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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Oct 22. 2023

동물의 왕국은 구라

대략 17년 전쯤이던가요,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말에 끌려 철원군에 있다는 '직탕폭포'에 들른적이 있습니다.  사진에 나타난 직탕폭포 위용이 꽤나 장엄하게 펼쳐져 있어 혹했는 데, 그 모습이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에 뒤쳐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컸습니다. 혼자만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오랜만에 아빠 노릇을 하는 지라 아이들 가슴도 잔뜩 부풀려 놨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만큼 대단한 폭포가 있단다.' 하지만 한탄강 줄기에 있는 직탕폭포를 대하는 순간, 실망이 지나치면 화조차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게 되었습니다. 아래서 개구리가 폴짝 뛰면 폭포 위에 사뿐이 안착할 수 있는 높이, 그러니까 개미 정도 되야 그 위용에 짓눌릴만한 폭포가 직탕폭포의 본질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이미지는 티브이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어릴적 틈만나면 티브이에 들어 붙던 시절, 동물의 왕국은 엄지 척 다큐였습니다. 드넓은 초원과 밀림에서 약육강식의 법칙하여 살아가는 야생동물. 기린, 사자, 영양, 코끼리. 우거진 밀림. 타잔이 '아아아~'하는 괴성을 지르며 이 나무, 저 나무로 건넛을 것 같은 넝쿨이 드리워져 있고. 습지대나 강은 물고기 보다 더 흔하게 악어와 하마가 우글러기는 곳이 아프리카입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는 동물의 왕국, 밀림의 대륙인 것이죠. 

 

그런 아프리카로 가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닥친 식량위기를 도우는 일을 하기로 한것입니다. 도시를 벗어나 부족들이 사는 밀림으로 들어갈 게 뻔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차가 엔진 고장이라도 나 밀림 한가운데서 오도가도 못하면 어쩌지.' 최소한 생존을 위한 도구는 스스로 마련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았습니다. 부랴부랴 오지에서 조난 당할 것을 염두해 둔 서바이벌 키트를 구했습니다. 생각보다 지출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른 첫 출장길, 등에 진 배낭 내용물 절반은 서바이벌 물품이었죠.

 

아프리카 '가나'에 도착해, 현지 사무실에 들렸습니다. 거기엔 프로젝트 동료인 '피터'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 첫 출장에 대한 두려움, 궁금함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업무 이야기로 말문을 열고 끄트머리 쯤에 궁금한 내용을 살며시 던졌습니다. 

 

"피터씨, 도시를 떠나면 바로 사자와 영양 같은 야생동물과 마주치게 되는 건가요?"

"사자? 무슨 말이죠. 우리 일하러 가는 거에요.. 야생동물을 보려면 동물원이나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가야죠!"

 

처음엔 피터의 말이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에 처음 온 풋내기 한국인을 놀려줄 심산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어딜가나 사자와 영양이 우글대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첫 출장에서 아프리카의 본질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는 인간의 왕국, 인간의 대륙이지 결코 동물의 왕국은 아니었습니다. 내 머릿속에 아프리카를 심어준 '동물의 왕국'은 새빨간 거짓이었습니다. 아니, 거짓말이기 보단 그런 착각을 들게 교묘하게 편집한 뭐랄까요, 사기같은 거였습니다. 

 

아프리카의 본질을 알게 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과거에 믿음을 송두리째 갈아 업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그 충격이 크기가 얼마만큼 컷냐면, '직탕폭포' 가 '나이아가라 폭포'라는 광고는 '동물의 왕국'에 대면, 방바닥에 배를 문대며 기어 다니는 갓난아이 처럼 느껴졌을 지경이었습니다. 어릴 때 티브이 브라운관에 들러붙어 봤던 프로그램인데. 어릴적 꿈과 환상을 심어준 프로그램이 구라였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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