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 박물관은 우리 전통 양식들이 잘 전시되어 있으며, 안에 어린이들을 위한 박물관이 따로 있었다. 상설 전시실은 3층이었는데 1층은 고고관, 역사관이었고 2층은 서화관 기증관 3층은 세계 문화관, 조각, 공예관 있었다. 예전에 경기도 박물관에 갔을 때 심하게 뛰어다녔던 책냠냠이들 때문에 그곳 관리인들에게 경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국립중앙 박물관은 가고 싶은 책냠냠이들만 가기로 했다. 나머지들은 토요일에 별도로 특강 수업을 하기로 했다.
출발 전에 주먹도끼, 빗살무늬 토기, 금속활자, 대동여지도 목판 등의 사진을 펼쳐 놓고 얘기를 했다.
“너희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이 너네들을 기억할 만한 물건이 있다면 뭐를 남겨서 보여주고 있을까? 그것을 보관해서 뭔가의 설명을 아래에다 적는다면 뭐라고 적어 놓고 싶을까?”
라고 질문을 하자, 어떤 냠냠이는 자신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전시하고 싶다고 했고, 어떤 냠냠이는 쓰던 게임기와 핸드폰을, 보던 책들을 전시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책냠냠이들에게 뭔가 전시품들을 열심히 볼 수 있는 자극적인 말을 해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지금 남겨 놓고 싶은 그 마음이 박물관에 놓여 있다. 박물관의 유물들은 시대를 넘어서서 아득한 윤회의 길로 안내를 한다. 너희는 기억을 못 하겠지만 너희가 태어나기 이전에 어쩌면 윤회 속의 내가 또는 나의 그 누군가가 예전에 사용했던 물건이 박물관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디지털 영상으로 너희 삶을 담을 수 있지만, 그것이 없던 시대는 유물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으로 담아야 한다. 그 상상이 영상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을 독서노트에 그려보고, 그 속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이 미션이다. 다음 독서교실에서 다녀온 후의 활동으로 연결시켜보고 자신들의 독서노트 발표를 해보자꾸나. 알았죠?
유물들은 우리의 엄마 엄마의 엄마의 그리고 아빠 아빠의 아빠들이, 한 단어로 조상들이 무엇에 이용한 물건이었을까?를 엿보게 한다. 그 유물 속에는 사용한 사람들의 마음들이 담아져 있다. 그래서 시대의 삶과 영혼이 펼쳐져 소중하게 발굴되고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전시품들과 대화하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마음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박물관을 다녀오기로 했다. 유물들과 친근감을 주기 위해 엄마의 엄마의 엄마들께서 라는 말을 너무 반복한 것이 조금 억지스럽고 웃기지만 하여튼 사뭇 태도가 진지해진 것이 사전교육이 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은 선사시대 살았던 사람들이 쓰던 도구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가 있는데, 그 도구의 변화에 주목해서 생활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얘기해보았다. 아이들이 빗살무늬 토기가 신석기시대에 있다가 나중에 점점 무늬를 그려 넣지 않는 것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토기에 빗살무늬가 있는지 나중에는 왜 그 무늬가 없어졌는지를 물었다. 나는 책에서 본 적이 있는 내용을 얘기해 주었다. 초기 토기는 굽지 않아서 튼튼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금이 갈 수 있었고, 그래서 금이 가는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빗살무늬를 넣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밖에 질문들은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면 책냠냠이들이 따라다니면서 했다. 조금 따라가다가 어느새 무리를 놓치는 냠냠이들도 있었다. 어느 한 곳에 오랜 시간 앉아서 뭔가에 집중하고 있는 냠냠이에게는 조금 더 감상할 시간을 주었다가 다음 코스에 무리와 떨어지지 않도록 지도했다.
아무것도 잘 모르는 냠냠이들 눈에도 청자는 뭔가 달라 보이는지, 마음에 드는 장신구보다 청자를 집에 가지고 가고 싶다고 말을 해서 우리를 웃게 했다. 푸르게 아로새겨진 도자기들은 황홀한 자태로 우리의 온 마음을 옥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책냠냠이들은 시청각 자료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김홍도와 신윤복 등의 조선시대 화가들 작품에 대한 설명이라든지,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던 김정호와 지도에 관한 영상은 책냠냠이들을 꼭 붙들어 맸다. 지도가 바닥에 그려져 있었는데 그곳을 들여다보면서 뒹굴고 놀고 싶은 몸짓을 하며 한참을 머물렀다.
나는 백제의 금동향로에 가장 큰 관심이 갔다. 그리고 반구대 앞에서 숨은 그림을 찾으며 많은 것을 상상했다. 원시인들의 꿈과 생활을 엿보게 하는 그 반구대는 훌쩍 시간을 뛰어넘어 화살을 들고, 사냥을 하러 다니는 우리의 조상을 금방 상상하게 했다. 박물관은 과거로의 여행에 타임머신을 탄 것과 같았다.
