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인 시각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 이 두 가지 자세를 함께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의 기간을 다룬 책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정말 많지만, 피해자였던 우리는 물론이고 당사자였던 일본 역시도 사실보다는 당위를 우선시하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뭔가 좀 더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은 부분에서, 그런 원인을 탐구하는 것은 상대를 합리화하거나 옹호하는 게 아니냐는 항의가 나온다거나, 그 놈이 다 그 놈이라고 일소에 붙인다거나, 편가르기에 맞닥뜨리면 그런 주장들을 뛰어넘고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피해자인 우리의 입장에서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런 제약을 뛰어넘어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폭넓게 보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청일전쟁부터 러일전쟁,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골랐던 확장과 폭주와 파멸의 선택지를 꼼꼼하게 분석해 가는 이 책은 무척 귀중했다.
. 일례로 1920년대 군부에 대한 일본 하층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이를 등에 업은 군부의 이누카이 츠요시 피습사건(5.15 사건)과 이에 이어지는 사이토 마코토 피습사건(2.26 사건)만 해도 국내에서는 정신 못차리는 군인들에 의한 폭주로만 인식될 뿐(물론 그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 있던 일본국민들의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담, 대안세력으로 군부의 정책을 선택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언급되지 않는다. 그럼 당시의 일본 국민들은 왜 정치를 불신했는가? 유신지사 출신의 고위직 위주로 구성되었던 당시의 일본국회는 민생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고, 아슬아슬하게 이어져가던 민생경제는 1920년대에 경제대공황이 터지면서 급격히 피폐해져갔다.
정우회의 선거 슬로건에는 농민 구제, 국민 보건, 노동 정책 항목이 없었습니다. 반면 육군의 정책은 굉장했습니다. 예를 들면 농민 구제 항목에는 의무교육비의 국고 부담, 비료 판매 국영화, 농산물 가격 유지, 경작권 보호 등이 있었습니다. 노동 문제에 관해서는 노동조합법 제정, 적절한 노동쟁의 조정기구 설치 등이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이 전쟁을 시작한다면 이러한 육군의 '아름다운 슬로건'은 그림의 떡이 되고 농민과 노동자의 생활은 매우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정치, 사회의 변혁을 위해 육군에 기대를 걸었습니다.
- p. 341. 전쟁의 시대로
. 이런 부분을 파고든 것이 군부였고, 그 결과 전쟁이 터지면 징병되어 목숨을 내걸어야 했던 무산계급들이 대거 군부를 지지하게 되었다. 물론 군부 역시도 단순히 거짓으로 지지를 얻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무산계급의 삶과 지식수준을 어느 정도 끌어올려 놓아야 전쟁이 났을 때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징발할 수 있다는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민생에 대한 기존 정치의 외면과 군부의 속내를 읽지 못한 국민들의 지지가 비극의 단초를 제공하게 되었다. 이런 공들인 분석을 읽고 있자면 뚫려 있던 퍼즐이 맞춰져 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 또한 그동안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내내 무력한 이미지였던 국민당 정부에 대한 전혀 다른 시각은 이 책에서 가장 몰입하게 되는 부분이다. 만주에 일본이 진출하고 중일전쟁이 임박한 1935년, 겨우 40대 초반이었던 후스는 최고권력자인 장제스를 앞에 두고 해안지방과 북부는 물론, 천진과 상해 등 중국의 절반까지도 내줄 각오를 한다면 일본을 태평양의 세계전쟁으로 몰아넣을 수 있고, 그러면 중국은 승리할 수 있다는 엄청난 주장을 피력한다. 태평양 전쟁을 앞두고 일본이 세운 '단기전에서 일단 이득을 얻고 휴전하면 된다'는 터무니없는 희망회로와 비교하면 이거야말로 가히 "세계대전략" 이라는 느낌. 심지어 당시 같은 자리에 있던 왕자오밍은 이를 반론하면서 중국의 피해를 근거로 드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면 일본을 이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후의 공산화를 막을 수 없다'며 그 이후의 세계정세를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10년, 15년 후 현실화되었다. 