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역사 - 기독교는 서양의 종교만은 아니었다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 - 김호동 (까치글방) ●●●●●●●●○○

by 눈시울
동방 기독교와 동서문명.jpg



궁극적으로 경교의 변신은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시키고 말았고, 고난과 역경을 견뎌낼 만한 자생력과 저항력을 상실케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따라서 9세기 중반 이후 불어닥친 거센 역풍을 이겨내지 못하고 소멸의 운명을 맞게 된 까닭도 따지고 보면 경교가 바로 중국적 토양에 강건한 뿌리를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p. 154. 경교의 쇠퇴




. 흔히 역사상의 중앙아시아에 대해서 중국과 유럽, 그리고 아랍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어있었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세력에도 뒤쳐지지 않는 넓은 영역과 강대한 힘을 기반으로 파괴와 성장을 반복하면서 역사의 주연으로서 한 축을 담당한 이들이었다. 또한 유목민족이 뿌리를 내린 초원과 함께 고도의 상업적, 문화적 번영을 이룬 도시문명이 동시에 존재했던 양면성으로 인해 근대에 이르러 쇠퇴하기 이전의 중앙아시아사는 파면 팔수록 설익은 편견을 깨는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 이 책은 중앙아시아의 그런 새로운 모습들 중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흔히 기독교라고 하면 서양의 종교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고 동양에는 바다를 건너온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 '동방 기독교'는 유럽의 기독교와 비슷한 시기에 전파되어 유럽 선교사들이 건너오기 몇백년 전에 이미 전성기를 맞이했고, 최전성기에는 이슬람교까지도 누르고 중앙아시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도 했다. 하지만 격변하는 중앙아시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져갔던 문명들이 그러했듯 동방 기독교 역시도 그 번영이 무색하리만큼 급격하게 쇠퇴했고,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 시절에 이르러서야 유럽의 선교사들이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발을 디뎠을 때는 그 자취조차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잠시 그 과정에서 짧고 가늘게 동서양의 기독교도들이 서로를 찾아간 적도 있긴 하지만, 번번이 엇갈린 끝에 의미있는 만남은 결국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기독교의 역사는 서양의 기독교가 일방적으로 동양에 포교하는 식이 되고 말았다.



. 대부분의 종교가 그렇듯 기독교 역시도 12사도와 바울이 생존하던 시기부터 교리의 해석을 놓고 논쟁이 있어왔으며, 이러한 논쟁들은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확장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12사도와 바울의 이방인 논쟁은 바울로 하여금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중해 선교로 방향을 바꾸게 했으며, 수백년 후 아리우스 파와 아타나시우스 파의 삼위일체 논쟁은 패배한 아리우스 파로 하여금 북방 선교로 길을 잡아 게르만 족에게 널리 기독교가 전파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의 성상논쟁은 러시아에 그리스 정교를 전파하게 만들었으며, 루터의 종교개혁은 예수회를 창립하여 바닷길을 통해 전세계로 기독교가 퍼져나가게 만들었다. 동방 기독교 역시도 예수의 신성을 놓고 벌어진 네스토리우스와 반대파들 사이의 논쟁에서 네스토리우스가 패배하면서 축출된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이 지중해 세계를 떠나 동쪽으로 교세를 확장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분리 후 5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동방 기독교는 중앙아시아에 진출하고, 그 후 2-300년의 기간 동안 사마르칸트를 거쳐 당나라와 몽골 초원, 심지어 발해에까지 이르는 놀라운 전파 속도를 보여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기독교가 자신들이 축출한 네스토리우스 교가 동방에서 확장하고 번영하는 것을 전혀 모른 채 12-13세기 몽골제국이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전까지 '프레스터 존 왕국' 같은 환상이나 믿고 있었다는 건 당시 유럽 세계의 고립성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와중에 네스토리우스 교는 몽골제국에까지 진출해 칭기즈칸의 넷째 아들 툴루이의 부인인 소르각타니 베키가 네스토리우스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둘의 아들인 몽케와 쿠빌라이가 차례로 원의 황제가 되고 훌라구가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일 칸국의 칸이 되면서 동방기독교의 입지가 안정화된다. 특히 일칸 국의 칸이었던 훌라구는 이슬람 세력의 중심지인 바그다드를 초토화시키고 팔레스타인 초입까지 진출했고, 훌라구의 아들인 아바카 칸은 맘루크를 상대하기 위해 십자군과 연합작전을 벌이기도 하지만 작전이 수 차례 실패하는 사이 바뀐 칸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 동방 기독교는 큰 타격을 입는다. 거기에 뒤이은 흑사병과 명나라의 건국, 몽골의 티벳 불교 수용 등을 겪으며 점점 자취를 감추게 되고, 결국 동아시아에서의 기독교의 역사는 16세기 대항해시대의 바람을 타고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에, 서양 선교사들이 일본에 도착했을 때부터 쓰여지게 된다.


. 한 때 중앙아시아 전역을 휩쓸고 동아시아에까지 진출했던 동방기독교는 왜 그토록 심하게 몰락한 것일까. 몇백년간 핍박을 받던 로마의 기독교는 결국 살아남아 로마를 장악했고, 한국의 기독교 역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 명맥을 이어오다 개항 후 오늘에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에도막부 250년 간의 대박해를 겪은 일본에서조차 '카쿠레 키리시탄'이라 불리는 숨겨진 기독교인이 남아있었다는 것과 비교해보면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기독교가 그토록 큰 타격을 받고 중동 변두리의 외진 땅에서만 겨우 명맥을 이어나가게 된 것은 의외로 여겨진다. 다른 곳의 기독교와는 달리 권력층을 중심으로 포교가 이뤄졌기 때문에 민중 속에 스며들지 못해서였던 것일까. 아니면 땅이 넓은 중앙아시아의 특성 상 굳이 각지에 분산된 채로 숨어들 필요 없이 넓은 땅 어딘가 '비어있던 공간'들에 피난해서 뭉쳐있다가 그 피난처들이 하나하나 전염병과 정벌 등으로 일거에 소멸되는 식으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어쩌면 넓디 넓은 초원 어딘가에 형태를 바꾼 채로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게 아닐까. 이렇듯 동방 기독교의 이야기는 읽는 이에게 이런저런 수수께끼와 if를 불러일으킨다.


keyword
이전 02화돌이킬 수 없었던 한 순간의 타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