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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Oct 22. 2023

과거의 맛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식사를 마을에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코트디부아르 출장 중 강가 마을에 머무를 때의 일입니다. 그 지역 별미는 생선구이였습니다. 음식점에 들어서니 드럼통 안에 불붙은 장작을 놓고 석쇠를 올려 생선을 굽고 있었습다. 구수한 연기가 사방에서 피어올랐죠. 이 집의 대표 요리는 큰 접시에 구워진 생선 올리고, 그 옆에 촘촘히 썰은 양상추 같은 채소를 곁들인 것이었습니다. 먹을 때 안 사실이지만, 그위엔 짭짤 매콤한 소스가 뿌려져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 조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요리하는 아주머니의 까만손이 눈에 가득 들어찼습니다.  화들짝 놀랬습니다. ‘아 아프리카지.’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흑인 손이 까만 건 당연한 일이고 하등 이상하지 않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그게 맘대로 되지 않더군요.  깨끗한 손을 보고 싶었습니다. 진정으로. 하지만 까만 손이 깨끗한지 안 깨끗한지 분간해낼 재주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요리를 하는 여인의 손만 바라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요리가 나오자, 같이 간 현지인들이 구운 생선을 채소에 싸서 먹었습니다. 저도 같이 먹어야 했죠. 배도 고프고. 말짱한 정신으론 좀 그래서 맥주를 곁들였습니다. 입안에 넣은 매콤한 채소에 쌓인 생선은 입에 달라붙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맛만 좋은면 됀거지.' 


대학 시절, 학교 교문은 나서면 얼마 안가 닭발로 유명한 식당이 떠오릅니다. 허름한 식당 앞엔 깔끔해 보이지 않는 호스에서 물이 콸콸 나오고, 커다란 고무 다라 안에는 닭발들이 유영하고 있었지요. 얼마 후 같은 곳을 지날 때 보니, 그 다라 안에는 무가 썰어져 있었습니다. 반찬을 만드는 모양이었습니다. ‘닭발을 씯던 다라인 데 쓰고 난 후 제대로 씯어 냈을까?’ 그 허름한 식당에서 친구들과 소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매콤 쫄깃한 닭발과 고춧가루가 덕지덕지한 무는 돈 없는 학생에겐 최고의 안주거리 였습니다. 웃고 떠들고. 그리 살았었습니다. 아프리카 음식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했습니다.  개발도상국이니까. 하지만, 그리 살아 본적 없는 분이라면 가급적 요리하는 모습을 보지 않는 걸 권합니다. 완전히 익힌 음식만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겠지요.


아프리카도 큰 도시에 소재한 호텔은 전반적으로 깔끔했습니다. 철저히 소독을 하는지, 모기 한 마리 안보였습니다. 하지만 시골 도시는 달랐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퀴벌레와의 동침입니다. 나이지리아 어느 시골 도시 호텔에서 묶을 때였습니다. 무언가가 얼굴을 간질이길래 깨어났습니다. 침대 위에서 재빠르게 기어 도망가는 바퀴벌레들이 보였습니다. 징그럽다기 보단 반가웠습니다. ‘아 너네들이 여기에도 있었네.’


탄자니아 시골 마을 호텔에선 좀 더 특별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침대에서 잠결에 눈을 설푸게 떳는데 누가 빤히 보는 것 같았습니다. 화들짝 놀라 보니 도마뱀이었습니다. 도마뱀도 화들짝 놀라 네 개의 다리를 재빨리 놀리면서 후다닥 벽을 타고 멀찍이 떨어졌습니다.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미안해!"


이름도 알 수 없는 까맣고 작은 벌레들이 문 앞에 수북이 쌓여 있는 광경은 익숙합니다. '얼마나 살충제를 뿌려댔으면 벌레들이 전멸했을까.' 싶긴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잠을 자야하는 게 그리 내키지 않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지요.


오래전 여인숙이란 데를 이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격이 착한 숙박시설로,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에겐 훌륭한 잠자리였습니다. 그러니 바래서는 안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 여인숙보다 아프리카 호텔은 전반적으로 좋았습니다. 침대도 컷고, 시트도 깨끗했고, 화장실도 방마다 딸려 있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시골 도시의 호텔에선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치 여인숙처럼 말입니다. 


또랑 또랑한 눈을 가진 꼬맹이들이 졸졸 따라 오면서 무엇인가를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성보단 감성을 앞세우는 사람들과 일을 해야 했습니다. 부패도 집고 넘어갈 문제입니다. 통행료라는 게 통용되고 있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과거와의 조우. 기억에는 선명하게 남은 과거지만,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니 어색했습니다. 얼른 그 상황에서 빠져 나오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니 선택지는 적응하는 것일 뿐. 하지만 그 적응에 2년은 걸렸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과거에의 적응은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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