다녀와서 다음 수업에는 '유물 속 숨은 이야기 발표하기' 시간을 가졌다. 머리에 쓰던 화려한 금관이나 고구려 장수들이 썼다는 금동신발 같은 것을 독서노트에 그리면서,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유물이라고 표시를 한 책냠냠이도 있었다. 책냠쌤의 미션이었던 '유물 속 숨은 이야기 만들기'로 <화려한 금관이 움직일 때마다 번쩍번쩍하게 빛나게 해서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주목하게 만들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백제의 다르게 생긴 벽돌 무늬를 따라 그린 냠냠이, 발해시대 나쁜 귀신과 재앙을 막아주는 용도로 사용했던 용머리상을 그린 책냠냠이도 있었다. 부리부리한 눈, 커다란 콧구멍, 날카로운 송곳니를 제법 실감 나게 그려 놓아서 놀랬다. 농경문 청도기에 깃털 같은 것을 꽂고 벌버 벗은 채 따비로 밭을 일구는 모습과 새를 그려놓고 유물 속 숨은 이야기로 <마을의 안녕과 평화 풍년을 가져다주는 솟대의 새>라고 써 놓았다. 마음에 드는 도자기를 관찰하고 그린 냠냠이, 역동적이고 실용적인 고구려 문화의 무덤을 지키는 사신도의 청룡, 현무, 백호, 주작의 고분 벽화랍시고 대충 따라 그린 냠냠이도 있었다. 제일 인기가 많은 것은 역시 반가사유상이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광장에서는, 오른쪽 손을 뺨에 대고 오른쪽 다리를 걸치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자세를 모두가 흉내를 냈다. 그러면서 '생각하며 미소를 짓는 표정'을 서로에게 강요하며 웃음소리를 두 입술 사이로 꾹꾹 눌러 담았다. 나는 그 표정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주느라고 바빴다. 독후활동에서도 반가사유상에 대해 발표하는 책냠냠이들이 제일 많았다.
책냠냠이들은 자신이 구석기, 신석기 때의 사람이 돼보는 가상 일기를 써보았다. 그곳에서 당시에 썼을 도구들이나 의류, 그리고 생활이 잘 들어가도록 쓰라고 했다. 그리고 전통 문양을 따라 그려보기, 과거의 민속 물건이 현대의 무슨 물건으로 바뀌었는지 얘기해 보기, 타임라인을 그어서 우리 역사의 흐름에 따른 생겨나고 사라진 나라들이나 물건들을 표시해보기, 유물 사진을 나라 별로 분류해보기 등의 활동을 해보았다.
박물관을 가는 버스나 돌아오는 버스에서 약간의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수첩을 먼저 나눠 주기도 했는데, 그 수첩에는 이런 질문과 그림들이 있었다. 청동기의 청동방울과 청동거울이 어디에 쓰였으며, 무엇을 상징하는지? 향로와 같은 것을 받치고 있는 동물이 무엇인지? 산수무늬 벽돌 그림에는 무엇이 있는지? 백자기에 그리고 싶은 그림은 무엇인지?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시대마다 사용하는 도구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묻는 질문들과 활동들을 할 수 있도록 유도되어 있었다.
그곳에 가면 우리 조상의 숨결을 느끼게 되고 ‘나’라는 뿌리가 조상들의 희생과 땀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했다. 또한 우리가 후대 자식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이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그러니 함부로 삶을 살면 안 될 것 같다. 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에 대한 배반이 될 것 같다. 저렇게 훌륭한 업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한 그 많은 선조들에 대한 자긍심도 생겼다. 그리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가르쳐준 대로 우리는 자랑스러운 보물들을 공유한 대한민국의 한 사람이고, 대한민국의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새롭게 기획되는 기획전시회도 자주 가고 싶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리 자주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방학이 되어 어디를 가볼까? 하고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곳은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을 다녀와 먹물로 글을 써보거나, 그림을 그려보며 박물관을 얘기해보는 것도 좋겠다. 한국을 빚는 마음으로 도자기를 경험해 보고, 이름을 새기는 도장만들기 체험 등을 하면서 자신을 새겨 보는 것도 좋겠다. 또한 한국을 두드리고 밟는 과정으로 박물관을 방문해보며 많은 유물들과 마음의 대화와 설렘을 느껴보면 어떨까?
'유물의 수수께끼 비밀수첩'을 만들어 유물들을 탐구하고, 궁금증 질문들을 마구 써놓고 그리고 인터넷과 관련 책들을 뒤적거리며 찾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