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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쌤 Feb 26. 2021

11. 일을 잘하는 법 따위는 없다.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11차시)

나는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다. 
나는 오지랖이 넓다.
나는 일복이 많다.
다른 선생님들이 나에게 일을 잘한다고 한다.
다른 선생님들이 나에게 일에 대해 묻는 일이 잦다.
다른 선생님이 나에게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적이 있다.



어떤 선생님께서 나에게 일을 어떻게 잘하는지 물으실 때가 있다.

그럼 말씀드린다.

“그냥 담당 선생님이 하시는 거 어깨너머로 잠깐잠깐 봤어요.”


하지만 아니다.

나는 다른 선생님이 하시는 걸 보거나 도와드렸던 업무에 대해서는 관련 업무 매뉴얼을 찾아서 보고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되는 지를 샅샅이 뒤져본다. 그리고 숙지한다.


그렇게 찾아본 프로세스에 따라 잘 진행되고 있는 지를 확인한다.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면, 왜인지, 그 프로세스보다 빠른지를 파악한다.

빠르지 않다면 더 나은 프로세스인지를 파악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생님께서 편안한 마음으로 계신다면 조용히 잠자코 있거나.

우울한 표정과 함께 한숨을 쉬고 계신다면 스윽 다가가서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떨까 조용히 여쭤본 뒤

쉬운 과정, 빠른 과정을 조심스레 알려드린다.


나는 내 교직생활 중 업무에 관련된 일을 이렇게 처리해왔다.

그래서 오지랖도 더럽게 넓네.라는 말도 들어봤고

선생님, 그렇게 하시 다간 금방 지치세요.라는 말도 들어봤다.

그래도 가장 기분 좋은 말은 “선생님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이다.




내가 기간제 교사를 할 때 교장선생님께서 행사나 사업으로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서 누누이 강조하셨던 과정이 있다.

계획을 할 때 충분히 숙지되었는가를 판단하고, 나를 설득할 수 있는 계획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내가 담당자로서 숙지가 되어있지 않고, 나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는 계획은

수립단계에서 이미 실패한 계획이다.

진행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사업을 하는 담당자부터 설득이 되고 이해가 되는 계획을 수립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수립한 계획에는 실수와 돌발상황이 줄어들고, 성공적인 업무 결과가 따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교장선생님께서는 항상 어떤 일이든 그 결과와 앞으로 미칠 영향, 이 행사 혹은 사업을 다시 할 경우에 더 생각하거나

고쳐야 할 개선점을 정리해두라고 하셨다.


그걸 기안을 해두면 다음 사람이 더 정확히 할 수 있겠지만, 그게 어렵더라면 문서화라도 해두고, 인계인수를 하는 데 그 자료를 활용하라고 하셨다.


나는 매번 이 과정을 따를 수는 없었지만,

일을 할 때에 있어 이 과정을 따라 업무를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을 잘하는 법 따위는 없다.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실수를 줄이고, 돌발상황을 미리 예측해서 그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결과는 일을 실행하고 나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효과일 뿐이다.


그런데,

일을 해야 하는데

일은 안 하고 글만 쓰고 있는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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