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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람이 Jan 08. 2021

동해 촛대바위 일출을 추억하며

 해마다 새해 첫날은 일출을 떠올린다. 우리 아이들과 봤던 최초의 해돋이. 밤새도록 운전을 해서 꽉꽉 누르는 어둠을 헤치고 맞이했던 해돋이. 몸이 힘들어 새해 일출을 보러 가지 못해도 1월 1일 아침, 찬물 한 잔에 추억의 해돋이를 삼키며 기억 속 해돋이로 새해를 맞이한다. 코로나로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영혼들이 간절한 마음 담아 보낸 새해 메시지를 보면서도 동해 일출을 떠올렸다.

”건강한 한 해를 보내고, 희망하는 것들이 이뤄지길”


 밤새도록 운전을 해서 간 곳은 애국가의 배경화면으로 나오는 추암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남편의 “다 왔다”라는 한 마디와 함께 차창 밖에는 거품이 이는 흰 파도가 물결을 출렁이고 있었다. 밤사이 흔들리는 차에서 잠을 뒤척여서인지 물결마다에 영상들이 떠밀려 왔다가 갔다. 과로하고 피곤해하는 오피스 사무실들, 허둥대고 종종걸음 치는 출퇴근길 사람들, 뻑뻑하고 찌근거리는 통증들, 밤새도록 운전해온 몽롱했던 새벽이 모두 저 파도를 타고 멀어져 갔다. 새롭게 다가올 새해가 작년과 별로 다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새로운 해를 가슴에 안고 더욱 햇살스럽게 살고 싶었다. 동해에 솟는 해를 보며 끓어오르고, 부풀어 오르는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질기고도 끈덕진 생명의 소리가 들렸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는 소리들을 우렁차게 깨웠다. ‘아무리 삶이 구질구질해도 살아야 한다. 끝까지 버티어 내야 한다. 물과 물이 한 몸이 되어 부딪히듯 세상과 한 몸 되어 살아내야 한다’ 그리 나를 향해 소리쳤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조금 따뜻한 국물로 배를 채운 후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역시 유명세를 타는 곳은 달랐다.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또 다른 땅 위의 파도를 만들 듯 휩쓸려 한 곳을 향했다. 아이들은 춥다고 계속 어깨를 움츠리며 떨었다. 절묘하게 생긴 바위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던 나는, 남편의 피곤함도 외면한 채, 새해의 희망을 담아 보자고 아이들을 달랬다. 둘째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사람들 엉덩이만 보다가 집으로 갈 판이었다.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야말로 천국에 가는 행렬이 싫어서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에 그냥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와 고달팠다. 남편은 아들에게 바다 위로 해 뜨는 광경을 보여 주려고, 이곳저곳을 우악스럽게 비집고 들어갔다. 틈새를 억척스럽게 비집고 들어가자, 바다 한가운데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촛대 바위를 볼 수 있었다. 그 촛대 바위 끝에 초의 불꽃을 피우 듯, 해의 광채를 얹어 보며 상상에 젖어들었다. 새해의 희망들을 주절주절, 주문을 외듯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쏟아 내리는 금빛의 파편이 내 희망 주문을 만나 모든 것이 이뤄질 것 같은 기분에 취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추위와 싸웠는데도 해돋이의 광경은 쉽게 볼 수 없었다.

한참을 쭉 늘어선 사진작가들 대열 속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쯤에서 해가 돋지 않는 것은 그리 좋은 사진을 찍기는 글렀다는 뜻이란다. 날씨가 그리 맑지 못해서 자신들이 기대했던 일출 작품을 찍기는 쉽지 않겠다고 했다. 사람들도 모두들 가슴을 졸이면서, 저 검푸른 파도를 헤치고 어서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다렸다.


아! 해가 솟아올랐다. 붉은 이 화려하게 번졌다. 속 쓰려서 움찔했던 몸 기운이 발끈했다. 마침내 해가 솟아오르자 모두들 약속이라도 하듯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는 각자 바라는 새해 소망을 한 마디씩 얘기했다. 돋는 해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그 신기하고 이색적인 해안 절경을 배경으로 ‘길이 보전하세’ 명장면을 가슴에 새겼다. 막상 뜨는 해를 보니 아이들도 흥분되어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과 해변에서 맘껏 뛰어다니니, 바다의 일출만큼 뜨거운 웃음들이 파도 소리와 섞였다. 올 한 해가 해맑은 저 아이들 웃음만 하길 바라며 해변을 걸었다.

 그날 바람이 어찌나 강하게 부는지 파도는 거세게 우리를 덮쳐왔다. 드라마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름다운 파도 향연에 남편과 나는 아무 말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파도를 따라 아이들과 함께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 가장 불만이었던 것을 파도에게 얘기해 보라고 했다. 바다에게 불만을 얘기하고 나면 시원할 거라고 했더니 큰아이는,

“내 동생은 바보다. 자기만 잘못했는데 괜히 나도 같이 혼나게 했다. 난 그게 정말 억울하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아마도 평소에 동생에게 양보하는 것이 많고, 감싸주지 않는다고 엄마에게 한소리 들었던 것이 스트레스였나 보다. 둘째는,

“누나는 너무 잘난 척한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한다. 나도 할 수 있는데 자기가 꼭 먼저 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누나가 먼저 자신에게 불만 섞인 소리를 질러서 동생도 맞대응을 했나 보다. 어찌 되었건 파도에게 나쁜 마음을 던져 주었으니, 새해에는 서로 더 많이 사랑하자고 다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은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아이들에게 힐링이 되는 부분이 달랐기에 남편과 나는 따로따로 아이와 얘기를 주고받았다. 여행을 하는 내내 남편과 나는 눈치껏 눈으로 얘기를 했다. 이제는 눈짓 하나로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알 수 있었다. 힘든 여정을 함께 하며 저절로 터득하게 된 몸짓이었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보았던 산에는 눈이 많이 쌓였다. 한순간 세속적인 모든 것들이 씻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눈 속에 휩싸인 절경과 추암 해오름 촛대바위가 새해를 시작하는 상징이 되었다.

우리의 새해 여행은 빛나는 해를 가슴에 담아오는 여행이었다. 참으로 인상적인 장면을 많이도 만날 수 있어서 가슴 벅찬 여행이었다. 오래오래 그 기억의 힘으로 힘차게 나아가길 바라본다. 우리 아이들이 기억하는 최초의 해돋이 여행이 반짝반짝한 설렘이 되길 바라본다.



pixabay-촛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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