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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Nov 25. 2020

'하쿠나 마타타'여행

쥬쥬 동물원을 다녀와서

 먼지가 폴폴 이는  주차장에 내려 돌조각들과 마주쳤다. 듬성듬성 소나무가 길을 안내하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니 지도와 초식동물 먹이 쿠폰을 받았다. 향수병에 빠진 동물원 그림동화가 떠올랐다. 쥬쥬동물원 동물들이 그런 모습이 아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동물들의 상태가 아주 심각합니다.

보아뱀은 우리 안이 불편하대요.

코끼리는 정글 냄새가, 사자와 기린은 사바나 들판의 마른 풀냄새가 그립 대요.

흰 눈이 보고 싶은 펭귄과 북극곰,

실컷 헤엄치고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넓은 강이 필요하다는 하마와 악어,

맑은 공기와 깊고 푸른 밤이 그립다는 영양과 늑대…

오늘따라 향수병에 푹 빠진 동물들의 축 처진 모습.

<내일의 동물원> 그림책에 수의사가 당황하며 본 모습들 이었다. 쥬쥬동물들이 그런 모습이 아니길 바랬다.


 제일 먼저 물고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색깔이 너무 예쁜 물고기들아! 시원한 폭포수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우리 책냠냠이들 소리에 놀라, 콩지 빼듯 날렵하게도 헤엄치는구나. 몰려다니며 꼬리지느러미 하늘거릴 때, 던진 먹이에 이는 물결 파문이 햇빛에 아롱거리는 것이 환상적이구나. 물가에 나무 그림자들 물결 그림을 그리고 물고기들의 비늘무늬로 춤을 추니, 마치 우리가 물속을 헤엄치듯 황홀하구나. 모두들 눈을 꿈벅거리며 물고기들을 따라다녔다.

 

 조금 걸어 나가니 높은 하늘에 치솟는 분수가 있는 호수가 있었다. 그 중앙에는 악어쇼 공연장이 있었다. 밖으로 마이크를 내서인지 조용한 호수에는 마이크의 그악스러운 악소리들이 몸살을 하고 있었다. 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은, 사나운 입을 물 위로 치켜올리는 물고기들을 향하여 먹이를 던져주기 바빴다. 관광객을 위한 먹이 판매 덕인지 소름 끼치게 커진 물고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먹이 싸움에 몸살을 하고 있었다. 돼지 입을 한 잉어들 먹이 욕심이 드글거렸다. 먹으면 먹을수록 욕심을 내는 것이, 눈요기를 위해 먹이를 던진 사람에 의해 길들여진 근성이었다. 문득 길들여진다는 것이 얼마나 섬뜩한 것인지, 눈앞에 펼쳐 보였다. 그 호수는 더 이상 조용한 물고기들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우리 아빠 뽀뽀하는 입술 같아. 으악 입이 너무 징그러워~”

하하하. 아이들은 잉어들의 돼지같이 두꺼운 입에 질려 있다가, 한 냠냠이의 말에 숨 넘어갈 듯 웃었다.

 오리들도 먹이를 든 아이들의 손을 깨물어도 상관없다는 탐욕스러운 야성의 눈길로 입을 벌렸다. 가지고 있는 먹이를 어서 내놓으라고 협박하듯 꽥꽥 소리도 질러댔다. 그 뾰족한 입을 조심해야 했다. 순식간에 내 손에 있는 먹이를 낚아채면서 손을 깨물었다. 내 손 끝이 조금 아프다 싶으면서도 슬펐다.

 하지만 아기 돼지들에게 당근을 주면서 책냠냠이들은 다정하게 한 마디씩 했다. 어떤 책냠냠이들은 거북이에, 어떤 냠냠이는 햄스터에게 먹이를 주었다.

“야! 너는 당근만 먹고 편식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살이 쪘냐?”

아니겠지. 다른 것도 먹었으니까 살쪘겠지”

“햄스터는 물 목욕하면 위험한 거 알고 있니? 물이 귀에 들어가면 죽거든. 그래서 모래 목욕시켜야 해. 모래에다 부비부비…”

“맞아 맞아~ 사슴벌레는 흙 톱밥에서 살아야 하고, 햄스터는 소나무 톱밥 같은 데서 살아. 둘이 완전히 다른 톱밥이야. 우리 집 햄스터는 못 먹는 게 없어. 얼마나 잘 먹는 다구. 물론 해바라기씨를 제일 잘 먹지” 냠냠이들은 저마다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거북이들에게 먹이 주는 코너에서 냠냠이들은 한참 동안 쪼그리고 앉았다. 당근도 잘 먹고, 놓인 풀들도 아주 잘 먹었다. 거북이 등딱지를 만져보더니 아주 신기한 듯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냠냠이들... 덩치가 큰 거북이가 조금 움직이니 놀래서 “으악” 몸을 잽싸게 내돌리며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랐네~” 어떤 냠냠이는 이 큰 거북이 등을 타고 물속을 여행하고 싶다고 하면서, 그러려면 아주 큰 용기를 내야겠다고 했다. 난 숨 쉬는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냥 그런 과학적인 상식 말고 막연히 거북이를 타고 바다를 다니는 상상 속에 푹 빠지는 듯싶었다.

