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 - R. H. 토니(한길사) ●●●●●●●◐○○
부의 획득을 최상의 복으로서 숭앙하는 사회는
이 생에서 빈자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빈자는 내세에서 저주받을 운명이라고 쉽사리 간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 이 책은 영국의 사회경제사학자이자 노동당의 정책입안자였고, 그럼에도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R. H. 토니가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연구한 경제사 책이다. 이런 류의 책으로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가장 유명할텐데, 베버가 자본주의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면 이 책은 반대로 그 시대의 자본주의가 기독교에 끼친 영향을 살짝 부정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 베버가 그의 책에서 성장과 노동에 주목하고 이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하는 기독교의 역할에 주목했다면, 토니는 이자와 대부를 중심에 두고 중세부터 근대 초기까지 '죄악과 필요악의 중간 어딘가'를 벗어나지 못했던 이자의 위치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어떻게 합리화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다만 토니 역시도 칼뱅이 주장한 소명설이 자본주의를 진일보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시각을 같이 하고 있으니만큼, 막스 베버를 비판한다기보단 베버가 보지 않은 이면에 주목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칼뱅주의는 경제적 덕목들을 수용하고 성원했다고 말할 수 있는 최초의 체계적인 일군의 종교적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것의 적은 축적이 아니라 방종과 과시를 위한 부의 남용이다. 그것이 추구하는 이상은 근면한 노동으로 자신의 성품을 단련하며, 신이 용납하는 직무에 전념할 줄 아는 사람들이 균형잡힌 진지함으로 부를 추구하는 사회다.
- p. 185. 대륙의 개혁가들 - 칼뱅
. 루터가 아직 자본주의를 수용하지 못하고 선을 그었던 데 비해 칼뱅은 소명설을 주장하며 근면한 노력을 권면하고 부의 남용을 배격하면서 '신 앞에서 겸손한 자본주의'를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그 결과 기독교는 사회의 변화를 기존의 믿음과 조화시킬 수 있었고 세상과 괴리되지 않은 채 사회를 이끌어가는 선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칼뱅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한 청교도는 점점 더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에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채 보수성을 띠고 다시 역주행을 하거나, 심지어 후기 청교도주의에 이르러서는 폭주하는 자본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면죄부를 부여하기까지 한다. 팽창하는 자본주의는 기독교를 옥죄면서 노동을 넘어선 착취, 이윤추구를 넘어선 수탈까지도 묵인하고 '축복'할 것을 요구했고, 자본 앞에 무력해진 기독교는 부의 팽창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빈곤을 태만이자 죄악으로까지 규정하게 된다. 여기에 국가 역시도 자본이 가져오는 부에 눈이 멀어 이를 용인하면서 산업자본주의 초기의 참혹한 노동착취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부의 획득을 최상의 복으로서 숭앙하는 사회는 이 생에서 빈자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빈자는 내세에서 저주받을 운명이라고 쉽사리 간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종교인들은 가난을 구제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교의가 영혼을 강건하게 만든다고 주창했거니와, 그런 교의는 부상하던 정치산술학파에 의해 사회 질환에 대한 최고 치유책으로서 환영받았다. 도덕가들이 손쉬운 자선은 성품을 훼손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면, 경제학자들은 그것이 경제적 재앙과 재정적 파산을 가져온다는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 p. 387. 가난에 대한 새로운 처방
. 이렇게 참혹한 노동 현실에서 약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선 것은 마땅히 그랬어야 할 교회와 국가가 아닌 사회주의를 필두로 한 사상가와 운동가들이었고, 그 결과 시간이 지나고 차례차례 들어선 공산주의 국가들이 자본의 논리를 대변한 죄목으로 종교를 얼마나 가혹하게 탄압했는지, 또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종교가 다시는 그 사회적 영향력을 되찾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 스스로의 역사이자, 스케일은 다를지언정 한국 교회가, 그리고 한국 종교계 전체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