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작가는 태어나는 걸까요?
(본 인터뷰는 과거에 무수히 들었던 질문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
-작가님, 오늘은 작가님에 대해 이것저것 심층 분석해보고 싶어서 뵙자고 했어요. 괜찮으시죠? 긴장하셔도 좋습니다. (웃음)
-그럼, 오랜만에 긴장 좀 해볼까요? (웃음)
-작가님, 러시아어는 뜰까요? 저도 작가님도 러시아어가 사실상 생계 수단인데, 저도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거든요.
-글쎄요, 제가 러시아어과에 입학할 때부터 러시아어는 뜬다고 했거든요. 사실 러시아라는 나라가 아시다시피 이른 시간 안에 획기적으로 바뀌는 나라는 아니잖아요. 톨스토이 전집을 수십 년에 걸쳐서 출간한다든지, 건물을 짓거나 하나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에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몇십 년, 혹은 몇백 년 앞을 내다보는 나라이니 짧은 시간 안에 뭔가 눈에 띄는 결과를 얻고 싶어 하는 욕심 자체가 무의미할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역시 제 생각이 맞았네요. 그럼, 저도 앞으로 몇 년 혹은 몇십 년 뒤에 뜰 무언가를 준비해봐야겠어요. 물론 농담입니다.
-작가님, 러시아어는 어떤 언어인가요?
-러시아어는 일단 어려운 언어죠. (웃음) 학생들 가르칠 때 학생 중 한 명이 지구 언어도 아니고, 외계어라고 한 적이 있어요. 사실 러시아어보다 더 어려운 언어도 있을 텐데, 러시아어에 있는 격변화, 동사 변화, 동사의 시제, 접속사 등과 무수히 많은 단어들 때문에 골치가 많이 아팠나 봐요. 제가 생각했을 때도 러시아어는 한국어보다 좀 더 촘촘한 언어인 것 같거든요.
-촘촘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예를 들어, ‘나 도착했어.’라는 아주 간단한 문장만 봐도 우리는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가 건물 안인지 밖인지는 당사자들이 알기 때문에 이 정도만 얘기해도 충분히 서로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나 도착해서 건물 안이야’인지, ‘나 도착해서 건물 앞에 와 있어.’ 인지를 문장 안에서 밝혀주길 원한다는 거죠. 이런 예는 무수히 많죠. 병원에 온 환자가 의사 선생님께 ‘선생님, 저 귀가 안 좋아요.’라고 말한다고 했을 때, 한국인은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겠지만, 러시아인이라면, 처음부터 ‘선생님, 저 한쪽 귀가 안 좋아요.’ 혹은 ‘선생님, 저 귀들이 안 좋아요.’라고 말할 테니까요. 우리 말에는 복수형을 잘 쓰지 않지만 러시아에서는 단수인지 복수인지 분명히 해주길 원하는 거죠.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정확하게 잘 짚어주신 것 같아요. 선생님, 번역작가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자질이 뭘까요?
-글쎄요, 이 일을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요?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을 줄알아야 하고, 책 보는 거 좋아하고, 공부하는 거 좋아하며, 번역이라는 이 행위 자체를 즐길 줄알아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보기보다는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거든요.
-작가님이 낯가림이 심하시다구요? 에이, 믿기 힘든데요. 작가님은 다양한 문학 행사에도 참석하시고, 참여하시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시는데, 저도 함께 참석한 행사가 꽤 되는데,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어서요.
-그건 일이고, 번역을 좋아한다면, 번역과 관련되거나 저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문학 행사에도 참석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면, 일하실 때는 일종의 스위치 같은 것이 있어서 외향적으로 전환하신다는 뜻인가요?
-결과적으로는 그런 셈이죠. (웃음)
-작가님은 한국 소설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시는 일을 먼저 하셨는데요, 러시아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더 수월하지 않나요?
-사실, 뭐가 더 수월한지를 따져볼 겨를이 없었어요. 당장 강의료 외에 또 다른 수입원이 필요했고, 마침 한국문학번역원이라는 문체부 산하 기관에서 번역 지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고민할 틈도 없이 각종 서류와 샘플 번역 원고를 챙겨서 지원했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작품이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였고, 운 좋게도 번역원 심사를 통과해서 첫 작품부터 번역 지원을 받게 된 것이죠.
-지금은 몇 번째 역서를 번역 중이시죠?
-현재는 17번째 역서 번역을 마무리하면서, 18번째 역서를 번역하고 있어요. 두 권 모두 한노 번역이고, 문체부 산하 기관의 지원을 받아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사실 러시아어 강의와 번역 모두 거의 15년째 하고 있는데, 한 6~7년쯤 됐을 때인가 어떤 분이 ‘너 아직도 그거 하니?’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기분 나쁜 말일 수 있는데, 저는 크게 신경 안 쓴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때론 바보처럼 미련하게 한길만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때 그 말 듣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살짝 아찔해요.
-코로나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일이 아닐까요? 누굴 만날 필요도 없고, 혼자서 원고 작업만 하시면 되잖아요.
-그러게요. 사실 호흡이 긴 소설 번역을 하게 된 계기는 당장 아쉬운 금전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고, 결혼해서 아이가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서 한 거거든요. 결과적으로 현시점에서는 제 생각이 옳은 셈이죠.
-마지막으로 번역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는 이뤄지더라고요. 꿈을 잃지 말고 오늘을 즐기면서 내일을 조금씩 준비해보시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전해볼만한 일이기도 하구요.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