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스월드를 다녀와서
'새로운 기회는 새로운 도전으로부터 시작한다. '
홀로, 계속해서 그 생각 줄기를 펼치고 있었다.
내가 구멍이면 구멍이라지, 앞으로 메꿔 나가면 되는 거잖아?
잘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언제까지나 핑계만 댈 수 없잖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드는 생각들을 버려야 해.
사회 시스템, 여자라는 이유, 또 다른 피해의식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해.
과거의 비전과 다른 나를 원하기에,
스스로 그 비전을 실천하는 하루를 살고 싶을 때,
오늘의 실천이 미래의 비전이 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을 때,
그리고 많은 책냠냠이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찾을 때,
아인스월드를 떠올렸다.
부모님들을 대하다 보면 부모님들이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었다.
부모님들은 논리적으로 말하지만 결국 행동은 감정적인 다른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 어른은 수많은 가면 속에서, 때로는 자신을 속이기도 하면서, 자녀 앞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기도 했다. 그리고는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한계 앞에선 거짓말을 소비했다.
'시간이 없어서…'라고, 그런 핑계의 말은 모두가 비슷했다. "제가 능력이 안돼서..."
무섭게도 책냠냠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부모님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비전 있는 하루를 실천하기로 한 날,
부모님과 싸워서 응어리진 어떤 책냠냠이가 "몰라요" "아무거나요"만 던지며 독서수업에서 아무 말도 하기 싫어하던 한 주를 보내고, 다른 책냠냠이들도 툴툴 학교 시험 스트레스를 뿜어내고, 시험이 엉망진창이었다고 아랫입술을 계속 깨물어대던 책냠냠이들이 어딘가 가고 싶다고 할 때, 우리는 아인스월드를 가기로 했다.
책냠냠이들에게 친구, 가족, 학교의 세상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을 때 가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역사와 기후, 문화의 차이에 따라 사는 모습이 다르니 건물들도 많이 달랐다.
눈부신 실루엣들이 사진처럼 뇌리에 박히는 곳도 있었다.
게다가 역사적 의미의 건물들이라서 세계사에 저절로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 인상적인 건물들에 얽힌 이야기도 우리들을 끌어당겼다.
아인스월드는 하루 만에 즐기는 세계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을 일정 비율로 축소해서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세계여행 비용이나 시간을 감당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대리만족을 느끼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모형만으로도 그 시대와 그 역사의 현장 안에 금방 빨려 드는 것 같은 착깍을 일으키곤 했다. 갈 때마다 관련된 역사를 공부하고 가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펼쳐줄 수 있겠지만 역시 세계사 전체를 줄줄이 꿸 수 있을 만큼이 아닌지라 부분적인 흥미를 일으키다 오는 아쉬움도 있었다.
한 건물을 짓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 헌신, 노동의 대가는 위대했다. 어떤 건물은 몇 백 년을 두고서 너무나 많은 희생과 시간으로 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딱딱한 건축재료들이 예술미 넘치는 위대한 과업을 이뤘으니, 자신들도 모르게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하기사 영화 백 투 더 퓨쳐, 더 어비스, 아폴로 13 등 특수효과 및 미니어처 제작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곳에서 제작하였다고 했다. 1/25의 작은 조각이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색된 것 마저 재현을 해놓았고, 지구 한 바퀴를 하루 만에 돌면서 세계의 랜드마크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하는 곳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공습으로 파괴되어 종탑만 남은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전쟁의 참상을 교회에 새기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몇 백 년 동안 가꿔온 문화재를 순식간에 파멸시킬 수도 있었노라고. 파괴되고 남은 잔해를 그대로 보존중인 그곳 별명이 텅빈 이빨이라고 했다. 그러니 제대로 된 생각을 가져야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했다. 그것을 아인스 월드에 가면 얘기하곤 했다. 수백 명의 피와 땀도 전쟁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전통을 사랑하는 신사의 나라 영국존은 영드 ‘셜록’의 배경이기도 한 타워브리지와 빅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대를 이어 시계를 관리해오는 관리자의 이름을 딴 빅벤은 시작부터 인상적이었다. 빨간 옷의 근위병을 볼 수 있는 버킹엄 궁전은 금방이라도 영국 여왕이 손을 흔들며 창가에서 얼굴을 내밀 듯 싶었다.
화려한 예술의 향연 프랑스 존은 베르사유 궁전과 몽마르트르 언덕이 우선 눈에 띄었다.
그야말로 화려한 파티복으로 화장실을 들랑날랑 못해서, 정원에서 그대로 실례를 했다는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 대한 이야기를 책냠냠이들에게 했다. 또한 거리의 예술가들이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초상화를 그려서 판다고 하니, 바람이 불면 물감 같은 것에 먼지 같은 것이 붙어 그림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냐고도 물었다.
나는 “글쎄~멋진 초상화 그림을 방훼 할 정도는 아니겠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초상화를 그려서 가져오겠죠?”라고 대답을 했다.
