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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당마녀 Oct 08. 2022

슬픔 총량의 법칙

매주 아버지를 보러 가면서 휑했던 아버지 정원은 점차 화려한 꽃들과 젊은 시절 아버지 사진 그리고 부모님 결혼 30주년 리마인드 웨딩 사진과 가족사진들로 채워졌다. 또 추모 상자에는 각자 아버지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들, 살아생전에 자주 들으셨던 라디오, 선글라스를 넣어두었고 그렇게 드시고 싶어 하셨던 회, 소주 한 상 미니어처도 같이 넣어 드렸다. 어머니는 냄새도 못 맡는 그런 것을 왜 넣냐며 핀잔을 주셨지만 그냥 내 마음이 그런 것이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7주가 지나고 사십구재 날이 다가왔다. 아버지를 보내고 첫제사. 늘 아버지가 음식을 놓으며 시작하셨고 나는 그냥 내 차례에 맞춰 절만 했던 그 제사가 아니라 내가 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그 첫제사. 당황스럽고 어설픈 나의 첫제사가 다가왔다

아버지가 드시고 싶어 했던 회와 여러 음식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제사상을 준비했고 제사를 주관하는 방법 등 시험 전날 벼락치기하는 것처럼 제사 당일에 아침까지 계속 긴장되어서 계속 찾아보고 공부했지만 막상 제사는 실수투성이 끝났다. 옆에 있던 매부들이 처음이라 다 봐주실 거라고 괜찮다고 했지만 첫제사라 더욱 맘이 쓰였다.


아버지를 보내고 50일쯤 되니 슬픔도 총량이 있는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의 눈물도 금방 적응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어머니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직 요양병원에 계시는 외할머니를 정말 오랜만에 뵈러 갔다. 

“ 그렇게 매일 울고만 있을 거면 당분간 요양병원에는 오지 말그라. ”

이모들이 어머니에게 했던 말 때문에 한동안 찾아뵙지 못하다 그래도 언제까지 안 볼 수 없는 노릇이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무작정 찾아간 것이었다. 아버지가 아프다는 것만 알고 계시고 당신보다 먼저 사위를 보내고 얼마 남지 않으신 생마저 슬퍼하실까 차마 우리 아버지의 부고를 알리지 못했다고 이모들이 전했다. 

막상 아버지의 소식을 물어보시면 또 어머니가 감정을 주체 못 하시고 울음바다가 될지 나라도 어색하게 아직 괜찮으시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지 할머니를 만나기 전 괜히 걱정되었다.

이미 한동안 오지 않았던 어머니 때문인지 아니면 애써 담담한 딸의 얼굴을 보고 지레짐작이 되셨는지 할머니는 오히려 아버지의 안부를 전혀 묻지 않으셨다.

예전 외할머니 팔순 잔치에서 짓궂은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당신의 어머니는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많이 야위신 당신의 장모님을 등에 업고 춤을 추시는데 만감이 교차하셨는지 애써 웃지만 슬픔 또한 참을 수 없는 것 같은 아버지 얼굴 그리고 외할머니를 내려주고 몰래 눈물을 닦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내가 더 눈치 없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아버지를 보내고 100일쯤 되니 여전히 슬픔의 늪에 가라앉고 있는 어머니의 감정이 나까지 전염이 될까 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남아있는 어머니에게 잘해드리지 못했다. 아버지 생전에 아버지한테 하던 그 핑계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슬픔의 깊이는 개인마다 어떤 사람은 금방 털고 일어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더 오래 슬퍼할 수 있기에 섣불리 이제는 그만 슬퍼해도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애써 모르는 척 피하기도 했다.

어느 날 7살 딸을 재우면서 아주 순수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 할아버지는 좋겠다. 하늘나라에서 구름 맛볼 수 있으니까 ”

그 말 듣자마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해서 겨우 딸을 재우고 잠든 딸 옆에서 소리 죽여 오랜만에 또 한참 동안 눈물만 흘렀다. 아버지가 이제는 정말 좋았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 후회들로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때 알았다. 나도 아직 슬픔의 바닥에 닿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나 건드리지 않으면 괜찮은 상처 하나쯤은 숨기고 살아간다는 말이 얼마나 슬프고 삶의 의미를 함축한 말인지 이제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아주 미세한 숨결조차 그 상처에 닿으면 아프다는 것을 자기도 모르고 살뿐. 작은 모래알도 바다에 가라앉는 것처럼 아주 당연한 것을.

이 글을 처음 적을 때 만해도 우리에게는 아무리 모른척해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슬픔이 정해져 있고 그 슬픔도 익숙해질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시작하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슬픔 총량의 법칙이란 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을 다 비우기 위해서는 분명히 내가 흘린 눈물만큼 시간은 필요하다.

문제는 슬픔의 바닥은 아무도 모른다. 슬픔에 익숙해질 뿐, 자신이 모르는 슬픔의 버튼이 있을 뿐,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순간은 오지 않는다. 그저 참고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을.


아버지를 보내고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가끔 아버지가 보고 싶다. 지금도 아버지가 쓰러져 119를 불렀던 그 골목. 그리고 아버지가 힘겹게 버티시던 동네 요양병원 지날 때마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한다며 끝내 어머니의 반대로 드시지 못했던 그렇게 드시고 싶어 했던 회. 그리고 소주까지. 아버지 삶은 아버지의 뜻대로 마무리하지 못하게 했던 후회들. 이런 것들은 내 마음속에 각인이 되어 또 다른 형태의 슬픔의 버튼이 되어 또 언제 나를 눈물을 쏟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슬픔의 바닥을 자만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누군가를 보내는 것도 이렇게 슬퍼하는 것도 처음이라 또 그런 슬픔을 어떻게 참아야 하며 또 같은 슬픔을 보내야 하는 남겨진 이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우리 가족들은 또 생각보다 잘 지내지 못했다. 아버지가 계실 때 보다 더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더 많이 울기도 했다. 각자의 슬픔 총량의 법칙에 따라 서로 슬퍼하는 방식이 다 달랐고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탓이다. 각자가 자신의 몫만큼 슬퍼하다가 어느 순간 다 같이 슬픔이 바닥에 왔을 때 다시 손잡고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마른 가지도 일렁이는 것처럼. 

마치 아버지도 잘 지내고 있다고 그러니 우리들도 그만 서로를 안아주라고 말해주려고 하는 그 바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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