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다(12차시)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 아이유, 이름에게 중에서 -
나는 우리 반 아이들 뿐만 아니라 같은 학년의 다른 반 아이들의 이름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게 기억해둔 아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면 “어? 선생님, 제 이름 어떻게 아세요?”라고 반문한다.
아이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진을 찍어서 기억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해준 피드백을
적어두고 그걸 토대로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아이들이 써서 준 상담자료를 가지고 아이들을 떠올리고,
기억해낸다.
그 아이들은 나 하나를 보지만, 나는 그 아이들 모두를 보고, 기억하고, 머리에 새겨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방법을 나름대로 만들어내야 한다.
나는 주로 아이들에게 특징을 찾아서 기억하려고 한다.
어떤 친구는 미술을 잘하고 말을 시작할 때 항상, "근데요"로 시작하는 친구가 있고
어떤 친구는 나에게 항상 먹을 것이 없냐고 묻는 친구가 있고
어떤 친구는 항상 파이팅이 넘치는 친구가 있고
어떤 친구는 의욕이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바람결에 들었던 이야기들을 최대한 기억해둔다.
그래야 그 아이와 마주쳤을 때 한 마디라도, 힘이 될 말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창한 말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저
"요즘 그리는 건 잘 돼가?"
"팔은 어떻게 하다 다친 거야?"
"저번에 다친 팔, 캐스트 풀었네? 괜찮아?"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해줄 뿐이다.
그저 너를 기억하고 있어.
너를 생각하고 있어.
너에게 힘이 되었으면 좋겠어.
라는 내 생각이 전해지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건 내 교직관과도 연관이 있다.
소외되는 아이가 없게 하자.
스스로를 소외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가 좋아하는 분야는 없는지 찾아보자.
적어도 그 아이의 1년에 한 번이라도 성취감을 느끼는 경험을 갖게 하자.
이런 교직관을 갖게 된 건, 나에게 그렇게 해주신 무수히 많은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인싸"의 부류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아이였다.
컴퓨터와 게임, 책에 빠져 살았고
다른 아이들과 취미를 공유하지 않았다.
몇몇 취미가 맞는 소수의 아이들과만 취미를 공유했다.
집안의 형편은 어려웠다.
그런데 나의 선생님들께서는 그걸 어떻게 아셨는지,
나에게 도서위원이 아님에도 그냥 도서위원같이 책과 관련된 일을 시켜주셨고,
내가 영어를 좋아할 때 그 걸 아시고 나에게 진로 상담을 해주셨고,
대회를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시거나,
나의 어려운 형편을 아시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
그래서, 내가 교사가 되고 처음 목표를 두게 된 건
아이들을 소외되게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물론, 스스로를 소외시키려는 친구는 정말 어렵다.
환경이 어려워, 그 환경만을 탓하고, 의욕을 스스로 꺾는 친구도 정말 어렵다.
그래도, 들어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도 생각해봤다.
물론 그 아이들에게는 내가 아직도 그저 무서운 선생님일 게다.
내가 어떤 아이에게 들었던 최고의 칭찬은
"선생님은 그래도 들어주는 선생님이었다."
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들어주는 선생님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를, 그렇게 기억해 줘서 참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영 글러먹은 교사이지만, 그래도 이럴 때만큼은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