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엔, 나도 나무들처럼 영양분을 합성해내는 체내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먹는 것이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듯이 보였던 나무가 빛만 있으면 광합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숲은 아이들에게 서정적인 감성과, 호기심의 궁합을 절묘하게 충족시켜 주는 곳이었다. 또한 깨알 같은 지적 즐거움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관련된 책을 읽고 간 책냠냠이들은 서로가 아는 나무에 대한 상식을 훤히 내비치며 즐거워했다. 나무들과 함께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초록에 물든 순한 행복감에 젖게 했다. 다양한 나무와 그 나무를 담은 숲 속에서 자연과 아이들이 하나가 될 수 있게 해 준 수목원 체험이었다.
‘그냥 이것은 나무고, 길이고, 호수이고’로 끝나지 않으려면 관련 책을 함께 읽고 가는 것이 좋겠다. 글과 그림의 어울림이 좋은 책은, 아이들을 자연 속으로 끌고 가는 상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사진 : 국립수목원 제공 : 어린이정원>
지구 상에는 약 50만 종에 달하는 식물이 존재하며 이들은 의약품, 식량, 색소, 향료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 약용으로 이용되는 물질은 현재까지 36,000여 종으로 밝혀져 있다고 하니, 나무가 약을 만드는 살아 있는 공장인 셈이다.
국립수목원은 이곳저곳 둘러봐도 나무가 천지인 곳이었다. 가이드가 옆에 서서 나무에게 말을 걸며 관심을 보이니 아이들의 관심도 그곳으로 금방 쏠렸다. 우리는 이번 체험을 통해 자연 속에 있는 풀 한 포기마저도 생명을 위해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곳에서 봉사하시는 안내원을 따라서 수목원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뙤약볕을 쬐고 있는 노오란 마타하리 꽃이 입구에서 우리를 반겼다. 여기저기에 가장 낮게 푸른 숨을 쉬고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들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이 숲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명의 순환을 경험할 것이고, 그 순환이 마치 혈액을 투여하는 듯이 이 숲을 다르게 숨 쉬게 했을 것이었다. 계절마다 피는 꽃이 다르고, 나무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안내원의 말에, 자연의 품이 넉넉하고 여유롭게 다가왔다. 늘어진 느티나무 아래에서 눕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조용히 잠을 자고 일어나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상상을 하며 아이들과 안내원을 따라갔다.
<사진 제공 : 포천 관광테마조성과 : 수생식물원>
다리 오른편에 연못 습지가 있었다. 주변을 자세히 보니, 물 밖에는 버드나무가 자라고, 갈대와 부들이 그 안쪽에 자라고 있었다. 물은 여러 말즘 같은 것들로 빽빽했다. 습지 식물은 저 한 몸을 받쳐 물을 정화시키려 애쓰는 듯 보였다. 저렇듯 작은 녹색의 것들도 생태계의 연결 고리의 소중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아이들은 쌤 얘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저 가고 싶은 데로 열심히 안내원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다, 발걸음 가는 대로 숲을 만끽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나무가 시원스럽게 뻗쳐있는 숲을 걸으면서 저 멀리 안내원이 하는 말을 뒤로하고, 그저 넋 놓고 나무만 바라보다가 일행에게서 멀리 떨어지고 말았다. 우연히 매미 허물도 발견하고, 독버섯도 보고, 머루나무, 으름덤불, 물푸레나무도 자세히 보게 되었다. 향기로운 흙길을 산책하노라니, 맑은 공기가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붉고 희고 노란 물봉선, 흰 쑥부쟁이, 말라가는 서어나무들이 숲길에 내방객들을 엿보고 있었다.
안내원은 “숲에서 방출되는 음이온을 마음껏 들이마시세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이에요”라고 했다. 계속되는 숲 탐방 안내원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광릉숲이란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의 국립수목원(옛 이름 광릉수목원)을 포함한 광릉 주변의 천연림을 말한다. 국내에서 가장 잘 보전된 온대림으로 꼽힌다. 굴참나무·졸참나무·갈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서어나무·오리나무 등 활엽수들을 중심으로 소나무·전나무들까지 ‘극상림’(다양한 식생이 안정된 상태를 이룬 산림)을 이루고 있다.
