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79.70
그 이후로도 나는 계속 앓았다. 통증에 지는 날엔 응급실에 가곤 했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내 증상에 대해 여러 과를 전전하며 온갖 검사를 다 했던 것 같다. CT, MRI, X-RAY, 혈액검사, 호흡기검사, 심장초음파 등. 그렇게 많은 돈을 병원에 쏟아부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서는 그렇다 할 원인이 나오지 않았다. 그를 위해 함께 애써줬던 의료진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내가 너무 싫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원인이 불명확한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가 지쳐가고만 있었다.
또다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던 날 나는 신경과 예약을 앞당겨 병원에 가 그날 아침 첫 번째 외래진료 시간이었던 8시 50분 진료를 보게 되었다. 신경과 교수님께서는 “검사 결과에는 전체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왜 이렇게 아픈 거지?”라고 하시며 더 이상은 모르겠다고 하셨다. 이어 ‘섬유근육통’이라는 병이 있는데 그 병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던지셨고 바로 류마티스 내과 협진을 내주셨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영역을 벗어난 병인 것 같다고 내뱉으시며 더 큰 병원으로 가보길 희망하셨고 타 병원 의뢰서를 작성해 주셨다. 나는 순간 울컥했다. 또다시 내쳐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3차 병원에서도 포기를 할 수가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는데, 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그 당시에는 굉장히 공포스러웠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류마티스 내과 당일 진료를 보길 원하셨지만 지정 교수님이 그날 계시지 않아 다음날로 예약을 하고 돌아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부터 나는 교수님이 언급하신 ‘섬유근육통’이라는 병명에 대해 검색해 보기 시작하였다. 지금이야 섬유근육통이라는 질병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정보가 많이 없던 시절이었고, 나와있는 사례의 경우 극단적인 내용만이 가득 차 있었다. 예를 들면 평생을 앓아야 하지만 나을 수 없는 희귀 난치병 이라던가, 이 병이 수명 단축에 기여한다던가. 지금은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면 귀여워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지새웠다.
다음날 나는 긴장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예약된 시간에 류마티스 내과로 달려갔다. 교수님의 첫인상은 젊고 밝았다. 교수님께서는 친절하게 날 맞이해 주셨지만 나는 그동안 겪어온 수모들에 불신이 차있는 상태였다. 교수님께서는 다른 질병과의 감별을 위해 여러 가지를 확인을 하셨고 압통점이 있는지 온몸을 일일이 다 눌러보셨다.
“섬유근육통 인 것 같아요”
-두통
-피로
-전신통증 (많은 압통점)
-관절통
-안구건조
어쩌면 진단을 받는 게 당연할 정도로 모든 증상에 다 부합했고 다른 검사 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었기에 더욱 확실했다. 이상하게도 병을 진단받은 것이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껏 아파왔던 이유를 알게 되었구나라는 안도감과 검사 상으로 이상이 없는데 정말 아픈 게 맞냐는 질문을 들었던 날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겠구나 하는 기쁨이 겹쳤고 눈물이 쏟아졌다.
당시 교수님께서는 내 눈물이 쏟아짐과 동시에 일어나서 티슈를 뽑아다가 손에 쥐어주셨고 나는 그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라는 말을 내게 웃으며 건네는 교수님을 눈물을 닦으며 슬쩍 올려다보게 되었다. 당시 교수님의 빛나던 눈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교수님이라면 믿고 따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훌쩍이면서도 같이 치료를 해보겠냐는 그 말에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신경과에서 처방받은 리리카캡슐(*프레가발린)이라는 약이 섬유근육통 치료에도 쓰이는 약이니 잘 복용해 보고 확실하게 진단을 받으려면 다른 검사도 확인해봐야 하니까 3일 뒤에 다시 볼게요”라고 하셨다.
예약을 잡는데 3일 후였던 날짜에는 교수님이 계시지 않는 날이었기에 4일 후에 다시 오기로 했고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평생을 앓아야 한다는데 나는 이 병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고 이번에는 걱정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 4일을 제대로 버티지 못했다. 하루 24시간 온몸이 타들어가는 것 같은 통증에 머리는 머리대로 터질 것 같고 며칠을 연속해서 구토를 하는 바람에 11일 새벽에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검사 상으로는 이상이 없는 나에게 응급실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탈수 방지를 위해 수액을 맞으며 진통제와 항구토제를 투여하는 것뿐.
나는 그 때 신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유명한 짤이 있지 않은가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다는데 의사표현이 서툴러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는 그런 내용의 짤. 그게 그당시 나의 심정이였다. 그렇게 항구토제인 온단세트론을 투여한 후 나는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나는 오후에 다시 외래로 진료를 보러갔다. 교수님은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시더니 “섬유근육통 맞아요, 섬유근육통이에요”라고 하셨다.
선선한 바람이 불던 가을날, 나는 섬유근육통 진단을 받았다.
질병분류코드에는 *M79.70이 새로 새겨졌고 이후 내 약은 전부 바뀌었다. 바뀐 약에는 만성통증 환자들은 알 법한 약들인 익셀, 심발타, 센시발, 울트라셋이알서방정이 있었다. 그렇게 나의 본격적인 치료는 시작되었고 이제 내 일상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얼마 가지 못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프레가발린:뇌의 과도한 흥분작용을 억제하고 신경성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물이다. 뇌전증 환자의 발작 치료 및 신경의 손상 또는 비정상적인 신경기능으로 인한 통증과 근육, 관절, 인대, 힘줄 등의 만성 통증을 치료한다 [네이버:약학용어사전]
*M79.70:질병분류기호-섬유근통,여러부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