 

 악어 조련사가 주둥이를 테이프로 붙인 악어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만져보라고 했다. 우리는 김밥을 먹던 테이블 위에다 악어를 살며시 올려놓고 등을 쓰다듬어 보았다. 금방이라도 악어는 헐크가 되어 테이프를 찢고 입을 벌려 우리에게 야성의 이빨을 드러낼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 긴장감과 스릴을 즐기면서 우리는 모두 악어 등을 가만히, 나중에는 악어 발톱을 가감하게 만져 보았다. 울퉁불퉁하면서 매끈한 것이 바위 하고는 달랐다. 뱀을 목걸이처럼 건 조련사가 뱀을 목에 걸어볼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했다. 덮썩 용기를 내서 목에다 뱀을 걸고는,

“빨리 사진 찍어 주세요. 제 여자 친구한테 나중에 보낼 거예요”했다.

조련사랑 아이들은 모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모두들 동물들에게 먹이 주는 데 집중했다. 동물들은 익숙해진 포즈로 우리 밖으로 얼굴을 쑥 내밀어 먹이를 어서 달라고 보챘다.

“아! 아! 입 벌려봐. 보세요! 내가 준 당근을 너무 잘 먹어요.  진짜로 당근을 좋아하네!” 당나귀보다 더 크게 입을 벌린 작은 냠냠이의 입모양이 정말 웃겼다. 동물들에게 이입이 되어서 어찌나 자기 입을 크게 벌리는지, 표정이 작품이었다. 사진을 찍어 주면서 연신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아이들은 해님의 뜨거운 입김을 뱉어내듯 뜨거운 웃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어서 풀을 먹어봐 우리 집에 공작 한 마리만 데리고 가서 키우면 안돼요? 네? 이렇게 많으니까 한 마리만 데리고 가도 되겠다." 큰냠냠이가 말했다. 나는 “누구 맘대로?”라고 대답했다.

"원숭이나 염소보다 공작 네가 훨씬 예쁘다. 그래서 너에게 왕관을 준거야 알았지?" 풀 주면서 하는 큰냠냠이의 말에 나는 또 사진을 찍으며 쿡쿡 웃고 있었다.

”역시 아기 고양이 털이 제일 보드랍네. 얼른 나랑 고양이랑 찍어줘요. 네? " 아기 고양이를 가슴에 살며시 안고는 내려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기 미어캣도 인기가 많았다. 서로 안아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우탕아! 아이스크림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난 우탕아! 오늘은 옥수수 많이 먹어라. 그런데 씽씽카는 나보다 못 타는구나. 그리고 넌 나보다 손도 정말 크구나. 너무 웃기게 생겼다"

“아기 우탄이는 엄마한테 잘도 매달리네. 난 잘 도망가서 엄마가 나한테 <딱 붙어 있어>맨날 그러는데 히히.”

이렇게 아이들이 오랑우탄을 바라보며 얘기를 건넸다.


어, 알파카 침이… 에이 더러워. 휴지 빨리 휴지. 휴지”

“야! 알파카가 너 싫어하나 봐. 하하하”

배추를 주던 책냠냠이들에게 알파카는 한 번씩 침을 뱉어서, 서로 놀리면서 웃음을 날리곤 했다.


동물들을 안아 보고 만져보고 눈을 맞혀보며 숲길을 걸어 다녔던 오늘,

"그런데 코끼리가 없는 동물원이 어딨냐?" 작은냠냠이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다. 늘 동물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코끼리가 그 동물원에는 없었다.

“겨우 돌조각 코끼리만 있고 진짜 코끼리도 없고, 에이~너무 시시한 동물원이야”

나는. 그런데 사자가 으르렁 하니까 라이온 킹 생각났어요.’아~~ 그러냐 와발이 치오아 스 왠냥명 왠냥명’ 노래하니까 하나도 안무서웠지롱”

모두가 그 책냠냠이 노래가 너무 웃기다는 듯이 배를 잡고 한바탕 웃었다.

“어이쿠 잘하는데요. 그 노래를? 다시 한번 해봐요.네?“

나도 그 노래 아는데.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이예요? 아~ 그러양 와봐라.그게 무슨 뜻이예요?”

저마다 조금씩 자기가 들은 대로 다르게 노래를 흉내 내고 있었다.

“응 줄루 언어라는데, 아빠 사자가 오고 있어, 어 그래 사자네 사자네. 뭐 그런 뜻이라던데”

아! 생각났다. 난 하쿠나 마타타(잘 될꺼야). 그 노래 아는데.. 하쿠나 마타타. 하쿠나 마타타” 한 냠냠이가 그러자 아는 녀석들은 고개를 동시에 좌로 우로 돌리면서 “하쿠나 마타타””하쿠나 마타타”를 발을 구르며 반복했다. 이어서 생각나는 노래가 있으면 누군가는 선창을 했고, 다른 책냠냠이들은 함께 합창을 했다.

