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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ug 07. 2022

식 집사의 첫여름을 보내다

사람인 나도 식물도 모두 힘겨운 여름 나기

 작년 5월 파리지옥을 데려온 후부터 시작된 나의 식물 키우기는 이제 올해에 이르러 안정기에 다다른 듯했다. 그러나 우리 집 베란다의 생태환경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탓에 나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겨울철 베란다 환경만 알았지 여름철 환경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년 봄에 데려와 여름까지 보냈던 파리지옥을 분갈이로 떠나보내고서 식물을 들여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같이 여름을 보내는 첫 경험이었던 셈이다. 


올해 여름 초 한창 장마가 길었을 때 베란다의 식물들은 그래도 그럭저럭 무던하게 잘 버텨주는 듯했다. 문제는 장마가 끝난 후 나의 코로키아가 과습이 와서 넝마가 된 것이었다. 물도 많이 주지 않고 건조하게 키웠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온 것일까.



코로키아가 위치했던 곳은 베란다 안쪽이었다. 엄마와 나는 베란다가 겨울철엔 춥고 열악하지만 그래도 창틀이 넓고 크기 때문에 바람이 잘 통하여 통풍은 최적화된 곳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 통풍은 창틀 쪽 한정이었고 안쪽은 매우 고온다습했던 것이다. 엄마가 직접 베란다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보니 매우 후덥지근하고 불쾌했다고 했다. 코로키아는 안 그래도 예민한 식물인 데다 뿌리 쪽은 시원하고 건조하게 키워야 하는데 푹푹 찌는 찜통에 통째로 찐 셈이었다. 심지어 코로키아는 유약이 발라진 도자기 화분에 심겨 있어서 더욱 그 안이 뜨겁고 습했을 것이다.



그렇게 눈물의 분갈이를 했고 남은 토분에다 통기성이 좋은 흙 배합으로 직접 흙을 만들어 조심조심 식재했다. 그리고 관수에서 저면관수로 바꾸고 제일 통풍이 잘 되는 창가 쪽으로 배치했다. 코로키아의 과습으로 인한 갈변한 잎들은 직접 하나하나 떼주었고 그저 무사히 이 여름이 지나가길, 부디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중이다.


한편 코로키아와 같이 베란다 안쪽에 있던 엄마의 불꽃 철쭉도 여름을 다 보내지 못하고 초록별로 떠나갔다. 원인은 역시 과습이었고 엄마와 나는 우리 집 베란다 전체를 식물을 위한 공간으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에 통감했다. 현재 창가 쪽으로 식물들을 다시 배치해두었고 베란다 창가 쪽 통풍 하나는 기가 막히기 때문에 그 이후엔 별다른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




여름방학을 맞아 나는 본격적인 졸업작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식물들을 들여왔다. 성수에서 봤던 플랜테리어가 너무 인상적이었고 화원에서 스치듯 봤던 식물들의 몰랐던 매력들을 뒤늦게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평소 키우고 싶었던 식물들과 성수에서 눈여겨봤던 식물들을 고양까지 가서 직접 데리고 왔다.

7월 초까지 직접 분갈이를 하고 물 주기를 했으나 졸업작품으로 잠시 집을 떠나 자취집에서 작업을 해야 했기에 엄마에게 식물들을 맡기고 한 달 동안 이별했다.



그리고 8월에 오랜만에 집에 돌아오니 놀랍도록 자라난 식물들이 보였다. 전보다 더 큰 신엽들이 나있었고 엄마가 애지중지 분무기로 습도도 맞춰준 덕인지 심각한 병충해나 잎 타들어감이 보이지 않았다. 여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식물들이 알아서 잘 자란다는 계절이라고 하던가. 어쩌면 코로키아 과습으로 인해 베란다를 다시 둘러보고 신속하게 식물들 배치를 통풍이 잘되는 창가 쪽으로 다 옮겨서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이라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구근을 싹틔우기가 매우 용이하단 점이었다. 7월에 알로카시아 실버 드래곤을 분갈이해줬을 때 자구들이 두 개 떨어져 나왔는데 나는 온실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저면관수 화분에 수태를 넣고 밑에 물을 약간 채운 다음 습도가 높아지도록 비닐을 씌워주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구근 둘 다 싹을 틔웠고 하나는 성장 속도가 빨라 녹소토에 따로 심어주었다. 나의 첫 구근 깨우기 시도였고 성공적으로 싹을 깨워 색다른 경험이었다.



여름은 참 식 집사들에게 축복일지도 때론 절망을 안겨줄지도 모르겠다. 식물들이 성장하는 속도가 빠르고 신엽의 크기도 커져서 싱그러운 이미지로 가득할 것 같지만 장마로 인한 습함은 예민한 식물들의 심기를 건드려 한번에 초록별로 떠나보내니 말이다. (나의 코로키아 제발 되살아나 주길) 올해의 여름 나기는 식물들과 함께하는 첫여름이라 더욱 각별하다. 식 집사에겐 식물과 함께하는 모든 계절, 나날들이 새롭고 신기함의 연속이다. 사람인 나도 덥고 식물들도 덥다. 사람인 나도 힘겨운 계절, 식물들은 괜찮을 거라 멋대로 착각하면 곤란하단 것을 이번에 톡톡히 체험했다. 


내가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식물도 그러할 것이라 조금은 생각해주고 그에 따라 적절한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식물과 이야기를 할 수 없으나 마음의 교감을 통해 조금씩 맞춰나가며 함께 공생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여름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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