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유목제국사 - 정재훈(사계절) ●●●●●●◐○○○
이것은 동쪽 끝에 고구려로 추정되는 한반도 북부로부터
남쪽에 북중국의 선비계 국가와 서남쪽에 토번,
그리고 더 서쪽에 페르시아와 비잔티움이 있었으며,
이들을 연결하는 중심부에 모두와 맞닿은 돌궐이 위치했음을 의미한다.
. 우리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이 통일되지 못한 채 분열된 국가로 남아있는 것은 주변 소수민족에 더할나위 없는 기회로 작용해왔다. 한나라가 쇠퇴하고 진나라와 남북조가 온갖 다채로운(?) 혼란과 막장을 보여주던 시기에 동쪽에서는 고구려가 최전성기를 맞았고, 그 시기에 서쪽에서 어마어마한 영토를 차지하며 등장했던 것이 돌궐이다. 동쪽으로는 고구려를 공격하기도 했고, 서쪽에서는 동로마와 연합해 페르시아와 싸우기도 했으니 몽골 이전의 세계제국이었던 것. 또 그 내부에서는 거대한 경제권이 형성되기도 했고.
이런 전대미문의 거대 유목제국이 등장함에 따라 세계는 과거와 달리 분절되지 않고 모두 연결되면서 유라시아 대륙 동서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다. 이것은 이곳에 안정과 평화를 가져와 자유로운 왕래와 안전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통합 체제, 이른바 '자유무역지대(Free Trade Area)'라고 불릴만한 거대 통상권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 p. 190. 급속한 대외 팽창과 거대 유목제국으로의 발전
. 다만 그 반대로 중국이 정신을 차리고 통일 왕조를 이뤄서 본격적으로 국력을 집중 투사하기 시작하면 여간해서는 당해낼 방법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인데, 하물며 그게 당태종의 당나라였으니. 결국 돌궐은 한 차례 당나라를 위협하긴 했지만 결국은 당태종의 군사전략과 정략 앞에 분열되고 농락당하면서 무릎을 꿇고 만다. 측천무후가 집권하던 잠깐의 혼란기에 재기에 성공하기는 하지만, 그나마도 현종이(양귀비에 빠지기 전 정신차리고 있던 그 현종이다) 등장하자 또 한 번 멸망하며 200년의 짧은 역사가 끝이 난다. 말 그대로 불꽃같은 나라였던 셈. 사실 이 한 시기만 버텨냈다면 이후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으로 당나라가 급격히 혼란에 빠지는 시기가 오니까 더 오래 버텼을지도 모르겠지만, 반대로 돌궐의 위협이 현존했더라면 현종이 그렇게 나태할 수 있었을까 하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역시 역사엔 IF가 없다는 게 답이겠지. :)
. 덕분에 정재훈의 이 책은 통사치고는 상당히 밀도가 높아서 삼국지나 초한지를 읽는 듯한 느낌으로 돌궐과 중국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상세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대제국을 건설하고 고구려에서 비잔티움까지 영향을 주고받은 제1제국의 흥망과, 당태종의 정벌에 의해 그 드넓은 제국이 통째로 멸망한 후 당나라 치하에서의 60년, 그리고 고종 사후 측천무후의 혼란기에 당의 지배를 벗어나 제2제국을 건국했다가 현종 시기에 멸망하기까지의 60년. 200년도 되지 않는 이 짧은 기간 동안 부흥과 정벌과 멸망이 두 번이나 반복되고 그 때마다 영웅과 암군이 등장하는데 재미가 없을리가. 초반 돌궐의 전설이나 제도, 문화 부분을 과감히 스킵하고 이야기에만 집중한다면 첫인상에 비해선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오아시스 주민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유목민들과 적극 결합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오아시스와의 경쟁만이 아니라 다른 유목민들로부터 자신들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특정 유목민들을 지원해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 운영하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오아시스 주민들은 자신들과 결합한 유목민들의 힘을 빌려 거대 정주 농경 국가를 압박해서 많은 물자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목 국가의 발전으로 확보된 교역로를 통해 막대한 재화를 유통시킴으로써 보다 많은 이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오아시스 주민들에게 유목민들과의 결합은 자신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였다.
- p. 20. 통합된 초원과 오아시스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