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람이 Nov 03. 2020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네

- 할머니네 주말농장

  

냠냠이들과 할머니네 집에 자주 갔다. 할머니가 직접 텃밭을 일구어 여러 야채를 심고 가꾸시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옥수수, 고추, 토마토, 가지를 심는다고 하셔서 씨앗을 가지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텃밭에 들어갔다. 사실 말로만 도와 드리는 거지 텃밭에 가면 냠냠이들은 그저 흙을 가지고 노는 거다. 그래도 돌을 골라내고, 구멍을 내어 옥수수씨를 구멍에 넣는 일을 한참 동안 했다. 구멍을 내주면 씨앗을 그 구멍 안에 넣는 것을 해맑게 좋아했다. 그리고 마무리로 씨앗에게 물을 주는 일을 하면서 일단락 일이 끝이 났다. 끝나면 꼭 다부지게 손을 터는 동작을 한다. 내심 스스로가 대견한듯한 몸동작이다.


 그곳에는 할아버지가 만든 원두막도 있었다. 원두막은 아주 시원해서 냠냠이들이 누워서 얘기를 하다 잠이 들기 딱 좋은 곳이었다. 옥수수와 키 대기를 해보다가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와서 원두막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먹었다. 그러다가 방아깨비나 배추흰나비가 눈에 띄면 얼른 그 뒤를 쫓아서 손아귀에 잡아 오곤 했다. 맴맴 꽁지를 빼며 달아나는 잠자리들을 잡는다고 발자국 소리를 줄이고 살금살금 다가가서 휙, 무지개 모양으로 채를 휘두르면 잠자리가 그물 안에서 파다닥 파다닥 발악을 했다. 잡힌 잠자리에게 어찌나 말을 많이 거는지, 한참 시끄럽다가 잠자리를 놓아주곤 했다.


 방울토마토는 하늘을 나는 새 모양의 꽃이 피었다. 노랗게 핀 꽃이 지면서 열매 몽우리가 그 꽃 끝부분에 맺히자 냠냠이들은 그 열매가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언제 빨갛게 되지? 물을 많이 주면 빨리 빨갛게 될까요?"

그것이 녹색 열매였다가 조금씩 빨개지면 얼른 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할머니께 그것을 볼 때마다 

"오늘은 따도 되나요? 좀 덜 익었어도 맛보고 싶은데..."를 몇 번이나 되묻곤 했다. 

드디어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여주던 날, 

냉큼 따서 손바닥에 문질러 입에 쏙 집어넣으면, 볼록해진 볼탱이로 입이 벙긋해졌다. 그렇게 방울토마토를 먹다가 알맹이들이 얼굴에 터져 번져서 햇살에 탄 얼굴엔 더 큰 웃음이 터졌다. 사 먹는 방울토마토와 그리 다른 맛이 아닐 텐데 냠냠이들은 이런 말을 내뱉는다.

 "애벌레들은 바보 아냐? 이렇게 맛있는 과일을 놓치다니..." 

막상 그렇게 말했지만 입 짧은 냠냠이들은 몇 개 먹고는 그저 달랑달랑 달려있는 것을 즐길 뿐이었다.


밭에서 풀을 뽑아내는 일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농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벌레 먹은 야채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벌레들을 보자마자 멀리 도망가곤 했는데, 계속 벌레들을 대하다 보니 어느새 벌레들을 잡아서 할아버지께 건네며 뿌듯해했다. 자신이 마치 전쟁영웅이라 된 듯이, 

"할아버지! 나 때문에 배추가 살아남았다. 그죠?" 어깨가 우뚝 솟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게, 우리 손주 덕분에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겠네" 맞장구는 기본이다.