최근에 와서 마오쩌둥의 팔로군이 일본군과 싸우고 장제스는 도망만 다녔다는 주장 자체가 많은 사료들에 의해 대부분 부정되고 있긴 하지만, 세계대전을 예상하고 대전략을 수립하려 했다는 것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후스는 "미국과 소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정면으로 버티면서 2~3년간 계속 패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후스는 이것을 장제스, 왕자오밍 앞에서 단언했습니다. (중략) '우리가 이처럼 곤란한 상황에서도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고 힘든 싸움을 계속한다면 2~3년 내에 다음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미국, 영국과 홍콩, 필리핀이 절박한 위협을 느끼게 되고, 극동에서의 이익과 거류민을 지키기 위해 미국, 영국은 군함을 파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태평양에서의 해전이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중략) 이상과 같은 상황에 이른 다음에야, 비로소 태평양에서 세계전쟁이 실현되는 것을 촉진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3~4년 간은 다른 나라의 참전 없이 혼자서 힘든 싸움을 수행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일본의 무사는 할복을 자살의 한 방법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뒤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오늘날 일본은 전 민족이 할복의 길을 걷고 있다. 앞의 전략은 '일본의 할복, 할복을 도와주는 중국'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 p. 352. 암담한 각오
. 또한 우리로서는 불편한 '피해자로서의 일본인 상'(특히 독일과 비교했을 때)의 형성과정에 대해 당위나 변명이 아닌, 분석으로 접근한 부분도 읽어볼만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퍼시픽'의 차이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똑같은 적이었지만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선 독일군 포로들과 대화를 하면서 고향 이야기를 하기도 하며 담배를 나눠주기도 했지만 퍼시픽에선 일본군과 미국군 간에 대화 장면이 거의 없다. 그들은 말한마디 주고받지 못하고 동물이나 다름없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일 뿐이었다. 이렇듯 같은 역사와 언어를 공유할 수 있고 교류가 가능한 독일에 비해 몇몇 장교들을 제외하면 일본과 연합국은 일단 의사소통부터가 불가능했다. 결국 연합군의 유화책은 전혀 먹히지 않았고, 일본 정부는 너무나도 손쉽게 국민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특히 본토의 경우 연합국의 단파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건 극소수에 불과했고, 적군이라고는 지나가면서 폭탄을 떨어뜨리는 비행기밖에 볼 수 없던 일본 국민들은 전쟁이 끝나는 날까지 적과 어떠한 교류도 없이 그저 정부가 선전하는 방송밖에 들을 수 없었다. 여기에 전후 만주와 중국과 한국에서 도망온 몇백만의 피난민과 전쟁 내내 이루어진 전시경제까지, 결국 일본인들은 전쟁 상대와는 어떠한 교류도 없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재생산하며 피해자상을 공고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 이렇게 이 책은 당시의 역사를 꼼꼼하게 분석하며, 그 분석을 합리화나 변명에 이용하지도 않는다. 전쟁책임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으며, 덴노를 포함한 지도자의 책임은 더 명확히 규명되어야 하며, 설령 전쟁이었음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당시의 일본 지도자들은 그 당시 전쟁에 참여한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자국민을 가장 철저하게 착취했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게 적당한 타협이나 눈치보기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얻기 위한 끈질긴 조사와 분석을 통해 이런 주장에 다다른 것이기 때문에, 역사가 연구와 교류의 대상이 아니라 선전과 선동의 도구가 되어가는 현 상황에서 이 책은 더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
우리에게는 천황을 포함해 당시의 내각, 군 지도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 만약 자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이 탐나서 분촌이민을 권유하는 현 공무원, 촌장 혹은 마을 사람의 편에 서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해보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비판적인 시각과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 이 두 가지 자세를 함께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