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직장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9년부터였던 것 같다.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시기였다. 새로운 회사에서 업무를 익히고 회사 분위기와 사람들에게 적응하기 위해 하루 대부분의 에너지를 썼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많이 쓰니 퇴근하고 집에오면 기운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저녁을 시켜먹고 게임을 하거나 근처 헬스장가서 간단히 운동을 한 뒤 하루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자기계발의 명목으로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며 보냈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비슷한 하루들이 반복됐고 어느새 내 생활패턴은 똑같이 자리를 잡았다. 평일은 회사 - 집 - 게임(운동) - 잠이었고 주말에는 집 - 카페 - 운동으로 반복됐다. 이렇게 자리잡은 내 생활패턴은 스스로를 가두는 것으로 바꼈다.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행동만 하다보니 새로운 것을 하는 것이 피로로 다가왔다. 새로운 장소에 가거나, 안 가본 것들을 하는 것이 큰 피로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피로를 피하고 싶었다. '회사생활만으로도 피곤한데 퇴근 후나 주말에도 피로를 느껴야된다고?' 라고 생각하며 최대한 새로운 자극으로 생기는 피로함을 피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느끼는 안락함만 추구하며 점점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6년동안 생활을 하니까 안락함은 어느새 무기력과 공허로 바꼈다. 새로운 자극, 새로운 기쁨은 삶에서 없었고 단지 회사에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집에서 무기력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새로운 것들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피로함과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러니 갈수록 새로운 세상을 좀 더 경험해야겠다는 생각도 줄어들었다. 어느새 내 세계는 넓어지지 않고 똑같은 크기에서 머물렀으며, 나는 그 세계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점점 더 안하게됐다. 마치 감옥에 갇힌 사람처럼 스스로 만든 좁은 세계 안에서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가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더 재밌는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준 타자들을 만났다. 옛 연인은 항상 집과 카페에만 있는 나를 세상 밖으로 꺼내주었다. 세상에 재밌는 게 많다는 걸 알려주었다. 활동적인 그녀를 따라 이곳저곳을 여행했으며 여러가지를 경험했다. 그녀 덕분에 나도 여행을 좋아하게 됐으며 사진찍는 것의 재미를 알게 됐다. 스승과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은 돈과 직장생활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있다는 걸 보여주였고 철학, 그림, 음악, 영화 등 세상에 다양한 즐거움이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나만의 작은 세계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고 세상에 있는 더 다양한 것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새로운 세계를 지각하고 경험하는 것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낯선 것들을 처음 접했을 때 소모되는 에너지가 많고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언제나 있다. 하지만 피로함, 두려움, 불확실성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지 않고 익숙한 공간에만 있으면 곧 공허의 상태가 된다. 그 공허의 상태가 길어지면 삶 전체가 무기력함으로 다가왔다. 다소 피곤하고 고될지라도 더 많은 세상을 마주치고 지각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겠다. 세상을 더 많이 이해하기 위해서, 더 기쁘고 유쾌하기 살기 위해서 피로함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더 많은 세상을 마주하고 경험하겠다.