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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Oct 22. 2023

아프리카의 첫 인상

서아프리카. 가나의 수도 아크라는 첫 발을 내딘 아프리카 땅이었습니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면서 창밖 너머 펼쳐진 풍경은 자연스레 과거를 소환했죠. 멋없이 좌우로 길게 펼쳐진 네모난 성냥곽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 그 구조물 층층이 각지게 늘어선 유리창. 관제탑 모양도 참 옛스러웠습니다. '1970년대 쯤 지어졌을라나.' 공항의 출생시기를 가늠할 수 있었던 것은 '김포공항'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보는 공항이지만 친밀했습니다. 처음 방문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어색함, 두려움, 긴장감이 꽤 가셨습니다.

  

공항건물 내부도 20세기가 담겼습니다. 단촐한 페인트로 칠한 벽면, 빛바랜 회색 바닥, 벽에 붙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발발대는 선풍기. 과거로 발을 성큼 내딛는 것 같은 착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혼돈이 갑자기 뺨을 때리듯 몰아쳤습니다. 조근조근하던 소음 데시벨이 찰라적으로 최대치로 치달았죠. '이게 뭐지?' 사람들 입에서 부터 뿜어져 나오는 소음. 귀를 기울이자 그 소음의 정체가 영어란 걸 깨달았습니다. 엄청 당황했습니다. 긴장이 귀를 팽팽하게 당겼습니다. 영어는 당연히 알아들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야 이 대륙에서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귀를 세워도 사람들의 말이 영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습니다. 

 

입국심사대 투명 아크릴판 너머엔 권위의식으로 얼굴을 감싼 무표정한 표정의 제복을 입은 사람이 앉아있었습니다. 그는 제 여권을 뒤적여 보다 말문을 열었습니다. 영국식 발음에 짙은 아프리카 악센트. 영어는 영어이되 알아 들을 수 없는 영어. 아프리카 악센트가 없는 미국식 발음에만 익숙한 제 귀는 그의 말을 도대체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긴 문장의 대화는 불가능해 짧는 단어와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소통했습니다. 입국심사대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허비한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별별 대화가 오고갔지만, 나도 그도 그 대부분의 뜻은 이해하지 못한 듯 싶었습니다. 그 역시 한국악센트가 잔뜩 낀, 미국식 영어를 들어봤을 가능성은 제로였으니 말입니다. 마지막 그는 "FAO(국제식량농업기구 : Food and Agricultural Organization of UN)에 아는 사람이 있어 봐준다."라며 입국을 허가했습니다.

 

당시엔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인지라, 'Thank you very much'를 연발하면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죠. 하지만 숙소에서 곰곰이 상황을 복기하다 보니 정상인 상황 같지는 않았습니다. 여권이 일반여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도 UN 산하 기구인 FAO이고. 그 사람이 저를 그 긴 시간 동안 잡아둔 이유가 무엇일까요. 동양인인지라 테러리스트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고. 과연 무엇일까요? '혹시 돈을 바라고 한건 아니겠지?' 말도 안되는 별의별 상상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게 아프리카입니다. 그날, 아프리카에 첫 발을 내딘 날. 제가 하도 말귀를 못알아듣고, 알아 듣기 거북한 한국식 미국 영어를 해대니 제풀에 지쳐서 보내준 것이 정답에 가깝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KOICA 일로 방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출국시 소위 삥을 뜯기는 게 아프리카의 현실 중 하나입니다. 모든 나라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일부 부패한 나라에서 부패한 관료를 만나면 당하게 된다는 건 아프리카에서 일 좀 하게 되면 알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첫 인상은 아프리카와 관련하여 잘못 알려진 정보, 착각을 불러들일 내용이 많다는 것과 전반적으로 부패정도가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관광을 가는 거라면 모를까. 일을 하러 가는 사람에겐 당혹스럽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세금으로 운영되는 해외원조 자금이 덧없이 쓰일 거라는 안타까움마져 듭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기간 내내 든 의구심 중 하나는, 우리나라가 이들에게 호구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까? 였습니다.  아프리카 현장은 고상하지 않았습니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냉혹히 작동하는 인간의 왕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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