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 제인 오스틴(민음사) ●●●●●●●○○○
미인이지 총명하지 부유하지 거기다 안락한 가정에 낙천적인 성격까지 갖춘
에마 우드하우스는 인생의 여러 복을 한몸에 타고난 듯했고,
실제로 세상에 나와 스물 한 해 가까이 살도록 걱정거리랄 것이 거의 없었다.
. 제인 오스틴의 '에마'는 언뜻 보기엔 그녀의 다른 소설처럼 아기자기하고 잘 짜여진 전형적인 연애담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에서 상당히 이색적인 소설에 속한다. 오히려 그 당시에(그녀를 포함해서) 유행했던 연애소설 그 자체에 대한 풍자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 영미소설 중 가장 매력적인 도입부의 하나로 꼽히는 '미인이지 총명하지 부유하지- '라는 시작부터 뭔가 심상찮다. 보통 이런 작품의 주인공이란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처럼 미인은 아니지만 이지적인 눈이 빛난다거나, 부유하지는 않지만 당당하다거나 하는 설정이기 마련인데 이 책에서는 그런 거 없이 주인공은 미인이고 부유해서 외적으로는 모든 걸 갖췄다. 대신에 이 소설의 문제나 갈등은 모조리 주인공이 만들어낸다. 청춘남녀를 연결시키는 중매의 재능이 있다면서 속물처럼 남녀의 스펙을 샅샅이 체크하고, 그러면서도 사람 보는 눈은 또 그닥이라 남 연애에 끼어들어 자기 주변 처녀에게 그 남자는 너한테 택도 없다며 헛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덕분에 멀쩡한 혼담은 파토. 그러다 나중에 가서 에마가 마음에 두던 남자에게 그 처녀가 관심을 보이자 '니 스펙에 감히? 니가?' 식으로 반응하는 건 이 소설의 백미. 이쯤되면 '경박하지 속물이지 남의 일에 나서기 좋아하는 에마 우드하우스는- '의 느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
. 그래서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 '그런 주인공이 바뀌어서 새 사람이 된다'는 식의 또 다른 전형적인 해석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정작 주인공이 그닥 바뀌지 않는다는 것. 제인 오스틴의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마지막까지도 에마는 현실의 계급 - '스펙'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속물적인 모습을 보이는데도 행복한 엔딩을 맞는다. 아무 노력도 없고, 별다른 변화도 없던 그녀에게 행복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이제 에마가 누리게 될 유쾌한 가족 모임에서 불쌍한 해리엇은, 그 애를 생각해서라도 거리를 두도록 해야 했다. 해리엇은 모든 면에서 패배자가 될 것이었다. 앞으로 그녀가 빠지게 된 만큼 자기도 덜 즐거우리라고 속상한 마음은 없었다. 그런 모임에서 해리엇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피할 수 없지만 유독 잔인한 조치로, 불쌍한 이 처녀 입장에서는 죄 없이 벌을 받는 셈이었다.
. 그래서 이 소설은 내겐 연애소설이라기보단, 연애소설에 대한 풍자이자 안티테제로 읽힌다. 제인 오스틴 본인도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에마를 좋아하는 것은 아마 나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처음부터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녀는 마땅히 사랑받을만한 선량한 제인 페어펙스나 이야기 내내 온갖 고생을 했기에 마땅히 보상받을만한 해리엇 스미스가 아니라, 아무 명분도 없는 에마 우드하우스에게 모든 행복을 다 몰아준다. 그렇기에 이 책은 모두가 연애소설하면 으레 기대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에 대한 비틀기와 뒤집기로 읽어야 하고, 그렇게 읽을 때 누구보다도 유쾌했고 평생 위트있는 농담을 즐겼다는 제인 오스틴의 천연덕스러운 매력이 더 살아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