1468년은 조선의 7대 왕 세조가 세상을 뜬 해라고 한다. 세조가 이곳에 묻힌 뒤 왕실에선 능 주변 숲의 벌목을 금하는 등 엄격하게 관리해 왔다. 세조와 왕비 정희왕후의 능이 바로 광릉이라고 했다. 오백 년 동안 산불 한번 겪지 않은 자연림이란다. 일제도 이 숲의 가치를 인정해 임업시험림으로 지정했고, 6.25 때도 폭격을 모면해 숲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재선충 침입도 아직 없었다며, 대단한 자부심을 내비치셨다. 향료 식물원, 식용식물원, 약용, 외국식물원, 침염 수원, 활엽수원, 광장을 중심으로 관상수를 모아 놓은 관상 수원, 관목원, 난대식물원, 만목원, 한반도 모습을 본뜬 수생식물원, 습지원, 시각장애인을 위해 냄새가 촉감 등을 이용할 수 있게 한 손으로 보는 식물원 등과 산림박물관,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산림동물원이 들어서 있다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딱 벌어졌다.
<사진 :육림호>
안내원을 따라 숲 생태 관찰로와 숲으로 둘러싸인 육림호 주변 산책로의 나뭇잎도 관찰하고, 곤충이나 새들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가로선 무늬를 하고 있는 벚나무에는 개미가 보디가드를 한다는 얘기를 책냠냠이들은 참 인상적으로 기억했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쌍살벌 집도 관찰했다. 벼락 맞은 나무도 눈에 띄었다.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이 너무나 당당하고 옹골차서 주위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곳을 스치는 바람마저도 깊이가 있는 듯, 숲 구석구석의 향취를 우리에게 나눠 주었다. 숲과 물과 하늘이 펼쳐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잠겨 한참 동안 흠뻑 취해 있었다. 그 짙은 육림호 물빛 속에 울창한 숲의 그림자와 나무의 모습이 물속 풍경화를 그렸다. 팔랑대는 나뭇잎들이 물속에 어룽지는 유희에 한참 동안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 물속에서 파문을 일으키며 유영하는 물고기가 어찌나 부럽던지, 나 역시 그 풍경 속의 자연인이 되어 시간이 멈춰진 듯했다. 그곳에 긴 시간을 머물지 못해 아쉬웠다.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뒤로하고 우리는 버스에 올라타야 했다.
버스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는 동안, 큰 나무 틈에서 땅에 붙어 있는 조그마한 동자꽃이 떠올랐다. 그렇게 납작 땅에 붙어서 어찌나 앙증맞게 꽃을 피워냈던지, 죽은 동자승의 넋이 깃들인 이름다운 꽃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저 유명한 금강산이 계절마다 이름을 갖고 있듯이, 이곳 국립수목원도 계절마다 나름의 정취로 우리를 손짓할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한동안 이곳을 잊고 지내기도 하겠지만, 언제라도 다시 돌아와 이 숲 속에 어우러져 자연의 한 부분이 되어보고 싶다. 그냥 스치우기 쉬운 돌덩이, 풀 한 포기도 제 나름의 미학을 지니듯이 나도 그냥 우두커니 어딘가에 앉아 있다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에 질기디 질긴 생명으로 버티어 이뤄낸 이 숲의 생명력을 흡수하고 싶었다. 생명들이 나눠준 더불어 사는 자연인으로, 우리 역시 더불어 숲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겠다.
자연에 대한 특유의 정서와 교감이 주는 생명력으로 하루가 충만해진 느낌이었다.
<사진 제공 : 국립수목원>
국립수목원 홈페이지에는 수목원교육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당일신청과 사전신청이 있는데, 사전신청은 대상별로 유아,초등,중,고등,자유학년제,식물교실,성인세밀화교실 등의 많은 프로그램이 있다.
위 글은 오래전에 써 두었던 글을 수정해서 올린 글이다. 수목원체험은 책냠냠이들과 엄마들이 동반한 체험이어서 상당히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엄마들 없이 다녀올 때면 아이들에게 눈을 뗄 수 없어 몹시 바쁘고,여유가 없을 때가 많은데 엄마들이 모두 동반해서 가니 정말로 여유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