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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질문, "왜?"

모든 것의 시작은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것에서 비롯된다

by 이소연 Mar 20. 2025

(*저의 리서치와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내용상 오류가 있거나 정정할 부분이 있다면 피드백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또한 관련 내용 혹은 더 공유하고 싶은 부분 또한 적극 환영합니다.)



나의 대학원 졸업작품은 아주 작은 계기,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뮤지엄 산에서 만난 한 외국인 부부의 매화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리고 그 매화의 정식 명칭은 "Japanese Apricot"이라 불리는 것 또한 그때 처음 알게 되었고 한국인 큐레이터 분의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와 그분의 외국인 부부에게 정석적으로 정식 명칭을 알려드려야 한다는 그 직업정신과 의무감이 나를 더욱 비참한 기분을 들게 했다. 한국 여행에 와서 얻어가는 느낌, 감정, 경험은 결국 "Japanese"로 뒤덮일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아름다운 한국어 명칭 "매화"를 알려드리지 못한 것이 결국 한이 되어, 이 쓰라린 아픈 경험은 나를 지금의 졸업 프로젝트로 이끌었다. 단순히 식물의 명칭이 일본이름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좀 더 조사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 근 현대사의 아픈 부분이 식물에게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선조들은 말과 민족 정체성 그리고 심지어 이름까지 탄압을 받았다. 조선인들은 한국어를 쓰지 못했고 한국어로 된 이름을 쓰지 못했다. 그야말로 일본의 대대적으로 진행된 야만적인 "민족 문화 억압"을 통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본어로 된 이름으로 창씨개명당했고 일본어를 써야 학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픔을 견뎌야 했던 건 무릇, 사람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식물들의 70~80 퍼센트의 학명에는 Nakai라는 일본학자 이름이 들어간다. Takenoshin Nakai (다케노신 나카이) 그는 일본의 저명한 식물학자이며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의 넉넉한 지원을 받아 한반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우리나라의 아름답고도 고유한 토종 식물들을 채집, 수집, 분류해 나갔다. 심지어 몇몇 식물들은 나카이의 일본 정부에 대한 충성심을 나타내고자 치욕적인 일본 제독 이름을 그들의 이름 속에 포함되어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식물들의 학명 대다수엔 일본 학자들의 이름이 들어가고 그중 Nakai 가 대다수이다. 우리나라의 그 시대 일제강점기 시절, 피탈당한 건 우리나라 국가 주권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식물 주권 또한 박탈당했다.


그 와중에도 우리나라 독립투사들은 열렬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우리나라 한글, 말을 지키는 우리말 언어학회가 활동하였으며 그 당시 권력이 상당한 나카이에 반기를 든 우리나라 식물학자 "장형두"가 존재하였다. 이 분은 1세대 한국 식물학자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주 보배 같은 인물이다. 나카이의 명명을 거부하고 조선 식물엔 조선 이름을 붙여야 한다며 우리말 식물 이름들을 들풀들에게 붙인 장본인이다. 그는 식물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으며 일본의 전설적인 식물학자인 마키노 도미타로에게 식물학을 배웠다. 우리나라 식물들을 면밀하고 치밀하게 분류하고 다른 학자들과 함께 우리나라 식물들에게 우리말 식물 이름을 고안해 내 붙였다. 그의 식물학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진심 어린 독립운동과도 같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은 아주 지독했다. 식물을 안다는 것은 그 나라의 생태, 기후, 토양을 알 수 있다는 뜻이고 그 말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생활모습까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일본은 조선을 단순히 손에 넣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까지도 집어삼키려는 야망을 서슴지 않고 드러냈다. 그들의 야욕은 잔인하리만치 치밀했다. 그 덕에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 대다수 식물들은 그 일제의 잔재를 안고 학명에 사라지지 않는 주홍글씨를 단 채 살아간다.


그중,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우리나라 고유종 식물이 있다. "미선나무"는 창덕궁 궁궐등 여러 궁궐에 심겨 있는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식물인데 우리나라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식물이다. 안타깝게도 현재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어 그 희소가치성이 더욱 높아졌다. 미선나무는 열매가 마치 '미선'이란 부채 모양 같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마치 개나리와 같은 모양으로 하얀 꽃과 은은한 향기가 단아한 식물이며 우리나라 고유종 단 하나의 식물이란 점이 그 특별함을 더해준다. 


그러나 이 식물의 학명에는 역시나 Nakai 가 들어간다. (위키피디아 학명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여러 칼럼을 찾아보니 Nakai 가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좀 더 리서치가 필요할 듯하다) 식물의 국제 명명 규칙상 한번 규정된 학명은 고칠 수 없다. 그것이 관례이자 규칙이며 그 덕에 우리나라 대다수 식물들은 여전히 일제 잔재를 머금으며 지내고 있다. 2025년인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는 해방되었지만 우리나라 식물들은 독립하지 못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졸업작품의 주제를 "독립의 정원"으로 구체화하였고 그에 따라 식물 리서치와 식물학자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더욱 폭넓은 관객들을 맞이하고자 웹사이트로 구현할 예정이며 현재 3D 모델링과 기본 웹사이트 구축단계는 해놓은 상태이다. 


현재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까지 나를 이끈 건 단순한 질문 하나였다.


"왜?"


어째서 우리나라 식물에 이런 일본의 이름이 들어간 것인지. 그럼 비단 "매화"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식물 자체에 뭔가 우리가 몰랐던 아픈 역사가 숨겨 있는 것인지. 도대체 식물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인지.


매화로 시작된 아주 작고 사소한 물음은 우리나라 식물로,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로, 그리고 식물학자들로 넓게 확장되어 갔다. 그렇게 나는 독립이 필요한 것은 사람과 영토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도 해당됨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대학원 졸업프로젝트에 대한 의무감과 책임감, 그리고 내가 이 역사적 이야기를 "알리고, 나타내고, 표현하고 싶다"를 실현 중이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야기. 내가 아니면 누구도 하지 않을 이야기. 누구도 알지 못했던 그 이야기. 아는 사람들만 알고 대다수는 몰랐던 이야기.


그것이 우리네 역사이자 식물 이야기다. 그 속엔 우리나라 식물의 가치를 지키려 한 숨은 영웅인 식물학자도 존재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가 보려 한다.




자료 참고: 조선일보 "현대사 인물 발굴" 조선 유일무이 식물학자 장형두

네이버 지식백과 "세상을 바꾼 나무" 나카이 다케노신과 일본의 식물 지배

위키피디아 "미선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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