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3권 - 페르낭 브로델 (까치글방) ●●●●●●●●●●
레판토 해전도 완벽하게 성공시키지 못한 것을 몇년에 걸친 평화가 완수할것이다.
즉 평화가 투르크 함대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지중해에 평화가 회복되었다면, 이는 전쟁이 이웃한 더 큰 바다, 즉 서쪽으로는 대서양, 동쪽으로는 페르시아 및 인도양에 진을 쳤기 때문이다. 투르크가 동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면, 에스파냐는 서쪽으로 움직였다. 이는 그 특성상 사건사가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변동이다. 분명 이 책이 제안하는 설명과 다른 설명들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론의 여지 없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지중해에서 오랫동안 대립했던 에스파냐 진영과 투르크 진영이 서로에게서 멀어졌고, 그 결과 지중해에서는 1550년부터 1580년까지 지중해의 중요한 특징이었던 대국들 간의 전쟁이 모습을 감추었다.
- p. 374. 에스파냐-투르크 휴전
. 세 권에 걸친 16세기 지중해의 자연과 경제상황에 대한 두툼한 글에 이어, 페르낭 브로델은 드디어 본격적으로 책의 부제인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 세계'의 정세를 다루기 시작한다. 물론 경제도 자연도 중요하고, 앞선 세 권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면 이 시기에 대해 그저 피상적으로 사건을 나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읽는 재미에 있어 정치와 전쟁,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올 수는 없다. 마치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페이지가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게 아쉽고, 읽고 나서는 그 기분을 그대로 살려 역사를 다룬 게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던 책이었다.
. 이 책에선 그동안 어마어마한 분량의 배경을 읽어준 것에 감사하기라도 하듯 펠리페 2세와 돈 후안, 잔안드레아 도리아와 울루지 알리, 메흐메트 소콜루 같은 걸물들의 활약과 이들이 펼쳐낸 키프로스 공방전과 프레베자 해전, 알제 공방전을 거쳐 마지막 레판토 해전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세계의 유명한 전투들이 흐름에 맞춰 차례로 서술된다. 16세기 내내 에스파냐와 투르크 양대 강국과 프랑스, 베네치아, 교황령에 이르기까지 지중해에 조금이라도 닿아 있는 국가들은 외교와 자금과 병력을 쏟아부어가며 치열하게 맞붙었다.
. 16세기 내내 계속 밀리던 에스파냐가 레판토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지만, 투르크도 이에 질세라 '수염을 조금 태운 것 뿐'이라며 더 거대한 규모의 함대를 진수해내며 지중해에서의 긴장감이 극에 달하던 그 순간, 양대 강국은 우리가 언제 싸웠냐는 듯 지중해에서 한순간에 발을 빼버린다. 투르크는 중동, 에스파냐는 대서양으로 각각 등을 돌리고, 지중해는 한순간에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나버리고 만다. 그리고 역사는 무적함대나, 30년 전쟁이나, 2차 빈 포위처럼 장소를 바꾸어 이어진다.
어렵고 암울한 협상의 시기에 돌연 전쟁을 지중해 권력 밖으로 밀어낸 이 시소의 움직임은 이중적이었다. 한편에서 포르투갈과 대서양을 향해 지중해라는 갇혀 있는 무대보다 훨씬 더 큰 해상 모험 속으로 에스파냐를 밀어넣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투르크를 페르시아와 아시아의 깊숙한 곳들, 즉 카프카스, 카스피 해, 아르메니아, 나중에는 인도양으로 향하게 했다.
- p. 347. 에스파냐-투르크 휴전
. 이렇게 읽는 이들은 전쟁의 경과를 따라가다 뜬금없고 허무한 결말과 마주한다. 제국의 명운을 걸어야 할 것처럼 보이던 지중해의 요충지들은 한순간에 변방이 되고, 레판토 전후로 어마어마한 투자를 통해 만들어진 함대들은 다른 전쟁에서 불태워지거나 그조차도 없이 조선소에서 썩고 녹슬어간다. 어쩌면 페르낭 브로델은 지중해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지중해가 역사의 주인공에서 한 순간에 변방이 되어버리는 허무하기까지 한 대전환에 답을 내기 위해 16세기 지중해를 연구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방대한 분량에 허우적거리면서 어찌저찌 책을 읽어내려온 독자들은, 묵직하고 두툼했던 네 권의 책을 거친 끝에 저자와 눈높이를 맞추어 400년 전의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