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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Oct 22. 2023

타임머신을 타고 아프리카를 날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종종 들었습니다. 그리먼 과거가 아닌, 1970년, 1980년대 어디쯤이었죠. 1970년대 이전에 태어났고, 특히 시골 출신인 분이 아프리카에서 일 하게 된다면 저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거라고 봅니다.

과거로의 첫 걸음은 공항에서부터 였습니다. 80년대 김포공항을 연상시키는 공항건물과 관제탑, 그 속에서 큰 짐지고 입출국을 하는 현지인들. 시끌벅쩍했죠.  비행기 타는 것은 대단한 일이기에 우르르 따라 나온 가족들. 오래전 기억이 소환되었습니다. 아마도 80년대 초였을 겁니다.  미국 가는 삼촌을 배웅하러 김포공항이란데를 처음 가봤습니다. 온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갔었죠. 회색의 웅장하고 간지 나는 공항건물, 공항에 왔다는 자체만으로 한 단계 신분이 상승한 기분이랄까요. 난생 처음보는 비행기가 굉음을 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엄청났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으슥거리며 자랑했었죠. ‘나 김포공항에 가서 비행기 봤다.’

아프리카의 공항의 정경은 어린 시절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국땅에서의 혼란스러움이 과거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마음이 진정되며 안도감이 들었지요. ‘예전 생각하면서 일하면 크게 어려움이 없겠구나.’싶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삶을 껴 안은 채, 과거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이미 겪었던 일이라도 쉽게 적응되지 않는 것이 부지기수란 것을 처음엔 잘 몰랐었습니다. 

코트디부아르에 처음 들렸을 때의 일입니다. 아담하게 지어진 시내 호텔에 도착해 샤워를 할 요량으로 수돗물을 틀은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몇 분간은 흙탕물이 나왔기 때문이었죠. 물사정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한 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의 호텔에서 흙탕물이 나올 줄을 꿈엔 들 생각했겠습니까?  ‘물 관리가 형편 없는 비위생적인 나라’에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전엔 이런 곳이 있었죠. 찝찝한 기분으로 샤워를 마친 후, 가져간 500밀리 플라스틱 병에 수돗물을 받아 그 속에 물소독약을 넣었습니다. 양치질을 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했습니다. 

제 고향은 충청도 시골입니다. 60세를 넘기신 어르신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단명으로 유명한 마을입니다. 원래 사람은 환갑을 넘기기 어려운걸로 알았었습니다. 그러니 환갑때 동네가 떠나가도록 잔치는 하는 거겠지요. 여름철이면 마을 우물에서 시원한 물을 길어 마시고 아이들과 뛰놀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물 안을 세심히 살펴본 적이 있었습니다. 햇볕이 우물 속을 비추자 투명한 우물물 깊은 곳에서 작은 움직임이 보였습니다다. 작은 물고기들이었습니다. 우물 물은 사람도 먹고 물고기도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물이 가득한 공간인 것이었습니다. 자연친화적 우물이랄까요?  그런데 우물에 소독약을 넣고 수도가 집집마다 연결된 다음에는 60세 이전에 돌아가시는 어르신이 크게 적어졌습니다. 요즘은 60세 정도면 청년 취급 받는 장수마을이 되었죠. 

아프리카를 다니며, 물을 무척이나 조심했습니다. 잘못마시고 오지에서 배탈이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릴적 물고기가 헤엄치는 우물을 마신 이력은 하등 도움이 않겠지요. 하지만 조심하려 해도 조심하기 어려운 상황도 벌어지는 법입니다.

아프리카 출장 시 꼭 가지고 다닌 위생용품이 있었습니다. 물을 자외선으로 살균하는 휴대용기계와 물소독제입니다. 물소독제는 주로 양치질할 물을 소독할 때 사용했죠. 자외선 살균기는 호텔 방으로 들어오는 먹는 물에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서는 둘 다 사용이 어려웠습니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데 혼자서 유별 떠는 건, 상대에게 좋지 못한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비위생적인 느낌이 드는 생수라면 마시지 않을 수 있겠지만, 시원하게 내놓은 얼음 동동 뜬 쥬스는 난감했습니다. 더위로 사방이 쩔쩔 끓는 듯한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비위생적인 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얼음. 이 얼음 동동 쥬스를 마셨을 때, 제 소화기관이 이를 버텨낼지, 자신 없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유혹을 뿌리쳤지만, 무더 위에 버팀목이 녹아내렸습니다. 벌컥벌컥하곤 바로 후회한 일이 몇번 있었습니다. 운이 좋은 걸까요. 아니면 물고기가 돌아다니던 우물에 단련된 게 아직까지도 이어졌던 걸까요. 탈 난 적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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