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가 말을 걸어올 때

by 이해하나

늘 분주하게만 느껴지던 도서관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묘하게 다르다.
공기가 묵직한 정적 속에 잠긴다.
나는 그 안으로 스며들어 귀를 기울인다.


사각사각, 볼펜이 종이를 긋는 소리
멀리서 스쳐 가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
지금 이 순간, 사소한 소리들이 또렷하게 들린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고요를 잊고 살았던가.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소리들이 결을 이루며 내게 다가온다.

조심스레 내딛는 발끝, 책장을 넘기는 바스락 거림,
미세하게 들려오는 의자의 마찰음
흘려보냈던 소리들이 지금은 나를 둘러싼 하나의 세계가 된다.


마치 고요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 순간.
잠들었던 감각이 깨어난다.


고요함이란 텅 빈 침묵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무수한 소리들이 숨 쉬고 있었고,
나는 그 모든 소리를 감지할 만큼 조용히 내려앉아 있었다.


익숙한 공간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
이 고요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바라본다.


흘러가던 시간 속에서는 결코 깨닫지 못했던 나만의 작은 세계가
고요 속에 있었다.


고요는 나에게 속삭인다.
멈추어 서서 네 안을 들여다보라.
바쁜 삶 속에서도 고요 속의 나를 돌아보라고.


그제야 깨닫는다.
고요 속에서 나 자신이 낯설게 다가오지만,
그 낯섦 속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고요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했고,
그리하여 나는 다시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다시 걸음을 내딛는다.
고요는 늘 곁에 있었다.
다만 내가 눈을 감고 지나쳐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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