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행복 - 정유정(은행나무) ●●●●●●◐○○○
슬픈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했다.
"내 딸 만지지 말라고, 개자식아."
만지지 말라.... 말의 뉘앙스가 교묘하게 악의적이었다. 더하여 그에게 주먹질을 퍼부으며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가 알기로 이런 경우에 적절한 말은 '끼어들지 말라'일 것이다. 보통은 그렇게 한다. 어린 딸에게 저 남자가 너를 추행하고 있다고 학습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오싹한 직감이 그의 머리를 스쳐갔다. 아내의 전남편도 이혼소송에서 이런 식으로 내몰린 게 아닐까. 그로 인해 양육권을 빼앗기게 된 것은 아닐까.
- p. 392. 완전한 행복.
. '7년의 밤' 같은 전작들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정유정은 사이코패스를 이야기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작가다. 설령 그게 소설 속의 인물일지라도 한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하는 것에 주저하고 왜 그가 그렇게 되었는지를 고민하는 작가들이 대다수인 상황에서, 정유정은 언제나 주저없이 '사이코패스는 사이코패스일 뿐이다. 그들이 실제 존재하는 게 현실이고, 거기서 눈을 돌리면 안된다'고 일갈한다. 그렇다고 그녀의 소설이 오락 요소에 치중하는 가벼운 소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 이 작품에서도 그녀는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있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와 그런 살인마에 맞서는 일반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한 이혼한 남자의 죽음과 그에 이어지는 한 아이의 죽음. 그들은 한 여자를 통해 이어져 있었고, 그녀의 주변에는 아직도 많은 표적들이 남아있다. 다만 그녀는 사이코패스를 이야기할 때 흔히 제시되는 '쾌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그녀에게 있어 행복이란 행복의 요소를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를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는 것이기에, 그녀는 필연적으로 그녀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저울대에 올려놓고 방해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며, 그 저울추가 방해로 기울어졌을 때, 그녀는 서슴지 않고 그들을 살인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 그에 비해, 사이코패스가 나오는 이야기 - 그리고 실제 현실에서도 늘 그렇듯 주변의 일반인들은 항상 무력하다. 그건 사이코패스들이 일반인에 비해 뛰어난 능력을 가져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우리 스스로가 주변의 누군가에 대해 미심쩍음을 느끼면서도 그를 '그냥 나쁜 X'라고 단정하는데 거리낌과 거부감을 느끼고, 그를 사이코패스로 의심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거리낌이 사이코패스에게 쉽사리 대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유정은 이번 작품에서도 냉정하고 단호하다. 어쩌면 그 단호함은, 그녀가 그런 이들이 존재하는 것을 도덕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그저 자명한 사실이자 현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유정은 언제나 사이코패스를 냉정하게 지목하고, 그들과 싸우는 일반인 역시도 어느 순간 주저를 벗어던지고 단호하게 사이코패스에 맞선다. 이 책 역시도 그렇고, 그래서 이 책은 미묘하게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어마어마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p.s. 사실 100페이지 정도를 읽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단편소설집인 줄 알았다. 둔한 것도 정도껏이지만(....) 그만큼 각 챕터 하나하나가 완결성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변명하고 싶다(....)
- 나 어제 자기에게 깔려 죽을 뻔했는데, 기억나? 요새 부쩍 잠버릇이 고약해지네. 잠꼬대도 심하고. 혹시 학교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 있어?
기억이 났다. 몇 달 전에 보낸 메시지였다. 이 무슨 뜬금없고 맥락없는 말이란 말인가. 황당해했던 것도 생각났다. 수업이 시작되던 참이라 답변도 하지 못했다. 퇴근 후에는 깜빡 잊어버려 유야무야 넘어갔다.
"형사들에게 이 메시지도 보여줬어."
- p. 243. 그녀는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