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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Oct 22. 2023

아주 살짝 종교 터치

자칫 잘못하다가 쌈 나기 쉬운 게 정치 이야기라면, 종교 이야기는 더 안 좋게 흘러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입 꾹 다물고 말을 꺼내지 말아야 하는데, 아프리카 이야기를 하면서 종교를 말하지 않는 건 좀 그래서 맛보기만 언급해 보겠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려면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잘못하면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첫 번째. 전통 신앙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태곳적부터 3,000개가 넘는다는 부족과 운명을 같이 해온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시골 부족 주민에겐 그 영향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전통신앙 중엔 우리에게도 익숙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서아프리카 일부 부족은 내세와 윤회를 믿고 있습니다. 

신과 현세의 중간 어디쯤 윤회를 관장하는 중간계가 있답니다. 사람이 죽으면 이 중간계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세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윤회의 선순환을 따르는 건 아닙니다. 신의 뜻에 어긋하는 짓을 하면 중간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악령이 되어 구천에 떠돌거나, 미물로 환생합니다. 그러니까 신의 뜻에 충실해야죠. 어떤 부족은 사람이 죽으면 혼과 백이 분리되고, 육신이 부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토속신앙과 관련된 스토리가 영화에 캐스팅된 경우가 있습니다. 그 유명한 ‘좀비’입니다. ‘좀비’를 탄생시킨 종교는 미국 남부지역에 퍼져있다는 ‘부두교’. 그런데 이 부두교는 서아프리카 ‘보도교’가 뿌리입니다. 노예로 잡혀간 서아프리카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퍼트린 무속 신앙인 셈이죠. 이야기에 따르면 오래전 주술과 약물의 힘으로 사람을 가사상태로 만들어 부렸다고 하는데, 이게 좀비의 기원이 됐답니다. 

 

아프리카 전통 신앙은 삶 깊숙이 침투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렇기에 바깥으로 비치는 모양과 실제 그 속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국제기구 동료들 중에는 '아프리카인은 전통 신앙이 바탕이고 기독교, 이슬람 같은 외래 종교는 그 위에 덧 써져 있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으니까요. 

두 번째는 이슬람교입니다. 선입관에 기인한 다소 두려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던 종교였습니다.. 아프리카에 가기 전 이슬람에 대한 이해는 언론이나 영화에서 조명한 과격한 이슬람 테러단체의 왕성한 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IS의 잔인한 행태가 생생하게 알려지기도 했었으니 제 머릿속에 그려진 이슬람은 과격하고, 무자비하고, 파괴적인 종교였습니다.

 

주로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브루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나이지리아, 세네갈 등 국가엔 이슬람 신도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깜짝 놀랐지요. ‘아프리카에 무슨 무슬림이 이렇게 많아? 중동도 아닌데.’ 하고 말입니다. 무슬림이 대부분이라는 국가로 첫 출장을 갔을 때는 두려웠습니다. 나이지리아는 보코하람이라는 이슬람계 과격 테러단체가 대낮에도 총질을 하고, 부르키나파소도 연중행사처럼 테러가 발생해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하니 더욱 그랬습니다. 그러나 막상 무슬림과 만나 식사를 같이 하게 되면서 두려움은 옅어지고 종교적이라고 할지, 문화적이라고 할지 구분이 모호한 충격과 혼란이 대신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는 가족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친교를 쌓는데 감초 같은 스토리가 가족에 대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먼저 아내와 아이들 이야기를 개략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무슬림 현지인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두 번째 부인은요?”  완전히 당황했습니다. “두 번째 부인이라니요?”

 

무슬림은 4명의 아내를 둘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1명의 아내만 둘 수도 있지만, 이례적이라고 하네요. 어느 정도 능력자라면 4명의 아내를, 능력이 없다면 홀아비가 팔자로 정해진 듯 보였습니다. 같이 식사를 하던 이들의 얼굴엔 아내가 한 명인 저보다,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듯한 표정이 써져 있었습니다. 말투도 약간 달라진 듯싶었고요. 말투에 묻은 느낌은 “아내가 한 명?”

이들 무슬림과 같이 웃고 떠들고, 숙식을 하며 아프리카 시골을 누볐습니다. 무슬림 중에도 나일론 신자가 있었고, 평화주의자도 있었습니다.  과격한 신자도 있겠지만 만난 적은 없었습니다.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이슬람교.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 이외엔 아주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격한 무슬림 무장세력은 분명 존재하는 거였고, 테러리스트가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한 번은 우리나라에 일이 있어 출장을 미뤘는데, 딱 그 나라에 도착하기로 계획한 그날, 묵기로 한 호텔 근처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테러리스트와 정부군의 시가전 한복판에서 오도 가도 못할 처지가 될 뻔했죠.

 

세 번째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무슬림보다 더 평화롭거나 착한 건 아닌 듯싶습니다. 종교가 다를 뿐.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기독교인들이 아프리카 일을 하는 초반에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아프리카 기독교인 중엔 일부다처제를 고수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비슷해 친분이 두터웠던 P 씨도 아내가 2명은 넘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여러 명의 여자를 아내로 둔다? 의아한 일입니다. 

 

아프리카는 수백 년 동안 유럽의 노예 상인과 결탁한 왕에 의해 수많은 부족의 남자들이 노예로 붙들려갔습니다. 부족의 입장에선 남자의 씨가 말라 부족 자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지경에 처한 것입니다. 종족의 생존을 위해선 선택지가 없었겠지요. 여러 여자가 한 남자를 노예사냥꾼으로부터 피신시키고 같이 살면서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그 남자가 잡혀가면 그 남자를 수발했던 여인들은 다른 남자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이 생존전략은 노예제가 사라진 지금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에게조차 말이지요. 

 

시골로 출장을 다니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를 현지인이나 아프리카 출신 동료들에게 듣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내전에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내전의 양상은 잘 사는 기독교와 상대적으로 가난한 무슬림과의 충돌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부족이 있답니다. 서로 다른 부족이 종교가 다르고, 여기에 빈부 차이까지 덧대어지면서 갈등이 극으로 치달린 것이지요. 아프리카 내전의 속내는 복잡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프리카 사람을 대할 때 종교적 색채는 지웁니다. 사람 됨됨이가 훨씬 중요하고 부족의 평판이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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