러시아 혁명이 살아 숨 쉬는 러시아 붉은 광장 앞에 서면, 혁명가들의 우렁찬 구호 소리가 귀를 뚫는 듯하다.
프랑스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노라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생겼다. 건너편에 킹콩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영화 촬영장에 있는 것도 같았다. 역시 포토존은 에펠탑 앞에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그럴 땐 옆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사진을 찍곤 했다.
나는 샤르트르 대성당의 장미 창을 눈여겨보았다. 그 창에 햇빛이 들어가면 성당 내부에 창 그림자들이 빛이 지나가는 대로 춤을 추겠다는 상상을 했다. 책냠냠이들은 피사의 사탑이나 킹콩이 매달여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그리고 성 바실리 사원, 스핑크스가 있는 피라미드 정도가 오랫동안 서서 관심을 보였다. 디즈니랜드의 디즈니 성이 본뜬 건물인 노이슈반슈타인 성 이름이 가장 어렵다고들 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옥수수 모양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그냥 옥수수 성당이라고 부르곤 했다. 넘어질 듯 아슬아슬한 피사의 사탑은 특수장치를 달아 똑바로 서 있다가 옆으로 기울어지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다. 책냠냠이들에게
“실제의 피사의 사탑은 땅이 약해져 기울어서 공사를 하기도 했지. 그래도 계속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대. 하지만 저렇게 기울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추가 설명을 했다.
어린 책냠냠이들을 가장 흥분시키는 코스는 아틀란티스 섬이 연출하는 바닷속에 가라앉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이 직접 가보기도 했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야간 조명을 추억과 함께 황홀경으로 바로보곤 했다. 나를 가장 흥분 시기는 코스는 남미존에 있는 마추픽추 코스였다. 그곳을 보면서 신용복이 썼던 글귀를 떠올렸다.
마추픽추의 폐허에 서면 가족을 땅에 묻고 황급히 이곳을 떠나간 잉카인의 최후가 가슴에 젖어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혜와 피땀으로 세운 도시를 버리고 다시 어디로 사라져 갔는가?
이 도시의 비밀이 어떻게 그처럼 철저히 지켜질 수 있었는가? 황금을 찾아 잉카 땅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진 익스플로러들까지도 설마 이처럼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도시가 있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 조자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노래를 원주민의 악기로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정말 가슴이 저미는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이 노래의 마지막 구절, 길보다는 숲이 되고 싶다는 구절, 어디론가 떠나는 길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는 숲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마추픽추의 마음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길을 스스로의 품 속에 안고 있는 숲, 그리고 발밑에 무한한 땅을 갖고 있는 숲에 대한 그림움을 그들은 남겨놓고 있습니다.
거닐면서 계속 흥얼거리고 있었다.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를 무한 반복할 듯 계속 흥얼흥얼하며 마추픽추를 거닐었다.
브루클린 브리지 앞에 연출된 뉴욕항 배 안으로 동전 던지기를 하며 소원을 빌곤 했는데, 어쩌다가 집어던진 10원짜리 동전이 배 안으로 들어가면 괜히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다. 왠지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나 보다.
아인스월드에 다녀오면 어김없이 세계지도를 펼치게 된다.
그리고는 벌써부터 세계 어딘가로 실제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쏟아내게 된다.
그런 욕구가 마음속에 뿌리내려 언젠가는 세계 곳곳에 발도장을 찍으며 자신의 생각을 함께 얘기하고 펼치는 때가 오기를 바라본다.
물론 거창한 생각에 비해 아인스월드는 너무 작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 시작의 뿌리와 원형이 있기 마련이니
그런 점에서 아인스월드를 가는 일은 언제고 참 즐거운 일이었다.
나중에 책냠냠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실제의 건물 앞에서 어린 시절 만났던 아인스월드를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 건물의 역사와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의 철학 사상을 만나서, 또는 그 건물 안에서 기도하며 우는 사람들의 희망에 대해서 함께 얘기할지도 모른다.
거창한 모든 것도 소박한 실천 하나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오늘 아이들이 에펠탑을 색칠하고, 콜로세움을 도화지에 색칠하는 손길이 시작이 아닌가 싶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아이들이 생소하게 느꼈을 그 건물의 이미지가 시간이 갈수록 더 찬란한 기억으로 세워지기를, 그 기억의 공간 안에 더 따스한 생각들이 가득 채워져 나가기를 희망해본다. 아인스월드 여행은 세계의 역사 속에 나를 일깨우는 여행이었다.
상상했던 것들이 눈앞에 다르게 펼쳐질 때마다 '와우'를 연발하곤 했다.
세상 어디에서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고 나눠주는 마음은 결국 저마다의 마음속에서부터 시작하나 보다.
꾹꾹 눌러 놓았던 나를 일깨우고,
닫힌 마음을 열었을 때,
여행은 새로운 감각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래서 늘 새로운 여행을 꿈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