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3대 병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가장 고역스러웠던 건 말라리아 약이었습니다. 말라리아는 주사 한 방에 예방되는 감염병이 아닌 탓입니다. 말라리아를 예방하려면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간에 무리 가는 그런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말라리아에 걸려 고생할 확률보다 간이 나빠져 죽을 확률이 높아 보였지요. 그렇다고 안 먹자니 말라리아에 걸릴 것 같아 겁나고. 그러던 차에 일본 동료로부터 귀를 쫑긋하게 하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저는 말라리아 약을 먹지 않아요. 대신 그 나라 약국에서 말라리아 약을 사 오지요. 말라리아는 변이가 있는데, 그 나라에서 파는 약이 예방약이자 치료제거든요. 혹시 말라리아에 걸리면 그 약으로 치료하면 됩니다. 귀찮게 매번 챙겨 먹는 것도 그렇고, 건강에 좋을 리도 없고요.’ 아프리카 경험이 많은 그의 말은 꽤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건기에 아프리카에 출장 갈 일이 생겼습니다. 아프리카 건기에는 몇 달간 비가 오지 않습니다. 물이 없으면 당연히 모기는 없겠죠.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가 없으면 말라리아에 걸릴 가능성은 제로일 거고요. 그래서 말라리아 약을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거였죠. 강가에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챙겨봤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말라리아 약을 먹지 않고, 벌레 기피제도 바르지 않은 첫날밤. 숙소에 있는 야외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모기에 물린 날이자, 말라리아에 걸린 날이기도 합니다. 말라리아를 신속하게 진단하는 간이 키트가 있다는 사실도, 말라리아 예방약이 치료제란 사실도 체득한 날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가장 주의를 준 건 배탈 설사였습니다. 자칫하다간 식중독과 심한 탈수로 인하여 큰 곤욕을 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장 중에는 밀봉된 물통에 있는 생수만 마시고, 컵에 따라주는 물은 절대로 안 마셨는데요. 얼음을 깜빡했지 뭐예요. 그날은 꽤 무더운 날이었죠. 현장에 나가 일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에, 덥다면서 현지인들이 노상에 있는 판매대에 저를 데리고 간 거예요. 과자와 얼음이 가득한 음료를 시켰어요. 다들 먹는데, 혼자 안 먹을 수 있나요. 시원한 음료 한잔 마셨다가 그날 밤부터 삼일은 반쯤 죽었죠.”
이런 경험담까지 들었기에, 아프리카 출장길에서 처음부터 마지막 날까지 조심한 게 물과 얼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심이 가는 물은 피할 수 있지만, 얼음은? 아프리카의 찌는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 가면서 얼음을 피하기 쉽지는 않겠지요. 서아프리카의 별미 중 하나는 차가운 생강 레모네이드입니다. 더위와 찌든 피로감을 쏙 빼는 기가 막힌 음료죠. 그런데 간혹 얼음 동동 생강레모네이드가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누가 얼음 동동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마시고 나면 걱정이 밀려왔지만 운이 좋았습니다. 배탈 설사 없이 잘 지냈지요.
아프리카에서 일하면서 새삼스레 관찰하게 된 약도 있습니다. 기생충 약. 우리나라는 한 번에 기생충을 모조리 박멸한다는 약이 있는데, 유럽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아프리카 출장을 마치고 만약을 대비해 기생충 약을 사러 약국에 찾아갔었습니다. 약사는 아프리카에서 일하고 왔다니까. 이름도 알 수 없는 기생충 약 6알을 권했지요. 한국은 한 알에 기생충을 싹 박멸하는 약이 있는데, 이탈리아는 왜 6알이나 먹어야 하냐고 물으니, 아프리카는 독한 기생충이 있으니 약을 강하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생충 종류를 나열하는데, 종류도 많았고 듣는 것만도 소름이 돋았습니다. 다양한 기생충이 존재할 수 있는 대륙이 아프리카. 약 한 알에 기생충을 싹 다 박멸할 수 있는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입니다.
감염병이나 기생충을 조심해야 할 나라는 아프리카 대륙 국가뿐만은 아닙니다. 2009년 인도에 갔을 때도 유의해야 할 사항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개도국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일하러 갈 때 깊이 있는 의료 정보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CDC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보게 됩니다. 요즘은 구글에서 실시간 번역을 지원해 줘, 조금의 수고만 들인다면 방문하는 지역의 질병정보와 조심해야 될 사항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