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들들은 아버지에게 경외심을 갖는다. 존경하지만 두려워하는 마음.
그러면서 모든 아들들은 애증을 갖는다. 사랑하지만 증오하는 마음.
어릴 적 항상 무뚝뚝하셨던 아버지와 할머니 산소에 벌초하러 아버지 고향에 내려온 적이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 와서 불평했던 나는 우연히 아버지 고향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냥 일상적인 통화였지만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 아버지 말씀.
“오랜만에 엄마 보고 싶어서 왔다”
당신께선 그냥 웃으며 농담처럼 친구에게 하는 말씀이었지만 어린 나이에 들었던 그 말씀을 듣고 아버지도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도 너무나 당연히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나는 나대로 이 세상에 태어난 줄 알았다.
그렇게 무뚝뚝한 아버지 모습 그대로 살아오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비를 맞으며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고 싶어 무덤에서 절을 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왠지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친구와 통화를 했을지 이제야 내가 어린 딸을 키우는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도 아버지로 사시는 것이 늘 처음이었고 늘 후회이었고 늘 미안함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자식에게 사랑을 어떻게 주고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하물며 자식들 먹이고 입히는 것도 빠듯했던 시절 우리 삼 남매를 키우는 게 얼마나 막막했을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금씩 아버지의 인생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부모님께 언제가 제일 힘들었냐고 여쭤본 적이 있는데 우리 삼 남매를 키울 때가 제일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언제가 제일 행복했냐고 여쭤보니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우리 삼 남매를 키울 때. 어릴 적 내가 아장아장 걸을 나이쯤. 나는 큰 화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흉터를 가지고 있는데 철없던 사춘기 시절. 친구들이 놀려댄다며 흉터를 지워달라고 투정을 부렸다. 그때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시며 처음으로 사랑의 매를 드셨다. 철없던 시절에는 서운한 맘이 커 아버지를 이해할 여유가 없었지만 내가 딸을 키워보니 그때의 아버지를 상상해보면 그 밤에 얼마나 놀란 마음으로 뻘겋게 달아오른 나를 안고 병원을 달려갔을지 짐작이 된다. 부모님의 대처로 전신화상이 아니라 작은 흉터만을 가지고 사는데도 투정을 부렸으니 당신의 미안함을 숨기려 더 화를 내고 계신 것을 너무나 늦게 알았다.
태산 같던 아버지를 아버지로 살면서 이제야 젊었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데 어느덧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어 당신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못난 아들에게 알려 주었지만 부끄러움에 말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안 계신 지금에야 말해봅니다.
보고 싶은 아버지
당신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고 당신이 있었기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언제나 감사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다만 아버지 당신께서 조금만 더 우리를 사랑을 표현했다면, 아버지 당신께서 조금만 더 우리를 믿어줬다면 우리는 더 행복할 수 있었을 거라고 철없던 시절 원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는 아버지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니 아직까지 아버지에게 한 번도 말하지 못한 그 한마디.
이미 늦었지만 꼭 해야 하는 말 한마디 이제 해봅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항상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 그리고 아들을 위해 이 글을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