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도구가 아니다
사랑을 도구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대다. 나의 연인이 우리 부모님에게 잘했으면 하는 이, 나의 연인이 나를 위해 돈을 많이 벌어왔으면 하는 이, 나의 연인이 내 자랑거리가 됐으면 하는 이. 모두 사랑을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사랑은 도구가 아니다. 도구적 사랑은 사랑의 왜곡이고 지독한 자기애일 뿐이다. 사랑은 목적 그 자체이다. 사랑하는 이를 도구화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을 도구로 여기고 그것을 사용했을 때 기쁨을 느낀다면 이미 사랑은 종식된 것이다.
사랑에는 자발적 도구화만 있다
사랑이 도구가 아니라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사랑도 도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기쁨을 위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 사랑하는 이의 기쁨을 위해서 상대의 부모님에게 잘해주는 것, 사랑하는 이의 기쁨을 위해 내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이는 사랑의 자발적 도구화이다. 사랑에서 도구화는 자발적으로만 가능하다.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자발적 도구화는 아름다운 사랑이다. 사람은 그 누구도 주체적이길 원하지 타인의 도구가 되고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과 기쁨을 따르고 싶지 타인의 기쁨을 위한 도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는 오직 사랑할 때만 가능하다. 사람은 사랑할 때만 타인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사랑할 때만 타인을 위한 도구가 되어도 기쁨을 느낀다. 그러기에 사랑은 매우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자발적 도구가 안 된다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사랑을 독립적인 사람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에게 많은 걸 바라진 않았지만 상대를 위한 도구 또한 되지 못했다. 그저 상대도 편하고 나도 편한 게 사랑이라 생각했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저 나 편하자고 하는 연애 뒤에는 공허만 남는다. 어느새 서로를 향한 사랑은 메말라갔고 말라비틀어진 땅에 우두커니 혼자 서있게 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메마른 땅을 보며 눈물을 적시고 있게 되었다. 상대를 나의 도구로 여기지 않는 것에서 끝나면 안 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스스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도구가 되는 것은 분명 고된 일이다. 하지만 고됨 뒤에 더 큰 기쁨이 있다. 나의 고됨으로 인해 상대의 미소를 봤을 때 그간의 고생은 더 큰 기쁨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자발적 도구가 되었을 때 사랑은 더욱 커진다.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세상에 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은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1명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 드문 고마움을 서로가 느낄 때 사랑은 종식되지 않고 더욱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