'에 대한 고찰까지 창작론으로서뿐만 아니라, 문학 이론서로도 읽어볼만한 글.
2.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문학동네), ●●●●●●●◐○○
- 저자는 가난과 죽음을 저항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그렇게 인물들은 가난과 죽음에 맞서 싸우는 대신, 그런 상황에서 끝까지 서로를 사랑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할 수 있고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다시 곱씹게 된다.
3. 이성과 감성 - 제인 오스틴(민음사), ●●●●●○○○○○
- 아주 예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두 자매의 대조적인 구도에만 중점을 두고 읽었기에 결국은 이성과 감정의
대립에서 이성이 승리하는 모습을 그린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의외로 그 구도를 살짝살짝
비트는 부분이 있어 재미있다. 메리앤도 메리앤이지만, 극TTT 앨리너도 마냥 정상은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
4. 나무 - 베르나르 베르베르(열린책들), ●●●●●●○○○○
- 단연코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는 18 이상의 수를 숨겨진 금단의 지식으로 취급하는 세계를 다루는 '수의 신비'.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고갈 위기로 인해 마냥 SF로 읽기 어려운 섬뜩한 단편인 '황혼의 반란자'도 좋았고.
역시 '낯설게 보기'의 대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겐 이런 SF야말로 가장 잘 맞는 장르다.
<과학>
1.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 칼 세이건(사이언스북스), ●●●●●●●◐○○
- 칼 세이건은 지동설과 진화론으로부터 시작해 외계인의 유무, 버뮤다 삼각지대의 수수께끼 등 대중들이 믿는
비과학적인 주장에 대해 과학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반박한다. 그러면서도 과학으로 입증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알 수 없다고 확실하게 답하는 게 책의 매력. 아는 걸 안다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건 참 대단한 일이니까.
2. 판타 레이 - 민태기(사이언스북스), ●●●●●●◐○○○
- 나같은 굵은 문자 'ㅁ' 문과생을 위해 과학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사회사와 경제사를 병렬시킨 책.
덕분에 외계어(....)로 된 공식과 낯선 단어들에 역시나 역부족이구나 하며 책을 덮어버리려고 할때마다
낯익은 역사적 사실이 등장하는 덕에 띄엄띄엄 완독 할 수는 있었다. 그걸 완독이라 할 수 있을진 별문제지만. :)
<예술, 역사>
1. 재즈의 초상 - 무라카미 하루키(문학사상사), ●●●●●◐○○○○
- 하루키는 챕터 맨 앞에 앨범 한 장을 툭 던져주고 일단 이걸 들어보고 와서 느낀 걸 나누자는 식으로 두어장짜리
글을 써내려간다. 그렇다보니 사실 재즈를 잘 모르는 초심자의 눈으로 일독해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고,
맨 앞에 소개된 앨범 하나하나를 들어본 후에 글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쉽지는 않네. :)
2. 유럽문화사 2권. '부르주아 문화' - 도널드 서순(뿌리와이파리), ●●●●●●●●○○
- 유럽문화사를 읽어갈수록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19세기 연재소설의 특징은
지금의 웹소설과 전혀 다르지 않고, 뒤마가 역사소설을 쓴 방식은 지금도 시대극에서 그대로 차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대본집 판매가 매니아들의 주머니를 여는 쏠쏠한 수입원이었다는데 이르면, 이거 그냥 21세기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