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현대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19세기의 푸시킨이나, 톨스토이, 체호프, 도스토옙스키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19세기는 러시아 문학에서도 황금기에 속하며, 이 작가들은 러시아 내에서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고, 러시아 문학의 자랑이며, 긍지이다. 하지만 20세기에 속한 러시아 작가 중 우리가 잘 아는 작가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19년에 서울 국제도서전이 시작될 즈음에 다게스탄 출신의 여류작가인 알리사 가니에바의 장편소설인 ‘상처 받은 영혼들’이 출간되었고, 2020년 3월에는 러시아 유명 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중단편선인 ‘티끌 같은 나’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2021년 3월에는 보돌라스킨의 장편 소설이 각각 출간되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출간되었거나 출간될 러시아 소설이 예년보다는 조금 있는 편이니 다소 고무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책들이 출간되는 것과 러시아 현대 소설이 국내에서 소개가 잘 되지 못하는, 혹은 소개가 되더라도 독자들이 잘 모르는 현 상황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21세기에도 러시아 국내외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는 많이 있다. 러시아는 앞에서 언급한 대문호들이 버티고 있어서 뿌리 깊은 문학적 전통을 가진 나라이기에 원인은 조금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물론 번역을 업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사에서 하는 일까지 해내고 있다. 즉, 책을 선정해서 기획안을 작성하고, 출판사와 의견이 맞을 경우 저작권자와 저작권 계약을 하는데, 이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러시아 현대 소설이 국내에 잘 소개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와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대개 저작권은 저자에게도 있지만, 저작권이나 판권은 해외 에이전시나 출판사에서 가진 경우가 많고, 해외 에이전시나 출판사와 국내에 있는 특정 에이전시가 독점 계약을 한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저자, 러시아 외 제3 국에 위치한 에이전시 혹은 출판사, 국내 에이전시, 국내 출판사까지, 결과적으로 저작권 계약을 위해 합의를 보거나 연락을 해야 할 기관이나 개인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이 중 한 군데에서라도 연락이 지연되거나 합의를 보지 못하는 경우 계약은 짧게는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린다. 일례로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경우는 작품 기획부터 출간까지 대략 2년 반이라는 기간이 소요되었고, 이 중 저작권 계약에 걸린 기간만 대략 1년이 넘는다. 따라서 이런 상황을 모르는 번역가가 현대 소설을 번역하려고 하다가 이 상황과 맞닥뜨리면 지레 겁을 먹거나 끝내 일을 진행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저작권 계약 단계가 러시아 현대 소설을 소개하는 데에 다소 큰 걸림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유 혹은 장애물로 볼 수 있는 것은 국내에서 러시아 현대 작가 중 인지도가 있는 작가가 없다는 것이다. 한 작가가 자신의 네임 벨류를 만드는 데에 걸리는 기간이 상당하고, 러시아 문학이 다소 어렵고, 이름도 복잡하다는 선입견까지 더해지면, 러시아 현대 작품이 설 자리는 더 좁아지는 셈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고, 그래서 번역만 잘한다면 높은 판매율을 올릴 수 있는 고전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 예스 24나 알라딘만 들어가 봐도 러시아 소설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들어있는 러시아 소설의 대부분은 고전인 19세기 소설이 버티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출판 시장이 전보다 더 위축된 현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출판사의 다소 보수적인 출간 성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거나 러시아 회사와 거래를 하는 경우 현대 러시아를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는 힘들 것이다. 19세기 소설에서도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고, 러시아인들의 뿌리 깊은 국민성을 엿볼 수 있지만, 시대는 바야흐로 21세기로 접어들었고, 그동안 러시아 내에서도 많은 사건과 변화가 있었기에, 러시아인들도 많이 변하고 있다. 물론 신문과 잡지에 있는 다양한 통계를 보고 분석하는 방법도 있지만, 무미건조한 수치만으로 거대한 러시아를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다양한 민족이 함께 공존하며, 유라시아에 속한 러시아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로 현대 소설을 제안할 수 있다. 아직 러시아 현대 소설이 국내에 거의 소개가 안 돼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러시아 현대 소설을 찾아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 현대 문학은 국내에서 소개가 거의 안 돼 있고, 그래서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대중이 알도록 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문학 강국인 러시아에서 문학을 빼고 그들과 대화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므로, 위의 여러 가지 장애물을 딛고서라도 러시아 현대 문학은 국내에서 소개돼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알아줄 그 날을 위해서 혹은 그날이 다소 더디 오더라도 현대 문학의 진가를 알아줄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