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잠, 재의 꿈 - 기리노 나쓰오(비채) ●●●●●●●○○○
"시대에 뒤처지고 말고 할 것도 없어. 난 나야."
"자랑한 적 없어. 난 하고 싶은 대로 일했고, 앞으로도 그럴거야. 우연히 최근 육 년이 내 일과 시대가 맞아떨어졌던 드문 시기였을 뿐이지. 시대에 뒤처지고 말 것도 없어. 난 나야." 고토는 무라노의 말을 듣고 차분하게 말했다.
"맞아. 넌 항상 중심이 있는 녀석이지."
"글쎄." 창문 너머로 메이지 진구의 검은 숲이 보였다. "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어. 오히려 가진 게 없다고 생각했지. 아무것도 필요없기도 하고." (중략)
무라노는 폐허가 되어버린 자신의 집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자신의 원풍경이며, 그 풍경이 있기에 무라노 젠조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떠올리기 괴로웠지만, 출발점이 되는 지점을 가졌다는 사실이 묘한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 p. 126, 130.
. 정말 의외였지만, 기리노 나쓰오치고는 상당히 정석적이고 정상적인(?) 추리소설이었다. 무엇보다도 일단 사건을 풀어나가는 탐정부터가 심지가 굳고 흔들리지 않는 전형적인 탐정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 기리노 나쓰오의 장기라고 하면 역시나 나오는 모든 인물들을 어둡고 일그러진 마음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전작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에서나 이 작품에서나 무라노 젠조에게만큼은 자신의 손은 더럽혀도(그나마 손조차도 그다지 더러워져 있지 않다) 마음은 더럽히지 않는다는, 기리노 나쓰오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특권을 부여하고 있다. 다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에선 확연하게 느껴지는 그녀만의 색깔이 가장 옅다는 - 작가 이름을 가린다면 누구의 작품인지 맞추기 쉽지 않을 정도로 - 아이러니를 동시에 품게 되고 말았지만.
. 초 거대규모의 안보투쟁을 통해 군국주의와 전쟁에 책임이 있는 세력을 표면에서 한 걸음 물러서게 하고, 오로지 경제발전에만 집중해서 달려가던 1960년대 초반의 일본. 조금 더 앞에는 안보투쟁이 있었고, 조금만 더 뒤로 가면 전공투가 등장하는데도 기리노 나쓰오가 무라노 젠조를 등장시킨 곳은 절묘하게도 그 사이 어느 곳이다. 눈에 띄는 갈등없이 사회전체가 경제발전과 올림픽에 들뜨던 평화롭고 풍요로운 시대. 거대 담론보다는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하길 원하는 - 아니 인간에 대한 이야기야말로 거대 담론이라 생각하는 - 작가가 선택하기에는 최적의 배경이기 때문일까. 달콤한 과일에 벌레들이 달라붙는 것처럼, 가장 풍요로운 배경이야말로 그 이면의 인간이 타락해가기엔 가장 적합한 무대일테니까.
. 앞선 '얼굴에 흩날리는 비'가 챈들러의 '빅 슬립'과 겹쳐진다면, 이 작품에선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평범하거나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는 가정들이 실제로는 뿌리부터 썩어 붕괴되고 있었고, 붕괴의 와중에서 발생한 사건의 전말을 정의감과 인간미를 두루 갖춘 무라노 젠조('무라젠')가 밝혀낸다는 전개. 그렇다고 샘 스페이드처럼 일단 주먹부터 앞세우는 마초도 아니고, 필립 말로처럼 겉으로는 멀쩡하게 생겼으면서 실제로는 끝없이 주절주절 신세한탄을 읊조리는 것도 아닌, 성실하고 과묵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행동력을 갖추고 있고, 젊은 나이에도 루 아처 처럼 어딘지 원숙해 보이는 모습으로 '불탄 재 속에 숨은 찬란한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고 싶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 이렇게 써놓고 보니 정말 기리노 나쓰오 답지 않다는 게 실감이 난다. 그녀의 작품 속에도 '기댈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게 존재하고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니.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사나에가 장례식장에 갔다 친정에 들렀나. 이내 요시미가 하얀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안고 나왔다. 무라노는 저도 모르게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는 해맑은 눈으로 물끄러미 무라노를 바라보았다. 고토를 쏙 빼닮았다.
- p.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