 우리 큰냠냠이는 호박꽃을 보면서, 저렇게 예쁘게 생겼는데 왜 못생긴 사람보고 호박꽃이라고 놀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장난을 치려고 아빠가,

"큰냠냠이는 호박꽃!"이라고 놀렸더니,

"정말로 호박꽃이 안 예뻐요? 아빠! 저렇게 예쁜 꽃인데?"라고 말하며 자신을 호박꽃에 비유한 게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자나 고구마는 책냠냠이들이 캐기에 아주 좋았다. 또한 양파 같은 것을 캐면 각자가 캔 양파가 더 큰지 작은 지를 서로서로 대어 보았다. 냠냠이들 일기장에 가장 자세하게 적힌 것은 야채 잎 위에 있던 무당벌레와, 텃밭에 나타난 개구리 이야기였다. 또한 텃밭에 모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은 글이 자주 눈에 띄었다. 어떨땐 모기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글귀 밑에다 진하게 밑줄을 그어 놓기도 했다.


 옥수수 알맹이가 빨리 보고 싶어서 껍데기를 벗기면서 아주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인지 일기 제목이 '벗겨도 벗겨도 끝이 없네!'였다. 또 벗겨야 돼? 또? 또? 그렇게 목청을 높이다 보면, 드디어 알맹이가 나오고 헉! 숨을 몰아쉬며 좋아했다. 옥수수 알맹이를 하모니카 불 듯, 입에 갖다 대고 춤을 추며 행복해했다. 


 역시 제일 쉬운 것은 상추 키우기였다. 야들야들하고 푸릇푸릇한 상추들은 어찌나 쑥쑥 잘 자라는지 동네 사람들한테 후하게 인심을 쓰고도 며칠 있다 가보면 다시 자라나 재미가 솔솔 했다.


 콩 꼬투리에서 콩을 까는 일은 냠냠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밭에서 대롱대롱 달려 있는 콩을 따와서 안에 몇 개가 들어있을까 궁금해하며 깠다. 콩을 까서는 무슨 맛이 나는지 밥에 넣어 먹어보자고 했다. 예전에는 밥에 있는 콩은 가려서 먹더니만, 자신이 직접 깐 콩 맛이 궁금했는지 투정하지 않고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으면서 콩 맛에 대해 이러쿵 저렇쿵 얘기를 했다. 할머니네 농장은 이렇게 밥상 위에 올라오는 반찬들이 어떤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 지를 알려주었다.


  냠냠이들은 할머니네를 다녀오면 꼭 도감에서 뭔가를 찾아보곤 했다. 

 집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것은 인터넷으로 찾아서 캡처해서 프린팅 하여 일기장에 붙이곤 했다. 주말농장과 관련해서 접했던 책은 <보리 어린이 식물도감> <원리가 보이는 과학> <알과 씨앗> <어진이의 농장 일기> <신기한 요술 씨앗> 등이 있었다. 사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본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떤 부분이 궁금할 때나, 필요할 때 찾아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주말농장 여행은 냠냠이들이 늘 새로운 것에 눈을 뜨게 했다. 단단하고 작은 씨앗이 열매를 맺는 과정 속에서 작은 열매들의 소중함에 눈떴고, 자신이 그것을 따와서 씻어서 밥상에 오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알게 되었다. 그랬기에 싫어했던 콩도 먹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보였다. 아파트 안에서도 안보였던 곤충을 발견하는 눈도 가지게 됐다. 모르는 풀 잎사귀의 어긋나기 마주나기를 떠들며 얘기하는 재미도 알게 했다. 또한 잎사귀들의 색깔 변화가 우리 책냠냠이들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역시 작은 도전이었지만, 새로운 주말농장 여행은 많은 새로운 것의 경험을 냠냠이들에게 남겼다. 할머니네가 부산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다면 주말농장을 계속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이사를 가버려서 너무나 아쉬웠다. 하지만 그때 만났던 나비, 잠자리, 애벌레, 개구리, 모기, 감자, 고구마, 방울토마토, 상추 등이 도담도담 냠냠이들을 키우는 이웃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정취가 있었다.


                   




이전 01화 동해 촛대바위 일출을 추억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