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Jan 31. 2023

'나'의 작품을 칠하기

메인 프로덕션(4)-작품을 하나씩 채색하기


프리 프로덕션 - 메인 프로덕션 - 포스트 프로덕션


본 작품 제작 과정에 해당하는 메인 프로덕션 이야기입니다.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은 작가, 감독분들마다 각기 다를 수 있으므로

참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의 작품의 경우, 채색작업은 다른 채색작업과는 결이 사뭇 달랐다.

한 프레임씩 다시 선화로 깔끔하게 클린업을 하고 나면 그 프레임을 다시 렌더링 하여 포토샵으로 넘어가

하나씩 하나씩 다시 포토샵 브러시로 그려서 따고 채색하는 일종의 노가다 작업이었다.


이는 내가 각오했던 부분이었으며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아주 호기롭게 시작을 하였다. 그때가 8월 중순 즈음이었다.



브런치에 썼던 이전 글에서도 알 수 있듯, 나는 나의 제작방식을 번거롭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방식이기에.

아무리 힘들고 고될지라도 일단 해야 직성이 풀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나는 나름의 각오를 다지며 채색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때부터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작업하는 일상이 시작되었으며 길어봐야 2달 정도 걸리겠거니

안일하게 짐작했던 것과는 다르게 12월까지 인고의 채색작업은 계속되었다.


내게 'High Concept, 좋습니다'라고 평해주셨던 지도 교수님조차도 처음 나의 이러한 제작방식을

들으셨을 때 기함하셨다.

좀 더 효율적이며 좀 더 빠르고 편한 방법은 없겠냐고 물으셨다.

하지만 내 마음에 들고 퀄리티 있는 작업물이 나오려면 이 방식을 고수해야겠다는 것이 나의 각오였다.



한 프레임씩 채색이 되어 나올 때마다 나는 뭔가의 희열을 느꼈다.


물론, 몇 백장 몇 천장을 막일로 그려내야 했으므로 우울했던 9월의 나날들도 있었다.


11월도 험난하게 혹독하게 스스로를 몰아붙여가며 작업했다.


그럼에도 그 과정 속에서 '즐거움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


채색 과정으로 넘어가기 전, 원화의 깔끔한 클린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 클린업 선화대로 애니메이션의

움직임이 구현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 채색 과정으로 오기까지 과거의 내가 얼마나 신경을 많이 쓰고 시간의 흐름을 켜켜이 쌓았는지

채색 과정을 통해 나도 알지 못했던 나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인고의 채색작업이란 무릇 인고의 요가수련과도 흡사하다고 느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쌓여가는 시간의 두께는 사라지지 않기에.



99퍼센트에서 마지막 1퍼센트로 가기까지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이번 작품 제작을 통해 여실히 경험했다.

0에서 90까지는 그래도 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완성이란 100에 다다르기까지 마지막 1퍼센트의 작업량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 정도나 만들었는데 이 부분은 필요 없지 않을까.


이 부분은 쳐내도 되지 않을까.


이 부분은 별로 인 게 아닐까.


그러나 음악감독님의 음악을 들으며 나의 스토리보드를 다시 되새기며 내가 이때까지 작업했던 과정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 작품에 대한 나의 애정이 녹아 없어지기 전에 나는 나를 움직여야만 했다.


고독한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마치, 7년 전의 요가를 접하기 전 전굴자세를 1분 버티는데 힘이 들어 울었던 그 옛날의 나로 되돌아갔다.

허벅지가 욱신 욱신 아파서 괴롭고 숨이 멎는 듯했다.

그런데 그 1분이 지나니 고통이 가라앉는 것처럼,

그 1퍼센트의 작업량이 완성이 되어 100퍼센트로 채워지자 나는 7년 후 요가를 접한 나로 있을 수 있었다.



12월의 나는 제작과정 중 가장 험난하며 길고 길었던 채색을 완성했고

후련한 마음으로 후반작업을 하게 되었다.


다음은 포스트 프로덕션의 단계인 편집과 그 외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이전 08화 '나'의 작품을 들어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