노래가 희미해져서 조용해지자 나는 얘기를 했다.

" 선생님은 공룡 악어가 코를 벌름거리는 것을 자세히 봤는데, 너희는 뭘 자세히 봤을까요?"

"새장에서 말하는 앵무새들을 자세히 봤어요. 그런데 너무 한꺼번에 말하니까 귀가 멍해져서, 나중에는 귀를 막았어요"

으르렁 사자 얼굴을 자세히 봤는데 심바 하고 비슷하게 생겼어요”

나는 작은 양이 나를 따라오면서 계속 ‘배에에’해서 조금 무서웠어요. 그런데 계속 따라와서 먹이를 주면서 털을 만져보니까 너무 부드러워서 친해졌어요”

“난 오랑우탄 눈이 슬퍼 보였어. 우탕이 혓바닥도 봤는데 징그러웠어요”

난 브라키오 사우르스 꼬리에서 사진 찍은 게 기분이 좋아요. 진짜 공룡 꼬리에 앉은 기분이었어요” 우리들은 각자 자세하게 본 게 무엇이었는지를 얘기하면서 차에 올라탔다. 동물들을 책으로만 만나는 것과 가까이서 만져보고 관찰하는 것은 많이 달랐다. 책냠냠이들은 식물원에서 꽃향기에 흠뻑 젖으면서도 한 마디씩 했었다.

아~ 꽃향기가 엄마 향수보다 더 쎄구나.이 냄새 어딘가에 담아 가면 우리 엄마가 좋아할 텐데. 엄마는 향수 좋아하는데 크크크”

거리에서 재롱 피우는 미어캣이 너무 귀여워. 집에 가서 엄마한테 미어캣 사달라고 말해봐야지”


 언젠가 신문에서 쥬쥬동물원 동물학대를 고발한 ‘카라’라는 동물보호단체가 생각났다. 바다코끼리, 악어 등의 동물쇼를 위해서 동물학대를 하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했다. 때리기도 하고, 흉기 위협도 하고… 심지어는 사람보다 힘이 세진 오랑우탄 손의 인대를 끊어 버리는 일을 했다는 의정부 지방검찰청 보고도 있었다. 잘 관리가 되지 않은 동물들은 나름 포악했다. 아무리 숙명이라 여기고 그곳에 순응을 한다고 해도, 자신을 사랑으로 돌봐주는 사람과 학대를 하는 사람의 손길을 모르겠는가!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의 슬픈 눈망울이 오히려 모험과 판타지를 빼앗아가는 듯싶었다. 동물들의 복지보다는 상업적인 이익만을 쫓는 사람들을 위한 동물들의 세계가 아이들의 환상을 깨는 듯도 싶었다.

 그러니 그림책 <우리 여기 있어요 동물원>에 동물이 남긴 대사가 떠올랐다.


이빨을 보이지 않게 잘 숨기세요.
뾰족한 이빨이 발견되면
다음 날 뽑아버릴 수도 있어요.

온갖 유혹에 넘어가지 마세요.
잘해 준다고 믿었다가
내 몸의 한 부분을 잃어버릴 수 있답니다.

연애만 하고 새끼는 갖지 마세요.
내 고통을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책냠냠이들은 “하쿠나 마타타”를 계속 소리치면서 웃음을 주고받곤 했다.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게 되자, 자신을 미워하고 되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하쿠나 마타타(잘될 것이다)를 외치면서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온 심바처럼 우리는 티몬과 품바가 되어 한없이 “하쿠나 마타타”를 반복했다.

그래서 쥬쥬동물원 여행을 우리는 다 같이 “하쿠나 마타타 여행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동물들과의 이별도 처음에는 '안녕, 잘 있어' 이런 식이 었는데, 나중에는 너도 나도 약속이나 한 듯이 ‘하쿠나 마타타’라고 인사를 했다.

 "곰아, 하쿠나 마타타!" "사자야, 하쿠나 마타타!" 그런 식이었다.

 그렇게 동물들을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통했나 보다. 나 역시도 책냠냠이들처럼 동물들과 작별인사를 “하쿠나 마타타”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책냠냠이들이 다른 많은 경험과 즐거운 호기심과 새로운 계획을 하게 되는 쥬쥬 동물원이었다.

 실제로 미어캣을 사달라고 했으나 햄스터로 대신하기로 했다는 소식과, 장수풍뎅이를 키우는 집이 생겼다는 것이 하쿠나 마타타 여행의 영향력이었다. 책냠냠이들과의 추억을 가지고,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자, 우리는 창문을 열고 모든 동물들에게 동시에 인사를 했다.

"하쿠나 마타타 동물들! 하쿠나 마타타" 너도나도 큰 소리로 합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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